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리그…의료현장 속 학벌주의

[박창범의 닥터To닥터]

드라마 ‘하얀거탑’을 기억하는가? 2007년에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로 일본소설이 원작이다. 드라마 속 대학병원을 배경으로 권력에 대한 강력한 야망을 가진 천재의사 장준혁의 끝없는 질주와 그의 삶의 모습을 그렸다. 장준혁은 집안배경이나 여러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유명 대학병원의 외과과장이 되기 위해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장준혁이 근무하는 명인대학교병원은 서울에 위치한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 다른 드라마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실력이 낮거나 지방대학 출신자들이 출신성분으로 인해 차별을 받고 있는 설정을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에서 괴짜 천재의사 김사부는 국내 유일의 천재의사이지만 살릴 수 있었던 환자의 죽음을 계기로 도망치듯 ‘서울’에서 ‘지방’의 작은 돌담병원으로 옮겨갔다는 설정이다. ‘흉부외과-심장을 훔친 의사들’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서울의 태산병원 흉부외과 부교수로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지만, 지방대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입시기관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방에 있는 의과대학도 들어가기는 매우 어렵다. 이제는 지방에 있는 의과대학에 떨어지면 서울대에 들어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할 말을 다 했다. 하지만 의사라는 전문직에서도 명백히 학벌의 장벽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학벌주의가 특히 잘 나타나는 것은 각 병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의사진을 소개할 때 수련병원이나 경력이외에 어느 대학 출신이라는 것을 꼭 밝힌다. 의전원출신의 경우 졸업한 의학대학원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면 어느 학부를 나왔는지 밝히기까지도 한다. 이러한 현실과 함께 사람들의 학벌에 대한 편견도 여전하다. 예를 들어 필자의 가족모임을 하다가 한 분이 S대학병원에 진료를 받고 있다고 하니 사람들이 부러운 눈초리를 보낸 적이 있다. 어떤 환자는 자신이 서울 유명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것에 대하여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한 선배는 가정의학과로 서울에서 개업을 하였는데 환자의 부모가 ‘그런데 선생님은 학교 어디 나오셨나요?’라고 대놓고 물어보아서 당황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개인병원의 상당수가 S의원, Y의원으로 개업하고 있고 병원 내부를 출신학교의 로고로 도배를 하고 있다. 또한 S의원이나 Y의원의 상당수가 S, Y대 출신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이러한 사회적 기류에 편승하여 병원들은 실력에 상관없이 S대 출신을 모시기에 목숨을 건다.

그렇다면 의사와 같은 전문직에서도 학벌을 평가하는 관행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생각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학력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안전한 방식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개인의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좋은 학벌은 우수한 두뇌, 성실성, 인내심을 증명한다고 보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다. 대체로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들의 실력이나 인성을 출신학교로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수많은 의사들이 일하는 것을 봐 왔지만 내가 본 최고로 감동적으로 진료를 보는 의사, 가장 유능한 의사들은 서울의 소위 S대 출신이 아니었다.

특히 실제 의료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다양한 능력이 필요하고 그 능력의 차이는 학교출신성분과 상관이 없었다. 당연하다. 대학입시에 사용되는 평가시스템은 대학공부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직이라면 몰라도 사회의 다양한 일을 잘 해낼 능력을 평가할 만능도구가 아니다.

둘째로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선배들이 이러한 벽을 더욱 강화하는 경향도 있다. 기존의 병원의 상층부에 있는 좋은 학벌을 가진 임원들은 자신과 동질적인 존재가 편하고 선후배의 위계질서에 편입시키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셋째로 환자 혹은 일반인들의 학벌에 대한 믿음을 투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SKY,서,성,한,중,경,외,시’로 표현되는 극단적인 학벌주의가 의료현장에도 투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윤극대화라는 기업목표의 관점에서 보면 의사의 학벌타령은 사회적 배려와 공공성은 물론이고 효율성 차원에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료진의 동질화로 인하여 배타성이 더 커질 뿐이다.

현재 많은 사람이 지방에 있는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보다 S대 꼴찌로 졸업한 사람의 실력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학벌주의는 대학이라는 학위보다는 사회에서 노력을 통해 실력을 갈고닦은 사람들의 노력을 허사로 만든다. 물론 지금의 학벌주의는 우리가 배우는 능력주의와 한참 먼 구시대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양한 능력들이 각기 다른 기준을 통해 정확하게 평가받고 보상받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앞서 개업한 가정의학과 선배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선배는 개업하고 6개월까지는 어디 학교를 나왔는지 물어보는 환자나 보호자가 꽤 있었는데 6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환자들은 자신을 돌볼 의사에 대하여 알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관계를 형성하면 어느 학교출신이라는 것은 무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창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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