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1만5000명에 새삶 선물한 69세 ‘젊은 의사’

[대한민국 베닥] ㉟소아정형외과 분야 중앙대병원 최인호 교수

중앙대병원 정형외과 최인호 임상석좌교수(69)는 11일 오후 아침부터 시작된 수술 일정을 마치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소아정형외과 베스트닥터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겸연쩍어했다. 비록 소아정형외과 분야를 지원하는 의사가 적고, 많은 대학병원에서 소아정형외과 전공 의사들이 다른 분야까지 담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세계적 연구, 진료 성과를 내고 있는 후배 의사들이 자신보다 훌륭하다면서….

최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스승인 이덕용 교수의 뒤를 이어 국내 소아정형외과 학문의 체계를 세우고, 학계를 세계적 수준으로 이끈 권위자다. 한 해 400여 명의 어린이 환자를 정성껏 수술하며 부모들의 눈물을 닦아주던 그가 2017년 9월 퇴임 후 중앙대병원으로 옮긴다는 소식은 의료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이직 후 전임의 없이 수술해야 해서 수술 건수는 서울대병원의 절반으로 줄었지만, 퇴임 후에도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보다 더 충실해서 아이들에게 최고의 수술을 하기 위해 생활과 체력 관리에 철저한 삶을 살고 있다.

최 교수는 대한민국 역사의 편린들이 박혀있는 삶을 살아온 의사이기도 하다. 그는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기 위해 의사의 길로 접어들어 50년 동안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어머니는 1951년 1.4 후퇴 때 먼저 월남한 남편을 찾아 아들을 업고 피란길에 올랐다가 인민군에게 집단구타 당했다. 등에 업은 아들을 졸지에 잃고 피범벅이 된 몸으로 눈물을 삼키며 절룩절룩 남쪽으로 걸어왔다. 그때 부상이 도져 평생 장애인으로 지내야했다. 어머니는 인천에서 남편과 극적으로 재회했고 이후 낳은 아들에게 늘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최 교수는 고1 때 아버지를 암으로 잃고, 가난 속에서 공부하며 힘들 때마다 인천 응봉산에 올라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아래에서 서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가슴을 다잡았다. 부두에 정착한 선박들을 보며 ‘공대에 들어가서 저 배들을 만들어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해야지’하고 마음먹었다가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를 보며 의사가 돼 어머니를 끝까지 돌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기를 되풀이했다.

최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 입학해서 비록 가난했지만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지냈다. 의예과에서는 문예반과 역도반에 들어가 문무(文武)를 익혔으며 보디빌딩을 해서 ‘미스터 서울대’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딴, 서울대 우등생들의 기숙사 ‘정영사’에 들어가서 공부에도 열심이었다. 기숙사에서는 월남전에 지원했다가 두 다리를 잃은 고고인류학과 복학생의 두 발이 됐으며, 밤에는 다른 학생들이 없을 때 함께 목욕하기도 했다. 그 복학생은 미국에 유학 다녀온 뒤 의료보조기 산업 분야를 개척한 박윤서 전 한국의료보조기협회 회장.

최 교수는 본과 4학년 때 굽은 다리를 펴게 하고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키며, 어머니도 좀 더 치료할 수도 있는 정형외과에 지원했다. 그는 전공의 2년차 때 두 가지 경험을 하면서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경험은 30대 혈우병 환자가 고관절염이 발병,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가 피가 멎지 않아 응급실에 왔을 때였다. 최 교수는 전공의로서 몇 주 동안 온힘을 다해서 환자를 봤지만 운명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환자는 마지막으로 “수고했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하고 눈을 감았다. 눈가에 흐르는 환자의 눈물을 보면서 최 교수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최 교수는 의사로서 겸허를 배웠고, 이후 한 명의 환자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최 교수는 그 무렵 전남 소록도에 가서 6개월 동안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다. 환자들이 처음 온 젊은 의사에게 극도로 거부감을 보이자 회식 때 환자들의 볼에 뽀뽀를 해 마음의 거리를 없애고 그들의 병을 치료했다. 그는 어머니보다 훨씬 힘들게 사는 환자들과 부대껴 지내면서 제대로 실력을 갖추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가슴에 새겼다.

