병원 화재에도 심장수술 한 의사

[김용의 헬스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의 흉부외과 의료진이 병원 화재에도 심장수술에 열중해 환자를 살려냈다는 외신 보도가 지난 3일 국내에서도 주목받았다. 화재는 건물 지붕에서 발생했고 1층에서는 환자의 심장을 열어 놓고 한창 수술이 진행중이었다. 병원측은 입원 환자  120명을 모두 대피시켰으나 이 심장수술은 강행하기로 했다. 8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대피하지 않고 수술에 집중했다. 소방대원들이 불이 수술실로  번지는 것을 막는 동안 이들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 기사 밑을 보니 “역시 외국 의사군요..”라는 댓글 몇 개가 달렸다. 최근 의사를 바라보는 국내의 이중적인 시각이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들 러시아 의사 못지않은 헌신적인 의사들이 많다. 수시로 응급 콜이 울리고 매일 의료사고 위험에 가슴을 조리지만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필수의료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에 오늘도 수술복을 입는다.

흉부외과 의사는 곧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환자의 가슴을 열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영웅’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우리나라 흉부외과 의사의 실상은 어렵고 힘든 의사의 대명사가 됐다. 까다로운 수술이 많아 의료분쟁의 위험이 높지만 대가는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매년 전공의 모집 때만 되면 미달이 속출한다. 흉부외과 의사 수가 갈수록 줄다보니 가족 모임 중에도 수술 호출을 받는 의사도 있다.

흉부외과는 의사의 노동가치를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육체적-정신적 노동과 스트레스는 다른 진료과의 몇 배이지만 그만큼 돈은 많이 못 번다. 매년  심해지는 필수의료 의사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해법이 나오고 있지만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흉부외과를 비롯해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기피 현상을 해결하려면 의료수가(진료·수술비)를 올려야 한다는 점은 정부-의료계 모두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찔끔 인상도 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고령인구 증가에 맞춰 필수의료의 의료수가 체계 자체를 뜯어 고치고 지원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야 수술 의사가 없어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매다 차안에서 사망하는 사례를 줄일 수 있다.

현재 7500개가 넘는 의료서비스(진료)에 대해 의료수가가 매겨져 있다. 정부가 일종의 가격통제인 수가를 통해 의료비를 적정 수준으로 통제한다. 하지만 수가 조정은 피부과, 안과 등 전공별 학회장도 합의해야 가능하다. 이런 체계에 대해 메스를 대지 않으면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 조정은 쉽지 않다. 의료수가는 심장수술, 피부 진료 등 의료행위별 ‘상대가치점수’에 병원 규모별로 정해진 점수당 단가(환산지수)를 곱해 결정된다.  상대가치점수는 총량이 정해져 있어 심장수술 점수를 높이려면 피부과나 성형외과 점수를 줄여야 한다. 해당 학회장들이 모인 상대가치위원회에서 남의 진료과(필수의료 등) 수가를 높여주기 위해 자신이 속한 진료과의 수가를 스스로 낮추겠다는 학회장이 나오기 힘든 구조다.

필수의료 수가에 정부 예산을 별도로 얹어주는 방안도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병원들이 수가 인상분만큼 필수의료 의사의 급여를 올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아예 수가 인상분 일부를 떼어 필수의료 의사의 급여 인상에 강제적으로 사용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화재에도 수술 강행을 최종 결정한 러시아 병원장처럼 필수의료에 대한 국내 병원장들의 담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대학병원을 비롯한 주요 병원장들은 대부분 의사출신이 맡고 있다. 잠깐 외부 전문경영인의 맡은 곳도 있었지만 실패했다. ‘의사라야 병원을 이해한다’지만 정작 일부 의사출신 병원장들은 경영논리에 과도하게 휩싸여 수익증대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필수의료와 지방의사 부족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 정부의 의도대로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는 필수의료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지방에 의사를 10년 정도 머물도록 강제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다. 이미 국내 의료 시스템은 서울과 일부 진료과로 의사가 몰릴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국내 중증외상센터나 응급-중증환자 치료, 수술을 많이 하는 진료과들은 그 중요성에 비해 병원에 돈을 벌어주지 못한다. 언론이나 외부에서는 가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병원장은 수익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필수의료 의사들이  제대로 대접을 못받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이유다. 심장병과 암 환자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들의 사기는 꺾이고 있다.

이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의학 관련 학회장, 병원장들이 의료계의 이익이 아닌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 개선 등 금전적인 인센티브와 함께 의사들이 소신있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의사의 과실이 미약한 의료사고에 대한 배상은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한 번의 의료사고로 빚덩이에 내몰린다면 의사는 수술칼을 잡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이제 얼마 안 남은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분만을 다루지 않는다. ‘여성 의료’라는 묘한 영역으로 병원의 명맥을 유지하는 곳도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워라벨 풍조가 만연한 요즘 의사들만 탓할 수 없다. 의사들도 예전의 권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일부에선 의사에 대한 인식자체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의료계 내부의 희생과 배려도 필요하다. 현재 온 나라의 화두인 공정은 의사사회 내부에서도 중요하다.

병원 화재에도 심장수술에 열중한 러시아 의사의 기사는 하루 종일 ‘많이 본 뉴스’에 랭크돼 있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헌신적인 의사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역시 외국 의사군요..”라는 댓글에 “우리나라 의사들이 더 헌신적입니다”라는 수많은 반박 댓글이 달리는 날이 빨리 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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