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 봐줄 의사샘이 없어요”…소아과 전공의 대량 미달

지난 2일 마감된 전국 병원의 전공의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가 충격적 기피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정원 166명 가운데 56명만이 지원하면서 지원율이 33%에 그쳐 지난해 69%에서 더 떨어졌다. 이른바 서울의 빅5 병원도 정원을 채우지 못했으며, 단 한 명의 지원자도 못 받은 병원이 수두룩했다.

지난해 98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문을 받은 데 이어 올 상반기에만 89곳이 폐업한 것으로 드러나 소아청소년과가 위기에 빠진 가운데, 극심한 전공의 미달까지 발생하자 의료계는 충격에 빠졌다. 당장은 현재 전공의들의 과중한 업무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고, 향후 저출산의 악순환 속에서도 아이를 맡길 의사를 찾기 어려운 시기가 눈앞에 닥친 것.

이번에 소아청소년과 지원은 서울대병원이 16명 정원에 14명으로 비슷한 숫자를 채웠지만 서울아산병원은 8명 중 4명, 삼성서울병원은 8명 중 3명, 세브란스병원은 14명 중 3명, 가톨릭중앙의료원은 13명 중 3명밖에 지원자를 받지 못했다.

이밖에 가천대길병원(모집인원 4명), 강동경희대병원(2명), 건국대병원(3명), 고려대안암병원, 〃 구로병원(각 3명), 아주대병원(5명), 이대목동병원(3명), 인하대병원(4명), 한양대병원(3명), 경북대병원(3명), 충남대병원(4명), 충북대병원(3명), 단국대병원(2명), 영남대병원(3명), 울산대병원(2명), 을지대병원(1명), 동아대병원(2명), 원광대병원(2명) 등은 단 한 명의 지원자도 받지 못했다.

소아청소년과에 전공의가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저출산이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 다른 과에 비해서 배워야 할 내용은 많고 까다롭지만 정작 개원하면 진료 수가가 턱없이 낮아서 적자를 보기 일쑤이기 때문. 환자 보호자들의 요구사항을 맞추기 어려운데다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을 비롯해서 의료분쟁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재정 사정이 더욱 더 악화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도 상반기 병원의 소아청소년과에서 진료 받은 환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6% 줄어들었고, 의원급에서는 17.5% 감소했다. 의원의 명세서 건수는 36%나 떨어졌다.

한 소아청소년과 개원의는 “소아청소년과는 다른 과와 달리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는데다가 수가가 낮아서 폐업 걱정을 하는 의사가 많다”면서 “갈수록 사정이 악화돼 병원에서도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뽑지 않기 때문에 전공의가 교수로 남지 못하면 취직 걱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S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소아청소년과는 아이를 좋아하는 사명감 하나로 들어오는 과가 되고 있다”면서 “의사가 부족해서 아이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데 저출산 대책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말했다. 그는 “소아청소년과에 대해서 수가를 최대한 올리고 자긍심을 살려주는 것 말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전공의 모집에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등도 낮은 지원율을 보였다. 이 가운데 가정의학과는 내과가 전공의 기간을 3년으로 줄인 뒤 고전하고 있다.

반면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 또는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은 이번에도 높은 지원율을 기록했다.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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