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1000원” 큰 의사 김경희 원장 별세

가난한 이웃을 위해 진료비를 1000원만 받았던 ‘큰 의사,’ 평생을 무료진료 장학사업 빈민 구제에 힘써 ‘상계동 슈바이처’로 불렸던 김경희 은명내과 원장이 천국으로 떠났다.

2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김 원장이 전날 저녁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알렸다. 향년 101세.

고인은 어렸을 때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던 친구들을 보면서 의사가 돼 약자를 돕기로 결심하고 세브란스의전(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전신)에 입학했다. 졸업 전부터 보육원의 어린이들을 치료했고 1943년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 중구 중림동에 내과의원을 열었다. 이곳에서 광복 후 일본과 만주 등에서 귀국한 무의탁 동포를 무료로 진료했다. 1957년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미생물학)를 받고 1958년 귀국한 뒤 신림동, 답십리, 청계천, 망원동 등지의 판자촌을 돌며 무료 진료를 해왔다.

1984년 도시 개발 전에 빈민들이 모여 살던 노원구 상계동에 은명내과를 열었고, 이듬해부터 지역의료보험이 시작된 1989년까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던 모든 주민에게 진료비로 1000원만 받는 ‘1000원 진료’를 시행했다. 처음에는 극빈자에게 무료로 진료하다가 환자의 자존심도 세워주고 치료 의지를 높이기 위해 1000원 진료를 시작했다.

김 원장의 봉사활동은 2000년 5월 가정공동체 ‘은명마을’을 만들면서 두드러졌다. 김 원장은 이곳에서 100여 세대의 극빈가정과 독거노인을 도왔다. 한 달에 두 번씩 이들을 방문해 무료로 진료하고 말동무가 돼줬다. 경조사를 챙겨줬고 주민들에게 발생하는 사소한 사고까지 손수 해결했다. 심지어 고장 난 텔레비전도 고쳐줬다. 김 원장은 매년 2번씩 버스를 빌려 은명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풍을 갔다.

고인은 또 빌딩의 한 층을 전세 내 급식소를 설치, 교회 목사와 함께 무료급식을 제공했다. 무료 공부방도 제공했다. 또 돈이 없어 공부할 수 없던 어린이를 돕기 위해 ‘은명장학회’를 설립해 장학사업을 펼쳤으며 심장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사업도 펼쳤다. 무료독서실을 열어 상계동, 중계동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케도 했다.

고인은 또 ‘바이러스’를 전공한 의사로서, 1991년부터 꾸준히 간염 공개강좌와 인터넷 상담 등으로 주민 계몽 운동을 펼쳤으며 1998년 한국간협회를 설립해서 격월간 《간의 등불》을 발행했다. 2004년 12월 은명내과의원은 폐업했지만, 무료진료와 봉사활동은 계속 했다.

김 원장은 1996년 4월 경기 하남시와 서울 상계동의 토지 6만5000평(당시 53억원 규모) 등 전재산을 연세대학교와 연세의료원에 기부하기도 했다. 이에 세브란스병원은 2005년 새 병원을 개원하며 대강당의 이름에 김 원장의 호를 붙여 ‘은명대강당‘으로 명명했다.

김 원장이 1000원 진료와 봉사활동에 매진한 이유에 대해 “어떤 재산도 개인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해 왔다.

고인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선행 시민상, 연세의학대상 봉사상, 아산사회복지대상, 보령의료봉사상 등을 받았다.

고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았으며 걷는 것과 기도, 봉사활동을 건강 비결로 꼽았다. 김 원장은 매일 “오늘 하루도 겸손하게, 겸손한 하루를 보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고인은  의사에게 겸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의사들이 겸손의 덕을 배우면 최고로 좋은 의료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겸손하면 자동으로 양질의 의료를 베풀게 되고 환자에게 기쁨을 주게 되죠. 겸손과 생명 사랑하는 마음… 그게 최고입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연세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4일 오전7시. 유족으로는 부인 임인규 여사와 2남 2녀가 있다.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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