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어루만지며 끝까지 ‘발병’ 고치는 의사

[핫 닥터] ③고려대 구로병원 정형외과 김학준 교수

“발 좀 만져보겠습니다.”

지난 16일 오후 2시경 고려대 구로병원 정형외과 진료실. 이 병원 김학준 교수(51)는 30대 환자의 발을 받침대 위에 올리게 하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촉진했다. 벌겋게 부은 오른쪽 발목의 양쪽 복사뼈에서 뜨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살짝만 눌러도 환자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 나왔다. 관절염 탓에 고름이 찬 것으로 의심됐다. 영상 검사와 피 검사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패혈성 관절염. 당장 수술해야 했다. 김 교수는 저녁 개인 일정을 포기했다. 다른 환자 진료를 마치고 밤 9시까지 환자의 코로나19 검사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1시간 남짓 관절경으로 복사뼈의 고름과 활액막 염증 부위를 제거했다. “휴~, 자칫하면 발이 썩어서 자를 뻔했다.”

김 교수는 환자의 발을 정성스레 만지며 시진(視診), 촉진(觸診)하며 발 뼈와 관절의 ‘발병’을 끝까지 책임지는 의사다. 당뇨병, 골수염 탓에 발이 썩어 들어가 악취가 나는 환자도 예외 없이 세심하게 어루만지며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일부 환자는 “큰 병원 의사가 발을 이렇게 꼼꼼히 만지면서 진료하다니…”하면서 고마워하지만, 상당수는 “어, 발 안 씻었는데…”하고 당황해한다. 김 교수는 오히려 “제 손 씻었으니 감염 걱정 마세요”하며 안심시키고 부기와 색깔을 살피며 정성껏 발을 매만진다. 김 교수는 “발은 한쪽에 뼈만 26~27개, 관절 33개 등이 있기에 어느 부위가 아픈지 정확히 살피고 엑스레이를 봐야 환자 상태를 정확히 알 수가 있다”고 말한다.

“진료 전에 환자 앞에서 제 손을 닦습니다. 감염이 심한 환자를 만지고 나서는, 환자가 나가고 나서 손을 닦아야 합니다. 발이 아파서 찾아온 환자의 가슴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는 스승 이석현 교수님의 가르침을 철저히 지키려고 합니다.”

발은 뼈, 관절, 근육, 인대, 신경이 정교한 구조로 연결돼 체중의 98%를 지탱하는 ‘초정밀 주춧돌.’ 인류의 직립보행을 가능케 했고 걸을 때 무릎과 허리, 뇌에 전달되는 충격을 최소로 줄인다. 인류 최고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인체공학의 걸작인 예술작품”이라고 격찬한 부위다. 혈액이 다시 심장으로 올라가게끔 펌프 역할을 해서 ‘제2의 심장’이라고도 불린다. 특정한 병에 걸리지만 않으면 손보다 더 깨끗하지만, 평소 푸대접을 받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불편해지면 몸 전체가 힘들어진다. 서 있거나, 걷기 힘들면 삶이 피폐해진다.

김 교수는 하마터면 ‘의사의 꿈’을 이루지 못할 뻔 했다. 고2 때 어머니가 암 투병 끝에 가족 곁을 떠났다. 어머니를 살릴 수도 있었던 의사를 하고 싶었지만, 고3 때 아버지의 사업마저 부도났다. 휘청거린 가정환경 탓이었을까, ‘선지원 후시험’ 학력고사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아 전기에서 떨어졌다. 후기에 지원하려니 담임이었던 이중섭 교사가 재수를 권했다. 집이 파산해서 재수할 돈이 없자고 토로하자, 이 교사가 장학금을 주는 재수학원을 연결시켜줬다. 재수에서 어느 학교에도 갈 성적이 됐지만 고려대 본관건물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압도돼 고려대 의대에 지원, 당당히 합격해 6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본과 실습 때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데다가, 좋아하는 스포츠와 밀접한 정형외과를 평생의 전공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김 교수는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의대실습, 인턴, 레지던트를 모두 했지만 수련의를 마치고 군의관 근무 뒤 구로병원에는 전임의 자리도 없었다. 2001년 서울보훈병원에 취업했을 때 김택선 부장이 세부전공에 대해 묻자 지체 없이 “발”이라고 대답했다. 발의 소중함에 대해서 깨달아서이기도 했지만, 국내외에서 이 분야 전공이 갓 꽃을 피워 연구할 게 많다는 점에 끌렸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족부정형외과 분야를 개척한 이경태 을지병원 교수에게 제자로 삼아달라고 간청, 강동구 둔촌동의 보훈병원에서 환자를 보며 시간을 쪼개 노원구 하계동의 이 교수 병원으로 가서 발 치료의 ABC를 익혔다.

