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간학회 기둥… ‘환자들이 감탄하는 친절’

[대한민국 베닥] ㉗간질환 내과치료 세브란스병원 안상훈 교수

바퀴가 도로의 요철에 덜커덕거리는 순간, 몸이 자전거와 분리되며 공중에 부~웅 떴다. 퍽! 머리에 커다란 혹이 만져졌지만, 자존심 탓이었을까, 아무에게도 얘기 않았다. 2주 뒤 갑자기 열이 나며 부르르 떨리며 구역질이 나자 어머니가 동네병원에 데리고 갔다. 의사는 큰 병원에 가라고 했고, ‘큰 병원’ 수련의가 검사를 실수해 의식을 잃었다. 앰뷸런스를 타고 경희대병원으로 옮겨 그 당시 귀했던 컴퓨터단층촬영(CT)을 받았더니 뇌에 피가 흥건했다. 의사는 곧바로 머리의 절반을 여는 대수술에 들어갔다. 가족은 수술실 밖에서 기적을 일으켜달라고 기도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내과 안상훈 교수(50)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 면목동의 집 부근에서 자전거를 타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1년 전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써내라고 했을 때 아버지 얘기를 듣고 ‘의사’를 써냈지만 의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의사가 실수하면 어떻게 되는지 한 해 뒤 절절히 체험했다.

안 교수는 간질환과 관련한 세계 4대 학회의 학술지 편집위원을 맡고 있고 아시아태평양간학회, 아시아태평양간암학회, 대한간학회 등의 학술위원장을 역임하면서 간질환 약에 대한 국제 임상시험 96개를 이끌어 온, 세계 간 학계의 ‘기둥’이다. 병원에서도 기획조정실장, 간센터장 등으로 바쁜 생활을 하지만,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환자의 세심한 곳을 살피는 진심어린 진료로 정평이 나있다. 환자로서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초등학교 때 저승의 문턱에서 살아왔지만, 도담도담 자라지 못했다. 음식을 조금만 많이 먹어도 게워내야 했고, 남들이 맛있다는 음식 대부분이 언감생심이었다.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을 절반도 못 먹었다. 고3때 고려대안암병원의 ‘소화기질환 명의’ 현진해 교수를 찾아갔다가 식도이완불능증(Achalasia) 진단을 받았다. 식도 조임근육이 정상적으로 열리지 않아서 음식을 못 먹는 병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다. 그는 “내 병도 치료하고 다른 사람도 돕기 위해서 의사가 돼야 겠다”고 다짐했다.

안 교수는 의대 본과 4학년 때 선배들에게 걱정을 털어놓았다. “인턴생활을 밤잠 안자고 하는 것은 하겠지만 저는 밥을 빨리 못 먹고, 딱딱한 것도 못 먹는데….” 박효진 전임강사(현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가 식도압력을 체크하고 식도이완불능증을 확인한 다음 내시경 풍선확장술 시술을 했다. 안 교수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처럼 음식을 먹게 됐고, 성장기에 키 크는 것은 놓쳤지만 앙상한 몸피에 살이 조금씩 찌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는 위장관내과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의대 지도교수인 문영명 교수가 “석사논문 지도해줄 테니까 간에 대해 연구해보라”고 엄명을 내리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광협 교수(현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가 부심을 맡아 논문 주제를 제안했다. 안 교수는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어떤 사람은 환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항체가 생기는지 유전적 이유를 분석해서 미국간학회가 간행하는 《헤파톨로지》에 발표했다. 당시 국내에서 전공의가 이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다는 것은 ‘꿈’에 가까운 것이었다. 주변에서 모두 간 전문가로 인정하는 바람에 위장관내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한광협 교수는 이후에도 안 교수에게 국내에서 머물지 않고 세계의 눈을 뜨게 했다. 한 교수는 아시아태평양간암학회를 초대회장, 국제간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간학회의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수제자’에게 주요 역할을 맡겼다.

안 교수는 전임의 때 ‘BK21 인재양성 프로그램 장학생’으로 선정돼 미국 브라운대 간연구소의 잭 완즈 교수 아래에서 ‘박사후 과정’을 수료했다. 이곳에서 인종별 간암의 특징과 관련한 논문을 《미국소화기학회지》에 발표해서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안 교수는 귀국해서 글로벌제약사의 신약을 검증하고, 환자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

국내 최초로 간염 분야의 산-학 다기관 연구를 기획, 부산대병원과 함께 간염 치료제 바라크루드의 효과를 검증해서 환자들이 보험 혜택을 받도록 도왔다. 또 어떤 환자가 B형 간염 치료제의 복용을 중단해도 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안 교수는 여러 약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이 두 가지 약을 쓰던 것을 테노포비르 하나만 써도 된다는 것을 입증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지원을 받은 ‘한국 만성 B형 간염 코호트 연구‘의 일환으로 2015년부터 7개 의료기관에서 진행된 ‘테노포비르 단독요법 연구’는 대한간학회 뿐 아니라 미국간학회, 유럽간학회 등의 가이드라인을 바꾸게 했다. 이 연구는 질병관리본부의 최우수 평가를 받았고, 안 교수는 외부우수연구자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매년 247억 원의 의료비가 절감되는 효과를 거두게 했다.

안 교수는 2008년 호주 멜버른왕립병원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제약회사 자문의사 모임에 갔다가 지아 홍 카오 국립대만대 의대 교수로부터 《아시아태평양소화기학회지》의 편집위원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편집위원은 학술지에 실리는 세계 각국 학자들의 논문을 심사하고 선정하는 자리로 30대 후반의 의사가 맡는 것은 파격적이었다. 안 교수에게는 이후 국내외 주요 학회의 편집위원 요청이 밀려왔고, 현재 아시아태평양간학회. 유럽간학회, 미국간학회, 국제간학회지 등 4대 학술지를 비롯해서 10개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 가운데 2곳에서는 부편집장을 맡고 있다. 그는 또 지금까지 120여 차례 해외에 초청강연을 갔고, 320여 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환자들 사이에서 ‘간학계의 권위자’가 아니라 ‘친절한 의사’로 정평이 나있다. 회진을 돌 때 자신이 지금 보는 환자뿐 아니라 다른 의사에게 의뢰한 환자까지도 챙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간질환자들이 인터넷에서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커뮤니티에 “친절한데, 너무 젊어 보여서…”하는 글들이 적지 않았다. 이처럼 ‘경륜 있는 명의’에게 옮겨야 하는지 묻는 글들이 올라오면 “안 교수야말로 환자를 진정으로 챙기는 최고 의사”라는 댓글들이 달리곤 했다. 안 교수가 성장기 식도이완불능증 탓에 늦자라서인지, 동안(童顔)인데다가 자신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엉뚱한 오해를 받을 때, 그의 환자들이 ‘주치의의 진심’에 감복해서 이를 알리곤 한 것.

“머리 반쪽에 수술자국이 남아있고, 아직 과식, 과음을 할 수 없어요. 죽음을 경험한 환자였고, 지금도 환자이기에 환자의 처지를 늘 생각합니다. 환자는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여건을 모두 고려해 치료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를 원합니다. 권위적이고 어려운 의학용어 대신 쉬운 말로 진심으로 환자를 격려하는 의사가 참의사겠지요. 그런 의사상에 맞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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