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진짜 영웅은?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뼈를 깎는 심정으로 고객에게 거리두기의 협조를 구하는 식당의 안내문 [사진=뉴스1]
기차는 그들 대부분에게 ‘최초의 경험’에 해당했다. 아예 태어난 마을을 처음 떠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기차에서 긴 시간을 보낸 다음 커다란 역에 도착하자 모든 것이 얼떨떨했으나 주변을 살필 여유는 없었다. 군복을 차려입은 ‘높은 분’의 감독 아래 몇 무리의 병사가 그들을 서로 차지하려고 몸싸움까지 벌이며 다투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주먹다짐을 넘어 권총까지 뽑아 드는 험악한 흥정을 거쳐 그들이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된듯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전선에 다다르자 황량한 풍경이 맞이했다. 그들에게 익숙한 나무와 흙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며 무너진 건물 더미, 먼지, 매캐한 연기가 전부였다. 그들 대부분에게 도시의 모습은 ‘거대한 무덤’과 같았다.

그러나 감상은 당연하고 두려움과 긴장에 빠질 시간도 없었다. 총알을 비롯한 보급품을 대충 지급하더니 바로 전투가 기다렸다. 지휘관과 정치장교가 고함치며 그들을 독려했다. ‘파시스트 놈을 심판하자’, ‘스탈린 동지는 그대를 믿는다’, ‘스탈린 동지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 같은 내용이었지만 그들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도 처음 듣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섬뜩한 사이렌과 함께 처음 보는 물체가 하늘에서 그들을 덮쳤다. 그때는 그 물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나 본능에 따라 그들은 흩어져 몸을 숨겼다. 그러는 동안 사냥감을 낚아채는 매처럼 그들에게 다가온 물체는 폭탄을 투하하고 다시 날아올랐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고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찢겨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여전히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여유는 없었다. 지휘관과 정치장교는 그들에게 돌격하라고 소리쳤다. 머뭇거리자 정치장교의 권총이 불을 뿜고, 그들 가운데 불운한 몇 명이 쓰러졌다. 정치장교가 권총을 쏘며 무섭게 소리치는 동안 지휘관은 기관총을 겨누었다. 아군의 기관총에 쓰러지는 것보다는 앞으로 돌격하다 독일군에게 죽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그들은 돌격했고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했다.

파죽지세로 소련의 영토를 정복하던 독일군의 기세가 꺾인 1942년 초반부터 독일과 소련이 마주한 전선, 특히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비슷한 양상의 전투를 반복했다. 훗날 ‘2차 대전 당시 소련에서 유능한 장군이란 뛰어난 전술가가 아니라 우랄산맥 쪽에서 도착하는 병사를 다른 장군보다 많이 끌어 모아 전선에 투입하는 관료를 의미한다’는 농담이 생길 만큼 소련군은 병사의 생명을 값싼 소모품처럼 사용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련군의 우수한 무기가 빛을 발휘했지만 여전히 단순히 사상자를 비교하면 대부분 독일보다 소련이 많았다.

물론 소련의 작전은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자기네 장점으로 독일의 장점을 무력화하고 자기네 단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독일의 단점에 치명타를 가하는 매우 뛰어난 전략이었다. 다만 그랬기에 엄밀히 말해 ‘소련의 2차 대전 승리’는 스탈린의 업적도 아니고, 장군들의 업적도 아니며 순전히 비참하게 희생한 많은 이름 없는 병사의 희생이 만든 업적일 뿐이다. 이렇게 이름 없는 많은 평범한 사람의 희생으로 ‘위대한 승리’를 이루면 정치인과 관료가 그 영광을 차지하는 사례는 소련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한 달 남짓 ‘거리두기’를 핵심으로 하는 강력한 방역조치 덕분에 드디어 코로나19의 3차 유행도 기세가 한풀 꺾였다. 추위의 고비라는 대한(大寒)도 지났으니, 지금껏 우리가 해온 것만큼 견뎌내면 이 겨울도 큰 희생 없이 버텨낼 수가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K방역’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앞으로도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K방역의 성공’이란 영광이 정치인, 관료, 의료인에게 집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영광은 강력한 방역조치 때문에 생존의 위협에 내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일용직 노동자 같은 많은 ‘평범한 사람’이 희생으로 만든 슬프고 쓰라린 승리이다. 칼바람과 배고픔 속에서 생존과의 싸움을 하면서도, ‘우리’를 위해 입을 앙다물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삼킨 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유행이 변덕스럽게 모습을 바꿔가며 진행되는 와중에도, 어느덧 대유행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아야겠다. 또 정치인과 관료는 대유행이 끝난 뒤 따먹을 과실에 집중하지 말고 대유행의 거센 파도를 막기 위해 희생하는 많은 사람을 지금 어떻게 실질적으로 도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들에 대한 손실 보상은 유동성을 늘려 경제 회복에 집중하는 현금지원과는 접근하는 길부터 달라야 한다. 이들의 희생적 협조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 패자가 돼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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