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32호 (2020-08-10일자)

어렵고 어려운 ‘친일파 청산’의 문제, 또다른 이유

1940년 오늘(8월 10일)은 일본제국주의가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강제 폐간한 날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동아, 조선일보를 친일신문로 알고 있지만, 글쎄요? 폐간 전 조선총독부의 보고서는 동아일보는 민족주의, 조선일보는 사회주의 계열의 신문으로 분류했습니다. 공산주의자 박헌영이 동아일보를 거쳐서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활약한 것을 아시는지….

궁금한 건 지금은 친일신문으로 비난받는데, 왜 당시에는 그런 비난이 없었을까요? 일제의 검열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의 눈으론 외형상 친일 기사가 많고 진짜 친일을 한 기자들도 있었겠지만, 조선인들이 이들 신문의 행간을 읽으며 무언가 얻었기 때문 아닐까요? 20년 동안 수 백 차례의 발행정지와 정간을 거듭하면서 ‘한글 신문’의 생명을 유지한 것만 해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선일보가 공산주의자로 비판하는, 손혜원 전 국회의원의 선친 손용우가 징역살이를 한 것은 동아, 조선일보의 폐간을 성토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반면 이들 신문이 자기 신문을 옹호하다 모진 감옥생활을 한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참 어려운 문제인 듯합니다.

1959년 오늘은 또 우리나라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사진)가 서울 메디컬센터(지금의 국립의료원)에서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우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스승이 개발한 수박을 보여주며 육종학의 가능성을 퍼뜨린 것이지요. 우 박사가 씨를 뿌린 육종학의 발전은 통일벼, 일품벼 등의 개발로 이어져 서민이 따뜻한 쌀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지요.

그러나 우 박사의 아버지는 명성황후를 끔찍이 살해한 을미사변의 주동자였던 우범선입니다. 아버지는 일본으로 망명해서 일본여성과 결혼해 살다가 암살당합니다. 우 박사는 한때 고아원에서 살기도 했지만, 나중에 동경제국대 농학과 박사 학위를 받고 활약하다가 귀국합니다.

우 박사는 1916년 조선의 도지사가 방일해서 조선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친일 연설을 했을 때 와세다대에 다니던 김철수가 도지사의 멱살을 잡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우 박사는 김철수로부터 민족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의 민간연구소에서 근무했는데, 동아일보가 그의 업적에 대해서 크게 소개하고, 우 박사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우장춘 환국추진운동’을 펼치자 귀국을 결심합니다.

우 박사는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 병상에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습니다. 이 자리에서 “내 조국이 드디어 나를 알아줘 기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김치를 잘 못 먹는다고 비난을 받았고, 일본의 아내와 자녀를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일본인 아내가 간호사로 위장해 병상의 우 박사를 면회했는데, 우 박사가 한눈에 알아봤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는 친일 청산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뚱겨주는 사례로 보입니다. ‘친일파’는 어떤 사람일까요? 나라를 일본에 판 사람은 친일파가 확실한데,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산 사람 중에는 다양한 ‘친일파’가 있을 겁니다. ▲일본을 조국으로 여기고 이를 부정하는 사람을 적대시한 자 ▲자기 출세를 위해 동족을 괴롭힌 자 ▲일본인과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애족이라고 생각하고 성과를 거뒀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을 이롭게 한 사람 ▲집안과 문중의 영예를 위해 출세를 지향한 사람 ▲국제정세를 오판하고 독립 대신에 자치를 추구했던 지식인 ▲이도저도 아니고 그저 조선인이 잘 대접받기를 원했던 사람 모두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요? 앞의 두 부류는 분명 단죄해야 할 것이지만, 나머지는 어디까지를 친일파로 규정해야 할 지….

지난해 사회자 송해(93)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말한 것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젊은 출연자들이 해방 당시 감격을 묻자 그는 솔직히 대답합니다. “친구가 해방이 됐다고 하는데 그게 뭐냐고 물었어!” “우리끼리 사는 거야!” “지금도 우리끼리 살고 있잖아?” “그게 아니고 일본인들이 물러간다고!” “그게 무슨 뜻인데?”

당시 19세였던 그에게 민족의식이 없었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친일 청산이 혹시 냉철한 현실과 당시 사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감정적, 정치적으로 흘러 진정한 청산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친일청산’이라는 말이 성역(聖域)이 돼 버리고 형식화, 관념화해서 일본을 극복할 수 있는 지금도 진짜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장춘을 친일파의 아들이라고 손가락질해야 할까요, 송해도 친일파인가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도 친일파인가요?


[대한민국 베닥] “간 기증 효자들 위해 복강경 수술 개척”

 

간질환 수술 분야의 베스트닥터로는 서울대병원 외과 서경석 교수(60)가 선정됐습니다. 서 교수는 간 이식 분야에서 숱한 업적들을 남겼지만 부모에게 기꺼이 간을 기증하는 젊은이들의 고통과 흉터를 최소화하기 위해 복강경 수술 분야를 개척한 대가입니다.

그는 스승인 김수태 교수, 생체간이식 분야의 세계적 리더 이승규 아산의료원장에 이어 ‘3세대 대가’로 불리는 의사이며 국제학술지에 무려 3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연구하는 외과 의학자’이기도 합니다.

☞서경석 교수는 어떤 의사인가?


오늘의 음악

첫 곡은 우리나라에서 이연실의 번안곡 ‘소낙비’로 유명했지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의 ‘A Hard Rain’s Gonna Fall’입니다. 서정적 노래로 오해하기 쉽지만,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한 반전(反戰)노래입니다. 둘째 곡은 밥 딜런의 명곡을 존 바에즈가 부릅니다. ‘Sad-Eyed Lady of the Lowlands.’

  • A Hard Rain’s Gonna Fall – 밥 딜런 [듣기]
  • Sad-Eyed Lady of the Lowlands – 존 바에즈 [듣기]

1 개의 댓글
  1. 잭질

    저의 부친은 1911년생으로 북한(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나 살다가
    6.25 전쟁 때 월남하였어요. (1990년 작고)
    부친께서 저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나,
    저의 추측으로는 일본인 밑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사신 것으로 압니다.
    저의 부친 외에도 많은 옛 조선인들이 그들의 지배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으리라 봅니다.

    우리가 흠숭하는 독립운동가들의 수는 극히 소수였을 거예요.
    그 숫자가 전체 옛 조선 인구의 10% 정도가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 이하 2% 아니, 그보다도 더 적은 숫자는 아니었을까요?

    대부분은 민중은 별 생각 없이, 특별한 자각 없이 살아가는 게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지요.

    과거사, 역사는 소중한 부분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화합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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