2006년 김 교수는 미국에서 족부정형외과를 공부하고 온 이진우 세브란스병원 교수, 주인탁 서울성모병원 교수 등의 조언을 받아들여, 미국 볼티모어의 유니언 메모리얼 병원으로 연수를 떠났다. 미식축구 볼티모어 레이븐스 선수들의 발을 책임지고 있는, 족부 분야 세계 최고 수준 병원이었다. 김 교수는 존스홉킨스병원, 조지타운대병원 교수를 겸임하고 있던 ‘족부정형외과 세계적 대가’ 류 숀 박사의 문하에서 매주 3번 진료실, 거의 매일 수술실에서 숀 박사를 도왔다. 뼈와 인대의 연결과 관련한 기초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당뇨병 환자의 발관절염 치료, 발 인공관절 수술 등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사례를 실컷 경험하고 귀국했다.

2007년 서울보훈병원에서 1년 남짓 외상 및 발 손상 환자들을 보고 있을 때 고려대 구로병원 송해룡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교에서 발 질환을 맡아야겠네.” 송 교수도 처음엔 모교에 남지 못했지만 경상대병원에서 왜소증 수술에서 두각을 나타내 모교로 복귀했던 점에서 김 교수와 닮은 점이 있다.

김 교수는 떠날 때와 달리, 완전히 리모델링한 건물에 복귀했다. 무릎수술의 권위자 임홍철 교수가 스포츠 의학실 만드는 것을 돕고, 송해룡 교수의 희귀질환연구소에서 실험을 함께 했다. 김 교수는 처음에는 골절 치료 한 우물을 파서 골절 분야의 세계적 대가로 우뚝 선 오종건 교수가 넘겨준 골절 환자와 보훈병원에서 따라온 환자들을 함께 보다가, 발 치료에 대해 시나브로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족부환자만 보고 있다.

김 교수의 진료 원칙은 환자 눈높이에서 발을 매만지고 나서 환자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는 것. 특히 새 환자에겐 궁금증을 하나도 남기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 때문에 환자 대기가 길어져서 간호사가 문을 노크하는 일도 적지 않다. 발 관절염 환자는 노인이 많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여서 설명하느라 성대에 결절이 생겨 수술을 받기까지 했다. 응급상황이면 당일 진료를 보게 하고, 진료 중 응급상황이면 당일 수술을 본다. 후배 박영환 교수가 오기 전에는 거의 매일 밤에 응급수술을 해야만 했고, 지금도 응급수술을 마다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4500여명의 발을 수술했으며, 특히 발관절염 수술에서는 국내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골수염, 패혈성 관절염, 당뇨발 등의 환자 가운데에는 생명을 살리거나 발 절단을 막은 경우가 적지 않다. 당뇨병성 신경관절병으로 발목이 굽어서 서있기 힘들었던 환자를 뼈 이식, 상처수술 등 무려 16번 수술 끝에 두 발로 딛고 서게 해서 “이제 안 오셔도 된다”고 말할 때는 저절로 입가가 벌어졌다.

지난달 진료실에 찾아온 70세의 환자도 김 교수를 미소 짓게 했다. 환자는 지난해 6월 처음 아들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 얼굴이 사색이었다. 동네 병원에서 발을 잘라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 어릴 적에 가난 탓에 발이 안으로 휘는 ‘첨내반족’을 치료받지 못해 발등으로 딛고 지내는 바람에 상처가 이어지면서 골수염이 생겼다. 김 교수는 환자에게 3개월 동안 항생제로 골수염을 가라앉히고 발의 변형을 바로잡는 수술을 하려고 했다. 절단수술이 아니라 고정수술이라고 설명을 해도 환자는 “다리 안 자르겠다”며 울부짖었다.

수술이 잘못되면 발목을 자를 수도 있었기에 마음을 다잡고 환자 부자를 겨우 설득, 3시간 동안 뼈를 자르고 관절을 붙여 발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만들었다. 환자는 수술 뒤 마취에서 깨자 뼈를 깎은 통증에도 아랑곳 않고 발이 붙어있자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를 되풀이했다. 환자는 퇴원 뒤 지난달 구두를 신고 당당히 걸어서 진료실에 들어왔다. “진작 교수님 만났으면 평생 고생 안했을 텐데….” 김 교수는 환자의 발을 어루만지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족부정형외과를 전공 삼기를 참 잘 했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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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마메리

    정성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이 대단합니다 자신의 직업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 누구보다도 멋진것 같습니다 이러한 분들 덕분에 사람들이 빠르게 회복할수있고 건강함을 되찾는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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