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제2의 아이히만’ 되지 않으려면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아돌프 아이히만 (가운데)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판결로 ‘아돌프 아이히만 판결’을 꼽았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보면서 현재 우리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다. 아돌프 아이히만(1906-1932)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수백만 명의 유태인을 유럽 각지에서 폴란드 유대인 수용소에 열차로 이송하는 최고책임자였고 1941년 나치 지도부가 유대인 절멸을 결정했을 때 그 집행을 위임받아 실행에 옮겼다. 독일이 항복한 뒤 미군에 체포된 그는 가짜 이름을 사용해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여 1950년 가족들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몰래 살았으나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게 납치되어 이스라엘로 압송된 후 재판을 받았다. 1961년 12월 15일 재판에서 기소된 15가지 혐의에서 모두 유죄판결을 받고 1962년 6월 1일 새벽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이 재판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나치범죄에 대한 아이히만의 태도였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임을 인정하고 인간적으로 죄책감을 느끼지만 자신은 히틀러의 명령을 수행한 일개 관리인에 지나지 않고, 그가 선거로 정권을 잡은 나치에서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재판을 지켜본 정신과 의사들은 아이히만의 정신상태는 지극히 정상이며 준법정신이 투철한 국민이었다고 분석했다.

미국 잡지 뉴요커의 요청으로 특파원 자격으로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하고 보도했던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저서를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여기서 악의 평범성이란 홀로코스트의 주역이었던 아이히만이 파괴적 이념과 반인간적 정치에 물든 악마적인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관료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 상부에서 나쁜 일이나 명령이 주어졌을 때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옳은 일인가를 판단하지 않고 관료제적 타성과 인습적 관례를 따르며 열심히 명령을 수행하는 명령수행자 혹은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한나 아렌트이지만 아이히만이 잘못된 범과 정치에 복종한 죄는 인정했다. 즉, 나치의 명령과 법에 충실한 결과 아이히만은 고유한 사유 능력을 상실했지만 그것으로 반인간적인 대량학살과 정책을 수행했다는 범죄행위가 유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그리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강조했다.

우리들은 이런 아이히만과 전혀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과제가 주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왜 그 과제를 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과제에 대하여 그 일이 과연 정당하고 옳은 일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그 일을 해야 할 것인지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고들이 가장 잘 나타나는 시기가 바로 학생 때이다. 학교와 학원에서는 학생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고 시험에 나오는 것만 공부시킨다. 이런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하고 커닝과 같은 부정행위를 정당화하고 친구들을 넘어서야 할 경쟁자로 의식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는 교수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영달이나 안위를 위하여 논문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중복하여 발표하거나 비윤리적이고 환자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임상시험을 목적 달성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실행하게 된다. 개업한 뒤에는 환자의 이익과 안전보다는 자신의 경제적인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러한 자기형성과정은 동료들과의 상호작용과 경쟁 및 집단적 학습과정과 같은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재형성되고 파괴력을 증대한다.

물론 상급자의 명령이나 주위의 압력에 대하여 정당성을 평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현재의 불안한 주위 환경과 부족한 삶의 여유는 우리를 주어진 일에만 함몰하게 하고 일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우리들은 변해야 한다. 의사들은 단순히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여 돈을 버는 의료기술자가 아니라 환자를 목적으로 여기며 모든 수단과 방법에 우선하는 의료전문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의과대학은 단순히 똑똑한 학생들이 입학하여 공부하는 곳이 아닌 창의적이지만 동시에 인간애를 품은 사람을 기르는 곳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는 것은 앞으로 우리의 몫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행동만이 지난 파업 과정에서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코메디닷컴 kormedinews@kormedi.com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http://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Share with Kakao
3개 댓글
  1. 민초의사

    파업 과정에서의 땅에 떨어진 신뢰라? 말씀 취지는 좋으나 결론을 의사파업과 연관짓는건
    비약입니다. 어쩔 수 없는 벽 앞에 맞서 정의를 사수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실 것입니다.

  2. 하승호

    마음이 따뜻해지는 성찰이시네요^^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는 것 같습니다.

  3. 최옥곤

    군중심리에 엘리트들로 구성된 의대생들이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국가의 자격시험을 거부한 것은 공공의 이익이 아닌 집단과 개인의 삿된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어떠한 특혜도 있어서는 안된다.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공정이 깨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댓글을 달아주세요.

귀하의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