최 교수는 전공의를 마치고 군의관 복무를 거쳐 전임의에 임용된 뒤 대한민국 소아정형외과 태두인 스승 이덕용 교수의 주선으로 미국 델라웨어 주 알프레드 듀풍 어린이병원 딘 매퀘인 교수 문하로 연수를 떠났다. 델라웨어에서 4개월 동안 밤낮 연구에 매진했지만, 매퀘인 교수가 갑자기 대서양 연안 최고급 시설의 병원을 떠나 남부 슬럼가의 뉴올리언스 어린이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아이비리그 출신의 다른 제자들은 따라가기를 꺼렸지만 최 교수는 의리를 지켰다. 스승은 자신을 따라온 제자가 열악한 환경에서 연구와 진료에 몰두하는 모습에 감동받아 7개월 뒤 “장학금을 주선했으니 알프레드 듀퐁 병원에서 마저 연구하라”고 선물을 줬다. 최 교수는 미국 연수기간 어머니가 앓았던 화농성 고관절염에 대한 논문을 비롯, 국제학술지에 3편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뉴올리언스에서는 미국에 들른 가브릴 일리자로프 박사를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일리자로프는 다리뼈를 자른 다음 특수 장치를 설치해 뼈를 늘리는 방법으로 키를 키우거나 휜 다리를 교정하는 수술법을 개발한 당시 소련의 전설적 의사다. 병원의 동료가 라틴어로 된 ‘일리자로프수술법 책’을 가져오자, 사진과 설명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책을 외우다시피 거듭 읽고 나서 고국의 스승 이덕용 교수에게 보냈다. 최 교수는 서울대병원에 복귀하자마자 토끼 500여 마리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쥐를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한 뒤 국내에서 이 수술을 처음 선보였고 사지 연장술 및 변형교정학회의 창립을 주도했다. 일리자로프 수술 장치가 한쪽에 250만원이나 해서 환자에게 부담이 되자 국산 장치를 개발해서 상용화에 성공했다.

최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있을 때부터 제자들이나 간호사들에게 절대 자신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오로지 환자만 신경 쓰라고 가르쳤다. 중앙대병원에 처음 왔을 때에는 이런 신념을 잘 모르는 의료진에게 두 번 불호령을 내면서 시스템을 바꿨다. 주말에 화농성 관절염 환자가 입원했는데 응급실에서는 세계적 대가에게 연락할 엄두를 못 내고 화요일 교수 진료시간에 오라며 돌려보냈다.

최 교수는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 ‘환자를 의사 스케줄에 맞추다니…,’ 아연실색했다. 한 명은 화요일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당장 수술일정을 잡아서 그날 밤 수술했고, 한 명은 월요일에 보고를 받고 중앙대병원에서 수술 여건이 안 되자, 급히 제자들이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보내 수술 받도록 했다. 중앙대병원 측은 즉시 문제 개선 시스템을 마련했고, 최 교수에게는 전문 간호사를 배치하며 진료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최 교수는 요즘 세 가지 기쁨으로 하늘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첫 번째는 정년퇴임하고도 환자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소록도에서 근무할 때 천주교로 개종한 그는 하늘이 준 소명에 충실하기 위해서 체력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서 10분 스트레칭을 한 뒤 턱걸이 10회, 팔굽혀펴기 70~100회를 한다. 잠원동 집에서 흑석동 병원까지 한강 둔치를 따라 걸어서 출퇴근한다. 정형외과 의사답게 몸에 좋은 자세로 매일 12㎞, 1만8000걸음을 어김없이 걷는다. 6층 연구실까지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며, 프란체스카 기도문을 독백하며 하늘이 준 기회와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되뇐다. 연구실에서도 매일 틈틈이 100회 이상 팔굽혀펴기를 하며, 아령도 양팔 100회씩 한다.

“지난해 봄에 철봉을 샀는데, 6개월 동안은 한 개도 못하고 매달려 있다가 7개월째 안으로 감싸며 올라가는 자세 1개에 성공했고 지금은 그 자세로 5개, 정상 자세로 5개씩 10회를 매일 꼭꼭 합니다. 근육이 단단하게 붙었습니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했는데 신체나이가 실제보다 8, 9살은 어리게 나왔어요.”

둘째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병원의 젊은 의사들이 어려운 환자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이메일을 보내면 곧바로 의견을 전한다. 국내외 학회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으며 IPOTT(국제소아졍형외과싱크탱크)의 정회원 75명 가운데 한 명으로 ‘민간외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대부분의 학회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9월 온라인으로 개최된 일본골연장변형고정학회에서 특강을 했다. 또 JBJS(골관절수술저널)의 온라인 학술지 부편집장과 엘리트 리뷰어로서 해외 논문들을 꼼꼼히 검토하고 있다.

셋째, 수 십 년 전에 수술 받은 환자들이 인사 올 때의 기쁨이다. 20여 년 전 선천성 질환으로 다리를 잃을 뻔 했다가 수술을 받은 뒤 회복해 우체국 직원이 됐다고 찾아온 환자, 미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시험 친다며 옛 진료기록부 떼러 귀국한 환자 등 매년 4, 5명이 대견하게 성장해서 찾아온다. 환자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참가하는 것도 큰 기쁨이다. 일부 환자는 부모에게 문안 인사하듯,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이메일이나 전화로 안부를 전해온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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