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이드라인 만들며 5000명 로봇수술”

[대한민국 베닥] ㉜전립선암 수술 분야 세브란스병원 최영득 교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비뇨의학과 최영득 교수(61)는 5000명에 가까운 비뇨기종양 환자를 로봇으로 수술했다. 아시아 최다, 세계 세 번째의 기록이다. 절반이 고위험 군에 속하고, 2/3는 3기 이상의 난치암 환자다. 최 교수는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오는 바람에 하루에 많게는 300명의 환자를 진료해야만 한다.

“환자가 3~4시간 걸려 와, 1~2시간 검사받고 기다리다가 1~2분 진료 받고 갈 때 마음을 잘 알기에 제가 환자에게 했던 말 되풀이한다고 말을 자르면 섭섭해 하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가 있으니….”

최 교수는 대신 모든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기억해서 환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는 놓치지 않고 전하려고 노력한다. 가끔씩 환자로부터 “어, 인터넷 평과 달리 이렇게 친절하신데…”하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그는 또 환자가 당일에 검사와 진료를 함께 받는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해서 멀리서 온 환자의 불편을 최소화했다. 최 교수는 무엇보다 환자에게 최고의 친절은 최고의 치료라고 믿기에, 수술 후 환자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기록해뒀다가 끊임없이 수술법을 개선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를 위해서 자신의 ‘자유시간’을 포기하고 확보한 시간을 그야말로 ‘금쪽 같이’ 쓴다. 그는 매일 새벽3시에 일어나서 곧바로 씻고 3시 반에 병원에 도착한다. 3시간 동안 치료법에 대해 연구하다가 6시33분이면 어김없이 회진에 나선다. 남들보다 빨리 오전 8시 반에 진료를 시작한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새벽 3시에 병원에 도착한다. 이전에는 매일 자정 무렵 퇴근했지만 최근에는 평일에는 오후 8시 반, 주말과 공휴일에는 9시 반에 퇴근한다. 요즘 ‘일찍’ 퇴근하는 이유는 30여 년 동안 가족을 챙기지 못해서, 최소한의 가사를 돕기 위해서다.

최 교수는 지금은 로봇수술의 세계적 고수로 인정받고 있지만, 처음에는 로봇이 마뜩치 않았다. 동료 교수들과 함께 대놓고 반대하기도 했다. 수술로봇을 도입한 같은 병원 나군호 교수(53)가 미국에서 온 의사와 시범수술을 할 때에도 영 내키지 않았다. 최 교수는 시범수술이 끝나고 간호사에게 전원을 켜놓으라고 일러두었고, 혼자서 기구들을 시험해봤다. ‘어, 별로 어렵지 않고, 이런 것도 가능하네.’

최 교수는 며칠 뒤 선배 양승철 교수(71·현재 강남차병원 근무)에게 자신의 환자를 로봇으로 수술케 해달라고 부탁했다. 병원에서 새 치료법의 첫 환자는 무료로 수술케 하는데, 미국에서 로봇수술을 배워왔지만 이를 탐탁하지 않게 여기던 선배에게 ‘무료수술 기회’를 양보해달라고 조른 것.

최 교수가 56세의 환자에게 로봇수술을 시행하고, 이를 녹화테이프에 담아 수술로봇 회사 인튜이티브 서지칼 사에 보냈더니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당시 내로라하는 로봇수술 고수들이 평균 2시간 반 동안 수술했는데, 1시간 반 만에 마무리했던 것. 회사는 “복강경 수술하던 의사뿐 아니라 개복 수술하던 의사도 로봇수술을 곧바로 배워할 수 있다”며 판매 전략을 바꾸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한 동안 로봇수술실로 향하지 않았다. 첫 수술 때 로봇 팔에 가위가 없어 전기 소작기를 통해 요도 부분을 처리할 떼 꺼림칙했는데, 환자의 부인이 6개월 뒤 찾아와서 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온 것. 최 교수는 “수술 후 소변이 새는 배뇨 문제 탓에 비관해서…”하며 자책하며 “로봇에 가위가 장착되지 않는 한 수술하지 않겠다”고 순간적으로 다짐했다. 부인은 “남편이 회사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라며 환자의 정확한 사인(死因)을 알려줬지만, 최 교수는 10개월 뒤 가위가 장착된 로봇이 들어오고 나서야 다시 로봇수술실에 들어갔다.

최 교수는 연세대 의대 예과에 다닐 때만 해도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1분, 1초를 아껴서 사는 지금의 삶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구가 700점의 ‘강호의 고수’였으며 볼링은 서울시 아마추어 대표와 어깨를 견줄 수준이었다. 사진과 문학에도 열심인 낭만청년이었으며 밤에는 포커의 고수로 변신해서 친구 주머니들을 사정없이 털었다. 이런 생활은 형편없는 성적으로 이어졌고 하마터면 의대를 마치지 못할 뻔 했다.

“수술을 이렇게 비유하는 게 가당치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로봇수술은 당구와 비슷했습니다. 50례를 달성하면 당구 50점처럼 막 하고 싶고, 70~100례가 되면 누구와 내기 붙고 싶은 것처럼 논문을 써서 인정을 받고 싶어지죠. 200례가 되면 당구 200점처럼 평점심이 생기고, 700례가 되면 스스로의 수술에 집중하게 되지요.”

최 교수는 본과에 들어와서 공부에 매진해서 성적이 쑥쑥 올라갔고 인턴 때에는 ‘인턴장’을 했다. 인턴 끝날 무렵 결혼했지만, 비뇨기과 전공의 때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옷 갈아입으러 갈 수 있어, 부인은 아예 울산의 친정으로 가서 아기를 키워야만 했다.

