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로 딸 잃은 거물 변호사와 코로나19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사진 출처=퀸스대 의대 홈페이지

주변머리만 남고 진행한 탈모와 두꺼운 테의 커다란 안경에도 중년 사내의 인상은 지루하지도 않았고 고리타분하지도 않았다. 커다란 안경 아래 눈이 번뜩이고 입술에서 고집과 의지가 느껴졌다.

사내의 진정한 힘은 입을 여는 순간부터 드러났다. 사내의 말솜씨는 단순히 탁월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수준이었다. 법정에서 검사와 상대 변호사를 몰아세우고 증인을 심문하는 기술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라디오 토크쇼에서는 밀고 당기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뉴욕의 권력자를 시가 연기 자욱한 밀실에서 만날 때면 복잡한 사업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소유한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연예인부터 기자, 심지어 거물 범죄자까지 불러 파티를 열 때는 온갖 농담으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사내는 연방검사를 시작으로 변호사, 저널리스트,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로 이름을 날렸고 확실히 1980년대 뉴욕, 범죄로 얼룩져 위험하면서도 화려하고 흥청거리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도시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범죄 영화에 악질 변호사로 등장할 것 같은 사내의 이름은 시드니 시온(Sidney Zion)이며 1984년의 사건만 아니었다면 정말 단순히 ‘1980년대 뉴욕을 주름잡던 거물 변호사’로 기억됐을 것이다. 1984년의 사건은 사내와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에 큰 변화를 만들었다.

1984년 3월 4일 저녁, 시드니 시온의 딸이며 대학 신입생인 리비 시온(Libby Zion)이 발열과 두통을 호소하며 뉴욕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에서 리비를 담당한 두 명의 전공의는 ‘경미한 바이러스 감염’으로 판단해서 해열제를 처방했다. 해열제 처방에도 리비의 증상이 호전하지 않고 고통과 불안을 호소하자 두 전공의는 당직 전문의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당직 전문의는 응급실에 와서 직접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두 전공의의 보고만으로 역시 대수롭지 않은 바이러스 감염이라 생각해서 안정제를 추가로 처방했다. 안정제를 처방하자 리비 시온은 잠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리비의 병은 단순한 바이러스 감염이 아니었다. 해열제와 안정제만 투여 받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리비 시온은 다음 아침 사망했다.

피해자가 시드니 시온 같은 거물의 딸이 아니었다면 ‘비전형적 감염으로 인한 예측 불가한 사망’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시드니 시온은 앞서 언급한 짧은 설명만으로도 보통 사람이 아니다. 마피아 대부의 딸이 응급실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한 것보다 훨씬 큰 파문이 일어났다. 시드니 시온은 병원과 연루한 세 명의 의사(전공의 둘과 당직 전문의) 모두에게 책임을 물었다. 단순히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 아니라 세 명의 의사를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껏 쌓은 모든 영향력을 이용하여 사건을 알리고 병원과 의사들을 처벌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 때문에 잊힐 수도 있던 사건이 알려졌고 법원은 당시로는 비교적 큰 액수의 배상금을 선고했다. 그러나 의사들의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시드니 시온은 연방검사 출신의 범죄 전문 변호사이며 저널리스트이자 사교계 명사로 지닌 모든 영향력을 동원했으나 그 판결을 뒤집지 못했다.

시온의 노력은 단순히 병원과 세 명의 의사를 처벌하고 끝까지 응징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여론을 움직였고, 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았다. 응급실 진료를 전공의에게 맡겨 두고 당직 전문의는 집에서 보고받는 관습을 개혁하여 당직 전문의가 반드시 병원에 머무르도록 했다. 또 리비가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진료한 전공의가 36시간 연속 근무에 지쳐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을 개선하여 전공의가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고 24시간 이상 연속으로 근무할 수 없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이런 ‘제도의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였기에 오늘날에도 시드니와 리비 시온의 이름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병원이나 의료인에게 책임을 따지는 것은 이처럼 환경의 개선으로 이어질 때 빛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3차 유행이 본격화하면서 전남대병원에서 원내 감염이 발생했다. 현실적으로 대유행의 시기에 원내감염을 완벽하게 방지하기는 어렵다. 전남대병원이 특별하게 방역 조치를 소홀히 적용해서 원내감염이 발생했다기보다는 불운한 희생자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아 불안을 떨쳐버리는 행위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지닌 나쁜 버릇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병원 의료진은 원내 감염이 발생했을 때 온갖 책임을 져야 하고 비합리적 비난에 시달리기 일쑤다.

전남대병원의 방역 조치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단순히 희생양 만들기에 치중하여 처벌한다면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코로나 19가 급속히 확산하면, 의료진은 방역의 일선에서 전투를 벌여야 하면서도 기존의 환자를 보호해야 하기에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 환자가 급증하면 의사, 간호사가 이 피로를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온이 병원 응급실 전공의들의 피로에 주목했듯, 지금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의료 환경을 개선시켜야 할 때다. 문제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으면서도 무턱대고 희생양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있는 부분을 개선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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