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의 어원과 흑사병의 유럽전파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검역은 영어로 quarantine인데 40을 뜻하는 라틴어 quarant, 혹은 40일간을 뜻하는 단어 quarantina에서 나온 말이다. 검역이라는 말이 왜 40 또는 40일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됐을까? 여기에는 흑사병이라는 전염병과 관련된 슬픈 역사가 있다.

페스트라고도 불리는 흑사병은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 원인으로 쥐에 기생하는 쥐벼룩이 페스트균에 감염되어 사람을 물거나 흑사병에 걸린 사람의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전염된다. 흑사병은 1300년대 단 5년간 유럽인구의 1/3인 약 2천만명, 전 세계 인구 중 약 1억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증상발현 후 사망까지의 기간이 짧을 뿐 아니라 치사율도 매우 높았다. 평소에 건강한 사람도 흑사병 증상이 나타나면 다음날 아침에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페스트가 유행했던 당시 사람들은 흑사병의 원인과 전염경로를 알지 못했다. 또한 영혼의 정결을 중시한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로마식 목욕이 쾌락주의와 관계가 깊다고 배척함에 따라 목욕문화가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페스트는 급격히 유럽전역에 번져 나갔다.

그렇다면 흑사병은 그전에는 없었던 전염병일까? 그렇지는 않다. 흑사병은 몽골과 같은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풍토병으로 이미 있었던 질환이었지만 초원지대는 사람들이 성기게 살았기 때문에 풍토병은 국지적으로 발생했다. 이러한 흑사병이 유럽으로 퍼지게 된 계기는 바로 카파(오늘날 러시아 남부 베오도이야)전투였다. 카파는 이탈리아 제노바 상인들이 만든 식민도시로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되는 무역도시였다고 한다. 14세기 중반 베네치아 상인과 몽골 상인이 크게 다투고 베네치아 상인이 몽골 상인의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이 있어 났는데, 남러시아에 들어선 몽골왕조 ‘킵차크’ 왕인 자니베크가 이를 이유로 카파를 공격하면서 카파전쟁이 발생하였다.

몽골군대는 카파를 둘러싸고 몇 년 동안이나 공격했지만 도시를 점령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흑사병이 몽골군대에 돌면서 약 4만명의 병사 중 2/3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화가 난 몽골군주 자니베크는 전염병으로 사망한 몽골군사들의 시체들을 투석기로 카파 성안에 던졌다고 한다. 이에 카파에 살던 대부분의 서민들은 성안에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체를 불에 태우거나 바다에 버리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하였는데 성안 귀족들은 자신들이 전염병에 걸릴 것이 두려워 배를 타고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로 도망갔다. 이 귀족들과 함께 흑사병의 매개체인 쥐와 쥐벼룩도 함께 유럽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흑사병이 유럽에 창궐했다고 한다.

흑사병을 겪은 후 베네치아 사람들은 병균이 이동하는 배를 통해 다른 나라에서 옮겨왔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외국에서 온 모든 선박은 멀리 떨어진 섬에 40일간 정박하여 대기하도록 칙령을 내렸다. 정박한 배 안의 사람들이 흑사병이나 다른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도시에 들어올 수 있게 하였는데 이것이 검역의 시초이다. 이렇게 40일간 대기한다는 말에서 40 또는 40일을 뜻하는 quarantine이 검역 또는 격리라는 뜻으로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 세계가 서로 밀접하게 인류공동체로 묶여 무역과 왕래가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는 지금은 어느 한 지역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빠른 속도로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이러한 전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는 신속하게 병의 원인을 발견하고 자주 손씻기, 마스크쓰기, 예방주사 맞기 등 전염병의 전파를 막을 수 있는 철저한 개인위생 관리가 중요하다. 또한 전염병에 걸렸다고 의심되거나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분리시키는 등 병균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은 이런 병과 상관이 없다고 당국의 조치를 무시하거나 따르지 않는 행위는 결국 그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전염병 예방에 예외는 없다는 사실을 꼭 알아 둘 필요가 있겠다.

    박창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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