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백신 불신, 필리핀 뎅기열 백신 파동의 교훈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고기를 먹는 것은 단백질을 섭취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고기는 어떻게 구할까? 이 질문에 대부분은 적당한 크기로 손질하고 포장해 진열장에 놓인 소, 돼지, 양, 닭을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 쉽게 고기를 구할 수 있는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부분이 공장화하고 분업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고기를 얻으려면 훨씬 고단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씩 동물을 추적해 사냥에 성공한 다음 마을로 가져와 해체해야 고기를 얻을 수 있었다. 사냥 대신 가축을 기를 수도 있으나 소, 양, 돼지 닭 같은 동물을 기르고 도축하는 과정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은 공장화와 분업을 선택했다. 인간 외 다른 동물도 저마다 재능으로 ‘단백질을 얻는 최선‘을 고안했다. 호랑이, 사자, 늑대 같은 맹수는 사냥 기술을 발전시켰고 독수리와 하이에나 같은 청소 동물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썩은 고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곤충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는 크기의 차이로 비교적 작은 생명체를 사냥하거나 사체를 분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모기는 독특하게도 자신보다 훨씬 큰 동물의 혈액을 단백질 공급처로 선택했다. 틈새시장을 찾은 셈이다.

혈액은 고기만큼 단백질이 풍부한데다가 모기는 크기가 작아 아주 소량의 혈액만 필요해서 굳이 상대를 죽이거나 무력화시킬 필요가 없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크기와 날아다니는 장점을 십분 이용해 살그머니 접근한 다음 피부에 주둥이를 박고 소량의 혈액을 마신 후 도망치는 것이 모기의 전략이다. 그래서 모기의 주둥이는 큰 고통 없이 동물의 피부를 뚫는 쪽으로 진화했고 모기의 침에는 혈액 응고를 방지하는 성분이 생겼다.

그러자 그런 모기를 이용하는 생명체가 나타났다. 현미경을 사용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바이러스, 세균, 원충 같은 작디작은 생명체가 동물의 혈액을 빠는 모기의 행동을 이용해 번식하기 시작했다.

모기가 3,500가지의 다양한 종으로 분화해 뜨거운 밀림부터 추운 툰드라까지 성공적으로 분포한 것을 감안하면 미생물 입장에서는 탁월한 선택이지만 인류에게는 골치 아픈 문제의 시작이었다. 동물의 혈액을 빠는 모기의 행동을 이용하여 번식하는 미생물 상당수가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 질병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악당은 말라리아다. 로마가 시골 마을이던 시절부터 악명을 날렸고 학질(瘧疾)이란 이름으로 우리 역사에도 등장한다. ‘학을 떼다’의 학의 그 학질이다.

그러다가 인간의 활동영역이 확대하면서 새로운 악당이 등장했다. 스페인이 카리브해를 정복하고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면서 황열병이 위세를 떨쳤고 20세기 후반 뎅기열이 나타났다.

황열병과 마찬가지로 모기를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가 원인인 뎅기열은 오랫동안 열대와 아열대에서 인류를 괴롭혔지만 20세기 중반까지는 말라리아의 위세에 눌린 ‘동네 악당’에 불과했다. 뎅기열 바이러스가 숙주로 삼는 모기는 농촌보다 도시에서 쉽게 번성하는 반면, 뎅기열이 풍토병으로 자리한 지역은 대부분 개발도상국이라 도시 비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세계화가 진전하면서 개발도상국에서도 도시 비율이 높아졌고 특히 동남아가 국제 관광지로 떠오르며 뎅기열의 발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0년 연간 830만 명가량인 환자가 2013년에 이르자 연간 5840만 명에 이르렀고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연간 5000만에서 1억 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다행히 모든 뎅기열이 치명적이지는 않다. 5~7일 발열과 근육통을 앓은 뒤 회복하는 경증부터 고열과 함께 두통, 안구통, 관절통, 구토, 설사가 발생하고 위장관 출혈 같은 내부 출혈과 장기 손상으로 악화해 사망하는 중증까지 임상 양상이 다양하다. 또 뎅기열은 한 번 감염했다고 영구적인 면역을 획득하지 못한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뎅기열은 첫 번째 감염보다 두 번째 감염 때 심한 증상이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특징은 뎅기열 바이러스에 있는 4가지 조금씩 다른 유전형과 관계가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뎅기열 바이러스 A에 걸려 가볍게 앓고 나면 당연히 면역이 생성된다. 그다음 B, C, D에 해당하는 뎅기열 바이러스에 걸리면 앞서 A에 해당하는 뎅기열 바이러스에 대해 생성된 면역이 감염을 퇴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켜 중증을 초래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뎅기열의 확산에 맞서 백신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 상태다. 2015년 사노피-파스퇴르가 뎅그박시아(Dengvaxia)란 백신을 개발했지만, 이후 접종자 상당수가 뎅기열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오히려 중증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뎅기열에 걸린 적이 없는 사람에게 뎅그박시아를 접종하면 그렇게 만들어진 면역이 다음에 뎅기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인체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감염을 악화시켰다. 다만 이전에 뎅기열 바이러스에 걸린 적이 있는 사람에게 뎅그박시아를 접종하면 다음에 뎅기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어느 정도 보호 기능이 나타났다.

그러나 2016년부터 필리핀과 브라질을 중심으로 뎅그박시아를 대규모로 접종하면서 이런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혼란이 발생했고, 이 혼란은 대중에게 백신 전체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다. 그래서 대중이 다른 병에 대한 예방 접종까지 꺼리면서 퇴치 단계에 있던 홍역과 소아마비가 증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뎅그박시아를 둘러싼 이런 혼란은 2020년 한국에서 벌어지는 혼란과는 조금 다르다. 뎅그박시아가 최근에 개발하여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백신인 것과 비교하여 독감 백신은 오래전부터 상용화하여 충분한 안전성을 확보한 백신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뎅그박시아도 단순히 백신을 접종하고 2~3일 내에 사망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문제 있는 백신으로 판명한 것은 아니다. 뎅그박시아를 접종받고 뎅기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오히려 중증으로 치닫는 사람이 적지 않게 발생했고, 조사 결과 인과 관계가 성립해서 ‘뎅그박시아에 문제가 있다’고 확정한 것이다.

인류가 과거보다 훨씬 가까워진 세계에 살고 있음을 감안하면 코로나19가 우리가 경험하는 유일한 대유행은 아닐 것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열심히 백신을 개발했던 것처럼 우리도 앞으로 새로운 전염병에 맞서 다양한 백신을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마다 마주할 혼란을 극복하는 것에 오늘 독감 백신을 둘러싸고 우리가 겪고 있는 경험과 뎅그박시아가 남긴 교훈이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를 위해 이번 독감 백신 파동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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