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기쁨 선물하는, 폐이식 개척 의사

[대한민국 베닥] ㊱호흡기질환 수술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백효채 교수

여덟 살배기 아이가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에 생명을 의지한 채 힘겹게 숨 쉬고 있었다. 백혈병으로 골수이식을 받았지만, 면역이상 반응이 생겨 폐 기능을 잃은 아이였다. 생명을 살릴 유일한 방법은 폐이식 수술. 그러나 아이가 너무 오래 중환자실에 누워있어 수술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의료진 사이에서 “폐를 이식해도 위험할 수 있으니 이식 대기자 우선순위에서 빼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까지 나왔다. 의료진이 고민을 거듭할 때 지방에서 뇌사자가 생겼다는 급전이 전해왔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백효채 교수(63)는 뇌사자의 폐가 도착하자마자 8시간에 걸쳐 폐 이식을 시행했고, 아이는 시나브로 호전돼 열흘 뒤 에크모를 뗄 수 있었다. 허나, 1주일 뒤 아이의 폐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다시 에크모를 연결해야하는 응급상황으로 돌변했다.

그러나 부모는 더 이상 딸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병원 밖에서 저녁을 먹던 백 교수는 급히 돌아와서 부모를 설득하고 겨우 에크모를 달았다. 아이는 7일 뒤 폐가 회복돼 또래들이 있는 소아과 병실로 옮겼다. 백 교수가 아이의 병실에 갔더니, 간병에 지친 엄마는 졸음과 싸우고 있었고 아이 혼자 신나게 게임에 빠져 있었다. 백 교수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맺혔다. 아이는 퇴원 뒤 최근 외래진료를 왔다가 정성들여 그린 감사카드를 백 교수의 손에 쥐어주었다. 카드에는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선생님,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백 교수는 폐가 손상돼 사선(死線)에서 가쁜 쉼을 쉬는 환자를 이식수술로 살리는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의사다. 1996년 스승 이두연 교수와 함께 국내 최초로 폐이식 수술에 성공한 이래, 대한민국 의학사에 남을 각종 기록을 세우며 1월24일 현재 376명에게 수술을 시행했다. 양쪽 폐이식(2000년), 성인 폐-심장 동시 이식(2002년), 백혈병 환자 폐이식(2011년), 인공심폐기 대신 에크모 사용 폐 이식(2013년), 간-폐 동시이식(2015년), 신장-폐 동시이식(2016년), 뇌사자 폐-생체 간 동시이식(2019년) 등 각종 영역을 개척하면서 우리나라 전체 폐이식의 1/3을 넘는 수술을 맡아왔다.

백 교수는 2015년부터 매년 4월 마지막 토요일에 이식수술을 받았던 환자들과 전국에서 모이기 좋은 충청도로 산행을 간다. 백 교수가 10여 년 전부터 환자들에게 “수술에 성공하면 무엇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산에 가고 싶다, 여행을 가고 싶다가 1, 2위였다. 수술 뒤 해외여행 다니는 환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엄두를 못내는 걸 가슴에 담고 있다가, 어느 날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닌다는 환자에게 모임을 갖자고 제안했다.

백 교수는 이식발전기금을 쪼개 서울과 부산에 버스를 보낸다. 하산 뒤에는 한 환자가 회복해서 문을 연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탓에 취소했지만 매년 환자와 가족 등 100명 가까이 모여 떠들썩하다. 산 정상에 서면 몇몇 부부들이 자신을 붙잡고 엉엉 운다. “이렇게 여기에 오를 수 있다니, 감사합니다, 감사….” 백 교수 자신도 코끝이 찡, 눈가를 훔친다.

산행이나 환자모임에서는 숱한 환자들이 새 삶을 얘기한다. 임신 때 태아를 위해 살균제 가습기를 샀다가 폐가 굳어 몇 발짝도 걷지 못하다가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고 폐 이식 뒤 삶을 찾은 여성, 이식수술로 폐를 찾고 성악을 재개한 테너, 새로 얻은 허파로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한 환자…. 2019년 6월 폐 이식 300례 달성 축하 환우행사에서는 성악과 색소폰 연주로 이뤄진 연주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백 교수의 도전에서 승전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패와 좌절이 적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수술한 환자가 침상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한 경우도, 수술에 성공했다싶었던 환자가 나중에 합병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폐는 다른 장기와 달리 이식 후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므로 감염의 위험이 크고 이식 폐의 크기와 질을 맞추기가 까다로운데다가 우리나라는 아주 위중한 환자들이 이식수술을 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에크모를 연결해 누워있을 때 의식 없는 환자에게 뇌졸중을 비롯한 온갖 병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폐 이식수술은 잘 됐지만 예상치 못하는 합병증으로 환자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환자는 수술 뒤에 면역거부반응을 이겨내야 하고, 평생 면역억제제를 철저하게 복용해야 한다.

