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따라야 되나? 말아야 되나?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즘 권력남용사건, 권력형 채용비리 사건 등 권력과 위계질서를 이용한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 이 같은 권력형 사건은 상급자의 직간접적으로 권력을 남용한 불법적이고 부당한 지시 또는 명령을 중간자나 하급자가 받아 행동하면서 발생한다. 흥미로운 것은 하급자가 이러한 지시와 명령이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임을 알면서도 거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동은 해당 하급자의 개인적인 특질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가 가지는 특질일까? 이렇게 상급자의 명령을 이행했을 때 하급자의 책임은 없는 걸까?

권위를 가진 사람들의 부당한 지시나 명령에 사람들이 따르는지를 본 대표적인 실험이 바로 밀그램(Stanley Milgram)교수의 복종실험이다. 밀그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들이 유대인에게 시행한 잔인한 대량학살사건에서 나치 상급자의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부당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중간자나 하급자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그런 업무를 시행했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권위에 대한 복종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권위자로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이 문제를 틀리면 처벌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이 처벌은 피실험자가 단추를 누르면 전기자극이 문제를 맞추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방식으로 질문에 틀린 답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물론 이 실험에서 처벌받는 사람은 연기자이었고 이들은 전기자극을 실제로 받은 것처럼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기절하거나 죽은 척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소리는 피실험자에게도 전해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권위자의 지시에 전체 피실험자의 2/3가 학습자의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수준까지 전기충격의 강도를 올린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앞의 실험을 약간 변형하였는데 피실험자를 다른 두 명의 교사 역할을 하는 연기자 사이에 배치한 뒤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함께 진행하도록 하였다. 이때 두 명의 연기자에게 전기충격 세기를 올리는 도중에 명령에 거부하도록 하면 피실험자의 90%가 명령에 불복종했다. 하지만 연기자가 권위자의 명령을 따르면 피실험자의 90%가 실험을 끝까지 진행했다. 이 실험들은 평범한 사람들 중 권위자가 위력에 의한 명령이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따르는 사람이 2/3에 이르며 이들의 불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주변에 불복종하는 사람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불편한 질문이 뒤따른다. 위 실험과 현실에서 보듯 중간자나 하급자는 왜 상급자가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지시를 하더라도 따르는 가이다. 아마도 이는 십수 년 동안의 학습과 교육훈련의 성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느 문화권에 있든, 어느 사회에 있든 사회화 과정을 통해 상급자의 권위에 복종하고 명령에 따르는 것을 훈련받는다. 상관 또는 권력의 명령이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라고 하더라도 따르지 않는다면 시스템에 반하는 행위로 인식된다. 불응자에게는 승진탈락, 해고 등 다양한 위험이 따른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대학생 시절부터 선배나 상급자를 존경하고 권위를 존중하도록 교육받은 우리나라에서는 그 위험이 더 크게 다가온다. 무조건 거절하는 것은 상급자에 대한 복종의무에 위반되고 지시에 따르면 법령을 준수할 성실의무에 위반하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명령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상급자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에서는 상급자의 명백한 위법이나 불법한 명령은 복종의 의무가 없다고 했다. 이는 법령이나 사회적 법규를 벗어난 명령을 따르는 하급자가 아무리 상급자의 명령이었다고 항변하더라도 이에 대한 법적인 책임과 형벌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급자의 지시가 부당하다고 느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이는 공무원/공기업과 사기업이 다르다. 공무원/공기업의 경우 1단계로 우선 그 자리에서 부당함을 주장하지 말고 ‘검토해 보겠다’며 일단 물러나고, 2단계로 법령을 분석하여 지시받은 사항이 불법하거나 부당한지를 판단기준에 따라 검토하고, 불법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이행하였을 경우 받게 되는 불이익이나 공익을 검토한다. 3단계로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 상급자에게 거부 사유를 소명하고 지시를 거부한다. 만약 부당한 지시가 반복되는 경우 소속기관 행동강령책임관에게 즉시 상담해야 한다. 단, 상급자의 명령을 거부하는 소명형식은 반드시 서면이나 전자우편 등의 방식으로 소명해야 한다. 이는 소명내용이 징계나 불이익처분에 대한 권익구제의 증빙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소명하는 내용은 자신의 인적사항, 지시내용, 지시에 따르지 않는 사유를 기술해야 하고 이를 상급자에게 제출해야 한다.

사기업은 공무원이나 공기업과 달리 이런 구제장치가 없다. 하지만 법률에 저촉되고, 사규에 위반되며, 사회통념상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업무지시는 꼭 이행해야 할 필요는 없다. 만약 불법하진 않지만 심부름을 시키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부당한 지시의 경우 상황을 봐가면서 융통성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업무지시가 불법적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이에 대하여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그래도 안되면 자신을 그 업무에서 배제할 것을 요청할 수는 있다. 만약 이러한 지시를 불이행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회사가 자신을 징계해고했다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해 회사와 법률적으로 다투어 자신의 권익과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급자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평판이 떨어지며, 어느 정도 인사상의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부당한 업무지시를 따르면서 발생하는 법적인 책임이나 형벌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최근의 여러 사건이 보여주듯 상급자들은 자신의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명령이 문제가 되면 자신은 그런 명령이나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경우에 중간자나 하급자는 상급자의 지시나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본인이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혹시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받았을 때는 서면이나 녹취를 통해 상급자의 지시에 대한 증거를 남기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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