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정까지 반영, ‘아토피 맞춤치료’ 대가

[대한민국 베닥] ㉘소아알레르기 분야 순천향대서울병원 편복양 교수

“제가 혹시라도 감염되면 몇 달 제 진료를 기다리는 아기 엄마들이…”
“저 말고, 열심히 환자를 보는 의사들이 많은데….”

순천향대서울병원 소아과 편복양 교수(68)는 서울이 코로나19 위기에 휩싸이자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다가, 기자의 설득에 가까스로 이메일 및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넷 검색 포털에서 ‘편복양’을 검색하면,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한 진료에 대한 감사와 추천의 글들이 넘쳐난다. 2018년 2월 정년퇴직했지만, 전국의 아토피피부염 환자 부모들이 안타까운 아우성을 지르자 병원에서 꼭 붙잡았다. 편 교수도 자신을 찾는 아기들의 환한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기꺼이 응했다.

편 교수는 1987년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가 처음 만들어질 때 학회의 막내로 활동을 시작했고 학회의 이사장, 회장 등을 역임한 소아알레르기 학계의 산증인이다. 2000년대 초부터는 알레르기 질환 가운데 아토피피부염 환자에 대한 ‘맞춤형 치료’의 연구와 실행에 집중해서 아토피피부염 치료의 역사이기도 하다.

편 교수는 아토피피부염 아기 어머니들의 ‘따뜻한 엄마’와도 같은 의사로 유명하다. 처음 소문을 듣고 찾아간 엄마들 중에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며 실망하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몇 개월 뒤 얼굴이 환하게 바뀐다. 편 교수가 시킨 대로 아이의 생활방식을 조금씩만 바꿨는데도 차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이 엄마가 직장에 다니면 2시간마다 보습제를 발라주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안을 마련하는 것처럼, 세세한 것까지 꼼꼼히 챙긴다. 편 교수는 “아토피피부염에 비방은 없지만, 개인별로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환자의 증세와 보호자의 사정에 따라 맞춤형으로 진단하고, 보호자가 이를 잘 지키면 호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편 교수는 따뜻한 선친과 아버지 같은 스승들 덕분에 아기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을 큰 행복으로 여기는 의사다.

선친은 부산일보, 연합신문 등을 거쳐 한국일보에서 정치기자로 필명을 날렸고 7, 8대 신민당 국회의원을 역임한 편용호 전 의원. 기자로서는 서슬 퍼런 권력에 펜을 굽히지 않았고, 정치인오로서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지만, 딸에게는 다정다감한 코치이자, 카운슬러이자, 친구였다.

선친은 매일 한밤중에 퇴근하는 바쁜 일과였지만 편 교수의 중고교 6년 동안 아침에 딸의 교복 맵시를 고쳐주고, 밤엔 간식을 직접 만들어주기도 했다. 주말 새벽에 함께 청진동에 해장국을 먹으러 갔고, 조금만 틈이 나면 함께 교외로 놀러갔다. 딸이 인턴을 시작하자, 퇴근 때 병원에서 일하는 모습을 먼발치서 지켜보고 귀가하곤 했다.

인턴 초기에 열린 의대 졸업식 때 비가 펑펑 쏟아져 사진이 제대로 안 나올 듯하자, 주말에 “잠시 시간을 내 학교로 오라”고 한 뒤 졸업가운을 들고 나타났다. 새 졸업사진이 마지막 가족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선친은 얼마 뒤 뇌졸중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열흘 동안 이승의 끈을 잡고 있다가 가족을 떠났다. 선친 이야기를 하면서 인터뷰를 하는 전화기 너머, 편 교수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선친은 딸이 에움길, 비탈길로 가지 않고, 큰길로 가도록 도왔다. 편 교수는 고교 때 건축설계사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여자로서 현장에서 겪을 현실적 어려움을 알려줬다. 딸이 의대 1학기를 마치고 휴학계를 낸 채 미국 UCLA 생물학과로 유학을 가자 LA까지 가서 “한국에서 의대를 마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설득해 데리고 왔다. 의대를 마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 국내에서 기반을 잡는 중요성에 대해서 뚱겨줬다. 미국 유학을 당연시하고, 인턴 지원을 안했을 때, 새로 문을 연 순천향대병원의 장점을 알려준 것도 아버지였다.

편 교수는 이화여대 의대 본과 3학년 실습 때 소아과를 천직으로 삼았다. 아기 100명을 진료하면서 100명과 웃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 반해버렸다.

인턴 때 아버지가 비명(非命)에 떠나자, ‘의사의 모델’ 소아과 이상주 주임교수를 ‘제2의 아버지’ 삼아 슬픔을 극복했다. 이 교수는 환자에 대한 정확한 진료로도 정평이 나있었지만 매사에 공정하며 인자한, 의료계의 신사였다. 편 교수는 전공의가 끝날 무렵 스승과 상의해서 소아과 가운데 당시 최신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오던 알레르기면역을 세부전공으로 삼았다.

