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개발, 공공에 맡겼다면?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클라우제비츠가 꿰뚫어 본 것처럼 전쟁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애매하고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극단적이고 최종적인 방법이며 매우 정치적인 행위다. 그래서 인류가 집단을 구성하고 최초의 권력이 출현한 이래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앞서 말했듯 전쟁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어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병사와 무기를 준비하는 것은 빙산의 조그마한 부분에 불과하다. 병사를 먹이고 재우는 것만 해도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다. 또 전장에 도착할 때까지 병사가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하려면 훌륭한 이동수단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다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는 것이라 자칫 전염병이 창궐하기 쉽고 전투에서 발생하는 사상자 역시 적절히 치료해야 한다.

이런 측면 때문에 전쟁은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히포크라테스 같은 고대의 대가부터 ‘현대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라켈수스까지 군의관 시절의 경험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구급차’란 개념을 만들고 오늘날에도 대규모 환자가 발생하는 재난 상황에서 널리 사용하는 ‘검정, 빨강, 노랑, 녹색’의 환자분류법을 만든 도미니크 장 라레는 나폴레옹 1세가 총애하는 군의관이었다.

또, 대규모 예방접종과 항생제의 발명에도 전쟁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천연두 백신인 종두법을 확립한 에드워드 제너는 영국인이지만, 최초의 대규모 접종은 나폴레옹 1세의 군대에서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장티푸스 백신도 보어전쟁에서 해당 질병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자 깜짝 놀란 영국군 수뇌부가 1차 세계대전 때 서부전선에 투입하는 모든 부대원들에게 접종했다.

항생제도 마찬가지다. 장티푸스 백신과 상처를 소독하는 방법 덕분에 1차 대전 당시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확실히 감소했지만 여전히 심각한 상처감염, 특히 가스괴저(Gas gangrene)라 불린 치명적 감염은 많은 병사의 생명을 위협했고 서부전선의 춥고 습한 참호에서는 발진티푸스가 창궐해서 항생제가 절실했다. 그리하여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20년의 평화 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1930년대 말에는 설파제, 1940년대 중반에는 페니실린이 개발돼 상처감염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전쟁을 수행하는 것에 꼭 필요했기에 커다란 전쟁을 겪을 때마다 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앞서 말했듯 전쟁은 가장 극단적이며 최종적인 정치행위라 승리하면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패배하면 비참한 곤경이 기다려서 어떡하든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자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차 대전 이후 대규모 전쟁이 사라진 요즘에는 무엇이 의학발전을 이끌까? 전쟁을 수행하려고 국가가 의학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다국적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남기려고 의학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전쟁 수행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했다면 오늘날에는 ‘그걸 팔면 얼마나 이익이 남느냐?”가 중요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20세기 끄트머리부터 항생제의 개발은 큰 진전이 없다. ‘슈퍼박테리아’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와 함께 적지 않은 사람이 내성균의 출현을 경고하지만 아직까지는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해도 투자와 비교하면 큰 이익을 남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에 20세기 끄트머리부터 항암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덕분에 과거에는 생존율이 매우 낮던 암의 생존율이 크게 올라가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생존기간이 확연히 길어졌다. 항암제가 이렇게 항생제와 다른 길을 걷는 이유는 일단 개발하면 막대한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예방접종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중반부터 에볼라가 주기적으로 창궐해도 아직까지 예방접종의 개발이 느린 이유는 희생자 대부분이 가난한 아프리카인이어서 막대한 자원을 투자해서 백신을 개발해도 다국적기업에 별다른 이익이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에이즈바이러스(HIV) 역시 미국과 유럽 같은 부유한 국가에도 널리 퍼져 사람들을 경악시키지 않고 ‘아프리카의 병’으로 남았다면 오늘날 같은 효과적인 치료제를 얻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백신을 겨우 1년도 채우지 않은 짧은 시간에 개발한 것도 미국과 유럽의 여러 부유한 나라에도 크게 퍼져 일단 개발하면 확실한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백신의 분배’를 놓고 윤리 문제가 발생했다. 부유한 국가는 전체 국민을 몇 번이나 접종하고도 남을 만큼 백신을 확보한 반면, 가난한 국가는 막상 코로나19에 걸리면 치료하기도 쉽지 않고 효과적인 방역도 어려워 한층 백신이 절실함에도 ‘다음 순위’로 밀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백신의 공공성’을 말하면서 “코로나19 백신 같은 사례에서는 지나치게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걸음 나아가 백신 같은 중요한 부분을 개별기업에게 맡기지 말고 정부 혹은 국제기구가 관장하자는 말도 들린다.

그런 주장이 과연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항생제의 개발은 더디고 항암제의 개발은 빠르며 에볼라 백신은 아직 상용화하지 못했으나 COVID-19 백신은 이미 접종을 시작한 이유는 모두 수익성과 관련 있다. 다국적기업은 수익성이 보장되는 일에는 무시무시한 효율성으로 접근하지만 그렇지 못한 일은 아예 무시한다. 그러니 ‘백신의 공공성’을 말하고 ‘개별기업에 맡기지 말고 정부 혹은 국제기구가 관장하자’는 주장이 언뜻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 혹은 국제기구가 백신을 관장하면 지금처럼 빨리 백신을 만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예 백신을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정부와 국제기구가 백신 개발에 나서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관료제에 물든 거대한 괴물 같은 조직이 ‘백신 개발’ 같은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리라 믿는 부류는 몽상가뿐일 것이다. 지난 20세기 ‘소비에트 연방’이란 이름으로 러시아가 70년 동안 진행한 실험을 살펴보면 ‘사사로운 이윤’이 아니라 ‘공익’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일이 현실에서는 이상과 얼마나 괴리하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코로나19 대유행이 지나도 우리에게는 어려운 과제가 남을 것이다. 다국적기업의 탐욕스런 이익추구를 두고 볼 수만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백신 개발 같은 영역을 국가 혹은 국제기구가 관장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따라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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