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지켜본 ‘중대재해법’ 입법과정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현대의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파라켈수스(1493~1541)는 ‘모든 약은 독이며 다만 용량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약뿐만 아니라 의료 행위는 대부분 부작용이 따른다. ‘부작용이 없는 치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따라서 약물이든, 시술이든, 수술이든 의료 행위에 앞서 의사는 항상 부작용을 숙지한다. 그래야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적절히 대처하여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심정맥관(Central venous line) 삽입은 쇼크(Shock)에 빠진 환자에게 자주 시행하는 시술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심장으로 향하는 대정맥에 관을 삽입해서 다양한 약물과 대량의 수액을 신속하게 투여하는 통로를 확보하는 시술이다. 다만 어깨 아래에 있는 쇄골하정맥(Subclavian vein)을 이용하여 대정맥까지 관을 삽입하는 과정에서 가끔 기흉(Pneumothorax)이 발생한다. 그래서 중심정맥관을 삽입한 후에는 꼭 흉부 엑스레이를 찍어서 기흉 여부를 확인한다. 만약 기흉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흉관삽입술(Thoracostomy)을 시행한다.

그런데 단순히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다가 기흉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사례는 드물다. 정상적으로 시술해도 낮은 확률로 기흉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흉의 발생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흉관삽입술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해서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의사를 처벌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말했듯 기흉 자체는 정상적으로 시술해도 낮은 확률로 발생해서 꼭 의사의 잘못이라 판단하기 어렵지만 기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기흉이 발생했을 때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은 명백히 의사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몇몇 부작용은 주의를 기울여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자체로 처벌하지 않지만, 그런 부작용을 예견하지 못하거나 부작용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몰라 문제가 발생하면 처벌한다.

이런 원칙은 의료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 사고를 모두 막을 수는 없으므로 단순히 사고가 발생했다고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다만 사고의 발생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거나 혹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책임을 묻고 처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산업 현장에서는 이런 간단하고 합리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노력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가 발생했고, 또 사고가 발생한 후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여 많은 노동자가 사망했고 살아남아도 장애를 얻었다.

그런데 기업이 그런 상황을 방치한 이유는 ‘사고 예방’과 ‘사고 발생 후 적절한 대응’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사고가 발생한 후 벌금을 물고 노동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는 비용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불가항력인 사고가 아니라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를 일으켜도 처벌이 지나치게 가벼워서, 벌금과 배상금이 지나치게 작아서 적지 않은 기업이 사고를 예방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2016년 5월 28일 지하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젊은 노동자가 사망하고 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젊은 노동자가 사망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언론의 관심을 얻지 못한 사례까지 포함하면 아주 많은 노동자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장애를 얻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해결하려는 여론이 모여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국회 입법으로까지 이끌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저런 ‘예외’와 ‘유예’가 주렁주렁 달려 원래 목적이 적지 않게 훼손한 상태로 국회를 통과했다. ‘예방할 수 있는 사고를 일으킨 기업’이 최소한의 처벌만 받고 빠져나갈 수 있는 그런 ‘예외’와 ‘유예’를 만든 국회의원들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솔직히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과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과거 군사정권의 주장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또 헌법기관으로 국회의원이 지닌 가장 중요한 책무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보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분노와 한탄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그래도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첫 걸음을 내디뎠으니 앞으로 ‘예외’와 ‘유예’를 차례차례 걷어내고 법안의 본래 목적을 찾을 수 있도록 각계에서 노력해야겠다.

기업가들은 경제활동이 시민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고, 기업은 구성원의 생명과 건강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시해야만 한다는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이 만일의 사고를 철저히 대비해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중대재해법’의 입법취지 아닌가?

시시각각 응급실에 실려 오는 산업현장의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의 눈으로 이번 법 통과과정을 지켜보며 절실하게 드는 생각이다.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응급실에서는 어이없이 사고를 당한 환자와 가족들이 비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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