편 교수는 조교수 때이던 1986년 JICA(일본국제협력기구)의 교환프로그램 지원사업에 합격, 당시 소아알레르기학계의 아시아 최고대가였던, 일본 국립소아병원 이이코라 요지 교수에게 연수 갔다. 이상주 교수가 의사 생활의 토대를 닦고 주춧돌을 세워줬고 소아과 의사의 기본을 전수한 스승이라면, 이이코라 교수는 알레르기의 세계에 문을 열어준 스승이었다.

국립소아병원에는 일본 전역에서 소아 알레르기 환자가 하루 100~200명씩 몰려왔다. 이이코라 교수의 지도 아래 다른 의사 4명과 함께 각각 환자를 봤다. 특별한 환자는 모든 의사가 모여서 봤고, 편 교수가 일본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면 ‘스승’이 통역을 도와줬다. 진료가 끝난 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케이스를 연구하고, 마무리 뒤 귀가하면 시계 침이 자정을 향하고 있기 일쑤였다.

편 교수가 귀국해서 온갖 알레르기 환자를 보다가,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이 늘어나자 ‘스승’이 새로 둥지를 튼 소화어린이병원의 교환교수로 가서, 치료법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돌아왔다. 일본에서 환자들을 위해 연 ‘아토피 캠프’에도 참가해 세세한 것들을 챙겼다.

편 교수는 2000년대 초 아토피피부염 분야의 명의로 시나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6년 순천향대서울병원에서 국내 처음으로 연 ‘소아알레르기호흡기센터’를 열고, 소장으로서 검사→진단→치료→교육을 원스톱으로 실행했다. 병원을 전전하다 그곳에서 나은 환자들의 소문이 났고, 언론에도 소개되며 6개월 이상 예약이 밀려 밤 9시까지 환자를 봐야했다. 일부 환자로부터 ‘오래 기다리게 한다’며 원성을 듣기도 했지만 최대한 듣고, 충분히 설명하는 ‘진료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편 교수의 난치성 아토피에 대한 치료 성과가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환자가 계속 늘어나 현재 5000여명을 진료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70%가 지방에서 오는 환자다. 요즘은 코로나19 탓에 줄었지만, 방학 때에는 교포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100명 가까이 온다.

편 교수는 아이들에게 최적의 치료법을 맞춰주는 노력뿐 아니라, 새 치료법을 찾는 연구도 계속 해왔다. 공자가 말한 종심(從心·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이치에 어울린다는 70세)을 눈앞에 두고도,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아 마이크로바이옴으로 아토피피부염에 걸린 아기들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으며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편 교수의 좌우명은 ‘대인이성수사이공(對人以誠受事以公).’ 선친이 국회의원 시절 타이완 국회부의장에게 선물 받은 서예 액자에 담긴 글로 ‘사람을 대할 때는 온 마음을 다해, 일을 할 때에는 공정하게’란 뜻이다. 그는 대학교 때부터 집 거실에 걸린 이 글을 가슴에 새기고, 진료와 연구뿐 아니라 학회활동과 제자 교육, 대국민 캠페인 등의 활동을 펼쳐왔다.

편 교수는 아토피 피부염 아기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선 올바른 교육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아토피피부염은 치료가 안 되니 민간요법에 따라야 한다는 정보도 있지만, 제가 전공의를 할 때와 달리 지금은 치료법이 많이 발달했습니다. 비 스테로이드 외용제와 면역치료제가 발달했고 2차 감염에 대한 치료성과도 좋아져서 대부분 치료가 가능합니다. 인터넷에 정보가 너무 많은데, 모든 환자에게 듣는 비방도 없고 모든 환자에게 해로운 요인도 없습니다. 멀쩡히 잘 먹던 우유, 계란, 밀가루를 끊어 영양결핍을 부르면 안 됩니다. 반려동물도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다면 계속 기르면 됩니다. 의료진이 아토피피부염을 일으키는 유해요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부모의 사정을 반영해서 ‘맞춤형 관리법’을 제시하고, 보호자와 환자가 이를 잘 지키면 이길 수 있어요.”

그는 몇 년 뒤 병원을 떠나면 환자 부모들을 교육하고 상담하는 봉사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환자 별로 어떻게 병을 관리해야 할지, 성장과 영양의 불균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등에 대해서 알려주며 의료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대인이성수사이공’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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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이 세아

    무척 친절하시죠.그런데 아들 비염치료때문에 여러 해 다녔지만 딱히 효과는 못봤어요.오히려 프로폴리스 먹고나니 좀 호전 됐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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