최 교수는 ‘호랑이 교수’로 유명했던 이진무 교수의 문하에서 종양수술을 배워서 비뇨기종양 분야 전임의사로 모교 병원에 남고 싶었지만 그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 교수, 선배의 권유로 “1년 뒤 조교수 보장한다”는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겼지만 1년 뒤 인사직전에 교직 보장 약속을 못지킨다는 얘기를 듣고 짐을 싸서 모교로 돌아왔다.

당시 비뇨기과 주임교수는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성의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치던 최형기 교수. 주임교수가 “내 밑에서 1년 있어보라”고 해서 발기부전과 조루증 등을 치유하는 의사로 변신했다. 하지만 본 전공을 포기할 수 없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의학’과 ‘비뇨기종양’을 자신의 이력서에 세부전공으로 표기하는 의사로 지냈다. 그는 1년 동안 무급 전임의로 근무하는 바람에 직장건강보험 혜택도 못 받고, 아파트청약통장도 못 만들었지만 발기부전 환자를 보면서 종양 환자도 틈틈이 수술했다.

“그때부터 새벽 3시 반에 출근했는데, 그 시간 병원에선 내과의 고 강진경 교수, 정형외과 한대용 교수가 늘 나와 있었어요. 두 분은 유·무형으로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주셨습니다.”

최 교수는 후배들보다도 뒤늦게 전임의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당시 새로 생긴 대학에 서열상 위의 전임의 셋이 교수로 떠나는 바람에 모교 교수직은 최 교수 순서가 됐던 것.

“당시에는 전립선암 환자가 한 달에 1명 올까말까 했을 때였는데, 병원계의 원로가 어찌 알고 강남세브란스병원의 제게 왔습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며 제게 수술 받겠다고…. 책을 읽고 자료를 뒤져 계획을 짜서 수술했는데 결과가 대성공이었습니다. 소변 잘 보고 어떤 부작용도 없었어요. 당시 전립선암 수술을 하던 다른 병원의 대가들이 나중에 알고 전화를 걸어와 ‘왜 내게 안보내고 네가 수술하느냐’고 화를 내 욕은 얻어먹었지만….”

최 교수는 비뇨기 종양 환자가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에서 암 진단을 받고 몇 달 동안 수술을 기다리다가 행여 하며 찾아오면 무조건 입원시키고 다음날 수술했다. 최 교수의 열정과 노력을 알고 있던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적극적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 교수는 2001년 의사로서 세계관의 변화를 겪는다. 그는 전립선암이 림프선으로 번지면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교과서의 가이드라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3기암 이후 진단을 받으면 눈물 흘리는 환자들을 보면서 가슴이 시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다른 암은 조심스럽게 원래 암과 함께 림프선의 암을 절제해서 환자를 치유하는데 왜 비뇨기암은 안 되는가? 환자들이 속절없이 삶을 정리해야 하는가?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살릴 수 있는데….’

그는 교과서의 가이드라인을 어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처음에는 개복수술로, 2006년부터는 로봇수술로 전립선의 암과 함께 림프선의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했다. 2007년 미국비뇨의학회, 2008년 유럽비뇨의학회 등에 발표해서 호평을 받았다.

“한일비뇨의학회에서도 발표했는데, 일본 의사들의 적극적 관심과 달리 우리나라 의사들은 ‘너는 책도 안 읽느냐,’ ‘교과서를 왜 무시하냐?’ 등 원색적 비난을 받았지요. 논란이 되자 세브란스병원에서도 적정의료심의가 열렸는데 치료결과와 환자 만족도가 더 좋은 것으로 나와서….”

동료 의사들의 비난을 받을 때, 부산 동아대병원의 윤진한 교수가 우연히 수술을 참관하고 나서 듬직한 원군(援軍)이 됐다. “내가 세 번 참관했는데, 최 교수의 수술은 진짜”라면서….

최 교수는 “가이드라인은 맹목적으로 따르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술계획을 세우기 위해 존재한다(Guideline is Not a following, But a making Diagram).”는 슬로건을 되뇌며 20여 종류의 수술법을 고안했다. 전립선의 암이 골반이나 척추 뼈 일부에 침범했을 때 이를 제거해서 환자의 생존기간을 늘리고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최근에는 암은 떼어내면서 요도조직과 성(性) 신경은 최대한 남기도록 하는 ‘요도-신경-혈관 보존 로봇적출술’을 개발했다. 기구의 개선에도 관심을 놓지 않아, 환자 몸에 구멍 하나만 뚫어서 수술하는 단일공 로봇의 탄생에도 기여했다.

최 교수에게서 교과서의 가이드라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보고 있는 환자의 상태다. 아무리 교과서에서 옳다고 돼 있어도, 환자가 불편을 느끼면 잘못됐다고 여기고 개선책을 찾아왔다. 이 때문에 일부 동료 의사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많은 의사들이 박수를 쳐주고 있다. 최 교수의 수술실은 해외 의사들이 전립선암 로봇수술을 배우는 ‘성지(聖地)’가 됐다. 그는 전립선암 환자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서 오늘도 새벽3시에 일어나서 곧바로 출근한다. 최 교수는 “오늘 수술이 어제보다 더 나아야지 진정한 수술 의사”라고 믿기에 남들보다 더 오래 고민해야 하고, 그래서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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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허형범

    최영득교수님~ 오랜만입니다
    우한폐렴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새해에는 뜻하는바 이루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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