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의사로서 AZ 백신을 맞고나서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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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은 상대적이다. 아주 예민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상당한 통증에도 무덤덤한 사람이 있다. 통증의 종류에 따른 차이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나는 대부분 통증을 꽤 잘 참지만 바늘로 찌르는 통증에는 유독 약하다. 그래서 침과 주사를 아주 싫어한다. 그러니 어린 시절부터 예방접종은 아주 불쾌한 경험에 해당했다. 그러면서도 이런저런 불안에 온갖 예방접종을 빠지지 않았다. 한탄바이러스, A형 간염, 황열병, DTP 추가 접종 등 필수가 아니라 권유에 해당하는 예방접종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COVID-19 예방접종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과연 언제 접종이 가능한지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덕분에 우선순위 접종대상에 올랐고 드디어 예방접종을 했다.

그런데 정작 예방접종을 마주하자 긴장이 밀려왔다. 앞서 말했듯, 바늘로 찌르는 통증에 유독 예민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를 향할 때부터 공포를 느꼈다. 물론 예방접종 자체에 대한 걱정은 아니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일명 ‘옥스퍼드 백신’에 대한 음모론, 뜬 소문, 악의적인 선동, 언론의 과장 섞인 기사에도 불구하고 임상의사로, 또 고등교육을 받은 교양인으로, 나는 그런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바늘이 주는 공포와 불안일 뿐이다.

소매를 걷고 오른팔 위쪽이 드러나자 감정은 절정에 도달했다.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아주 약한 따끔거리는 느낌, 이어서 무엇인가 근육을 파고드는 느낌이 전해졌다.

‘밴드를 붙일까요?’란 말을 듣고서야 눈을 뜨고 고개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괜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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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위기가 닥치면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전체의 단점과 장점, 취약한 부분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태평성대의 역사는 재미없고 무료하며 파란만장한 시기의 역사가 흥미진진하다. 물론 그렇다고 흥미진진한 사건이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시대에 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겠으나 어쩌다 보니 임상의사로 신종플루 대유행을 겪었고 이제는 코로나19 대유행을 마주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위기는 개인과 집단의 장점과 단점, 취약한 부분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코로나19 대유행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3월의 ‘대구발 유행’ 또는 ‘신천지발 유행’은 ‘다단계식 종교’가 어떻게 뿌리내리는지 드러냈다. 작년 5월의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은 동성애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를, 이 후 이어진 콜 센터와 물류센터의 집단감염은 한국의 노동형태가 지닌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대유행의 확산경로, 방역, 백신을 대상으로 하는 온갖 음모론은 우리 사회가 정치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분열하여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사회지도층으로 책임을 지닌 사람조차 편협한 논리로 주변을 선동하는 문제를 드러냈다.

이들 가운데 예방접종을 둘러싼 논쟁은 처음부터 첨예했다. mRNA, 바이러스 벡터 같은 새로운 방식의 백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백신반대론자가 겨울잠에서 깨어 굶주린 맹수처럼 기세를 올렸다. ‘새로운 방식의 백신’이란 사실을 악용하여 ‘안전하지 않은 백신,’ ‘생체실험이나 마찬가지인 백신’ 같은 말로 대중에 공포를 뿌렸다.

인문학자 출신의 한 백신반대론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같은 내용으로, 의사 혹은 과학자 출신의 백신반대론자는 자료를 짜깁기하여 교묘하게 왜곡하거나 때로는 아예 그럴듯한 가짜뉴스를 만들어 대중을 현혹한다.

어느 백신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를 두고는 정치성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주장을 펼쳤다. 한쪽은 왜 이것밖에 백신을 확보하지 못했는지, 당장이라도 백신을 전체 인구의 2배 정도 확보하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이 발생할 것처럼 외친다. 다른 한쪽은 ‘국민을 대상으로 백신을 생체 실험할 수 없다’는 자극적인 말을 뿜어냈다.

한쪽은 모더나와 화이자의 mRNA 백신만 ‘구원의 징표’이며 아스트라제네카의 바이러스 벡터 백신은 물백신이라 폄하하고, 다른 한쪽은 mRNA 백신은 수익을 목적으로 한 제약회사의 탐욕스런 산물이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위대한 제품이라 칭송한다.

예방접종을 시작하자 상황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놀랍게도 의료인이 “화이자라면 모를까, 아스트라제네카를 맞다니!,” “나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아니라 화이자를 맞아서 다행이다” 같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고작 65~70%의 효과만 있으니 나머지 35%에 해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같은 발언은 그나마 점잖은 부류다. “백신을 맞아도 변이 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다더라,” “나는 면역력을 높여 이겨 내겠다,” “백신 자체가 아예 의학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같은 주장을 펼치는 백신반대론자도 여전하다. 언론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후 사망 발생” 같은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고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사살이 아니냐?”며 ‘빌라도의 손 씻기’ 같은 태도를 보인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내 주변, 함께 근무하는 의료진 가운데도 “화이자라면 모를까 아스트라제네카라 맞고 싶지 않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좀 위험하지 않나요?,” “벌써 사망자가 나왔고 정부가 숨기고 있으니 찾아보면 더 많을거에요,” “고열 같은 부작용도 정부가 숫자를 조작하고 있어요” 등의 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밝힐 권리가 있고 코로나19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것도 그런 권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는 전문가이며 그에 따른 직업윤리가 있다. 대유행을 맞이한 시점에 백신반대론의 불을 지필 가능성이 큰 행동을 하는 것이 그런 직업윤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평온한 시기에도 백신반대론이 공동체를 위협하는 문제인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뿌려진 씨앗은 대유행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괴롭힐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는 다가올 ‘대유행 이후’를 위해서 우리 모두 조금 더 차분하고 담담해질 수는 없을까?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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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 댓글
  1. 익명

    항상 중심 단단한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멀리 대구에서 응원 합니다

  2. 익명

    종종 이 분의 글을 읽는데, ‘의사’라는 타이틀로 ‘나는 전문가’라는 인식을 강요할 뿐, 근거나 논리가없어 아쉽다. 전체 뉘앙스는 위에 언급한 백신, 특히 아스트라제네카 반대론자들의 얘기가 전혀 근거없는 음모론이라고 몰고 가면서도, 왜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 그 잇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등이 없다.
    참고로, 모더나?의 의학CEO 인터뷰에서, 백신을 맞은 개인의 감염 위험은 줄일 수 있어도, 바이러스 전파 차단 효과는 없다는 얘기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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