백 교수는 ‘수술노트’에 수술이 성공해 퇴원한 환자는 검은색, 실패한 환자는 빨간색 줄을 치며 정리했는데, 초기에는 빨간 줄이 더 많았다. 빨간 줄이 이어질 때에는 이 수술을 계속 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맘껏 숨 쉬고 싶다는 환자의 소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실패에 무릎 꿇고 포기하지 않은 결과, 지금은 검은 줄 10~15개 사이로 빨간 줄이 1개 정도 그려질 정도로 성적이 좋아졌다. 폐기능을 거의 다 잃은 중환자 이식수술의 성공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백 교수는 최근 환자들의 밝은 모습을 보고 뒤돌아서서 떠나보낸 아쉬운 환자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때 지금처럼 이렇게 했으면 살았을 텐데…”하며 안타까움에 젖기도 한다.

백 교수는 어쩌면 미국에서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버지가 미국 대사관 무관으로 부임했을 때 도미해서 그곳에서 청소년기를 마치고 버지니아 주립대 생화학과에 입학했다. 대학2년 때 군대에 입대하려고 귀국, 출생지인 경남 진주에서 신체검사까지 받았지만 그 무렵 누나가 위암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누나는 눈을 감으며 “훌륭한 의사가 돼 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백 교수는 군 입대를 미루고 의대에 진학했다.

백 교수는 의대 졸업 후 누나를 살릴 수 있는 외과를 지원하려고 할 때, 동기생(유경종 현 연세대 의대 교수)의 제안을 받고 흉부외과로 방향을 틀었다.  생명을 극적으로 살리지만 육체가 힘들기로 악명 높은 흉부외과 전공의 생활을 ‘즐겁게’ 마치고 군의관을 거쳐, 전공의 때 논문지도를 해준 이두연 교수 문하로 들어갔다. 이 교수는 당시 새로 출범한 영동세브란스병원(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폐 이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사제는 1996년 국내 최초로 폐 이식에 성공했다.

백 교수는 이듬해 폐이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유명한 대학병원보다 실제로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았고,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토머스 이건 교수로부 ‘OK’ 사인을 받았다. 그곳에서 백 교수는 미국 의사 자격증을 취득해 2년 동안 50여 건의 이식수술에 참가했다. 폐 적출 환자가 있으면 비행기나 앰뷸런스를 타고 가서 폐를 떼 왔고 수술이 없을 때에는 실험실에서 이식 전후 관리를 위한 동물실험에 매달렸다.

백 교수는 1998년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돌아와서 스승과 함께 이식수술을 재개했고, 7번째 환자부터 스승의 메스를 이어받아 집도하기 시작했지만 수술노트에는 ‘검은 줄’이 ‘빨간 줄’을 이기지 못했다. 수술 환자가 늘어나고 조금씩 검은 줄의 비율이 늘어났지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환자 때문에 고민하는 날이 계속 됐다. 그는 2012년 “환자의 예후가 좋으려면 좀 더 인적 여유가 있는 곳에서 여러 과의 협력이 절대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폐 이식 팀’을 꾸려 호흡기내과, 흉부외과, 진단방사선과, 병리학과 등의 의사들과 협력하면서 수술노트의 ‘검은 줄’이 쑥쑥 늘어났다. 인공심폐기가 아니라 에크모를 사용하면서 수술 성공률이 높아졌다. 면역반응 때문에 폐를 잃은 백혈병 환자들의 폐 이식에 잇따라 성공했고 2019년에는 이식외과 주동진, 호흡기내과 박무석, 간담췌외과 한대훈 교수와 함께 살아있는 사람의 간과 뇌사자의 폐를 동시에 이식하는 고난도 수술에도 성공했다.

백 교수는 흉부외과 인력난이 해결되지 않아 소수의 제자들과 고되게 환자를 보고 있다. 어쩌면 제자가 없어서 이식수술을 더 이상 하기 힘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끔씩 등골이 오싹해진다. 폐 이식을 하려면 병실 보는 의사, 폐 떼 내오는 의사, 수술 준비하는 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 인원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 백 교수는 평일 낮에는 폐암, 흉격종양, 흉선암, 종격동종양 등의 환자를 수술하고, 1주일에 한번 꼴로 밤을 새워 폐 이식 수술을 한다. 폐 이식 수술은 보호자 동의 절차와 적출 등이 낮에 이뤄지므로 대부분 밤에 수술을 시작해서 새벽에 끝난다.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곤할 때 진료실에서 이식수술 환자들을 보며 “이 분이 아직 살아서 나를 보러 오다니….”하고 느낄 때 의사의 보람을 느끼며 기운을 차린다. 환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도 기운을 북돋는다.

“아침에 일어나 숨을 쉬어보면 너무 행복해요.” “새로 얻은 삶, 나를 지켜준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제게 폐를 주신 분과 세상에 보은하려고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가끔씩 이 말을 들을 때 휘파람이 절로 난다. “선생님, 저 드디어 복직했습니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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