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의사 300명이 수술 배우러왔지요”

[대한민국 베닥] ㉕두경부질환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김세헌 교수

두경부암은 글자 그대로는 머리(頭)와 목(頸)의 암을 가리키지만, 뇌 아래에서 빗장뼈 위까지 30여 군데에서 생기는 암을 통칭한다. 숨 쉬고, 말하고, 음식을 먹고, 감정을 표현하는 곳에 생기는 암이어서 자칫 치료 부작용이 생기면 삶이 송두리째 망가지기 십상이다. 특히 혀뿌리와 목구멍 깊숙이 생긴 암은 턱뼈와 혀, 후두 등을 자르고 암 조직을 도려내야 해서 암을 없애는 대신 말을 제대로 못하게 되거나 얼굴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김세헌 교수(57)는 로봇수술로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분야에서 세계 의학계의 리더로 꼽힌다. 그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600여 명을 로봇수술로 살리면서 다른 나라에서 따라올 수 없는 치료 성적을 내고 있다. 2011년 아시아 최초로 만든 ‘두경부종양 로봇수술 교육센터’에서는 세계 각국 의사 100명이 수료했고 300여명이 참관했다. 매년 세브란스병원에서 개최하는 국제두경부로봇수술 심포지엄에는 세계의 내로라하는 두경부종양 의사들이 참가한다.

김 교수는 하마터면 세브란스병원에서 이런 성과를 내지 못할 뻔 했다. 그는 우리나라 두경부질환 분야 개척자인 홍원표 박사의 외조카로 자신의 편도선질환을 치료해준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서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고 이비인후과를 전공으로 삼았다. 그러나 전공의를 마치고, 전임의 3년까지 지냈지만 연세대 의대에는 교수 자리가 없었다.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강남세브란스병원 김광문 교수가 유학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미국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의 자틴 샤 교수가 떠올랐습니다. 인도계 의사인데 유색인종 최초로 이 병원의 파트장에 오른 전설적 인물입니다. 전임의 때 이 분이 지은 ‘두경부 수술도해’를 받고 충격 받았고, 내한 강연 때마다 배우러 갔습니다. 편지를 보냈지만, 세계 각국 의사들이 이 분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해서 제게는….”

꿈이 간절하면 하늘이 돕는다고 했던가, 우연한 기회에 인연의 끈이 연결됐다. 세브란스병원의 귀질환 명의였던 고 이원상 교수가 세계두개저외과학회에서 연자로 나섰다가 좌장이었던 샤 교수에게 제자를 추천했다가 받아들여진 것.

그러나 김 교수는 전임의 때여서 자비로 유학길에 올라야 했다. 전세금 6500만원을 모두 뺐고 대부분을 달러로 바꿨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시기여서 1달러에 1780원의 고환율. 미국에서 가족과 외식 한 번 할 수 없는 형편에 연구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유전자연구실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20여명의 인재들이 자기 일만 하고 김 교수에겐 데면데면했다. 그야말로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다. 그렇다고 연구실에서 겉돌다 귀국할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봤더니 코넬대, 콜롬비아대 출신의 연구원 두 명이 아침에 연구실에 먼저 와서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래, 이 거다. 김 교수가 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실험용 쥐 우리를 청소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했더니 연구원들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이 무엇을 도와줄까 물었고 “두경부암 유전자 치료 연구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병원의 까다로운 동물실험 실행 제안 과정을 도와줬고, 김 교수는 1년 만에 자신의 연구로 ‘종양백신을 이용한 유전자 치료’를 주제로 국제학술지 《암유전자치료》에 발표했다.

김 교수는 또 샤 교수의 수술 스케줄을 놓치지 않고 매주 최소 2회 이상 수술실에 참관해서 ‘선진 수술법’을 익혔다. 또 매주 두 번 샤 교수의 임상 콘퍼런스에 참석해서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등의 의사들과 함께 ‘문제해결형’으로 환자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을 체득했다. 메모리얼 슬론-케터링에서 두각을 나타내 그곳에 남으라는 권유를 받을 무렵 세브란스병원 김희남 주임교수로부터 “홍원표 교수가 일산병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니 그곳을 정리하고 와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김 교수는 2000년 귀국해서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3년 동안 두경부질환 환자들을 보다가 이제는 교환교수로 메모리얼 슬론-케터링으로 갔다. 샤 교수의 ‘친근한 제자’로서 수술방과 연구실을 오갔으며 콘퍼런스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김 교수는 그곳에서 만난 연세대 의대 병리학과 조남훈 교수와 함께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가 편도암, 혀뿌리암과 70% 관계있다는 것을 밝혀내 《국제암학회지》에 발표했다. 지금은 HPV가 두경부종양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어 ‘상식’이 됐지만, 당시로는 새 지평을 여는 선구적 연구결과였다.

김 교수는 2005년 신촌으로 복귀해서 두경부암 수술 분야에서 이름을 쌓아갔지만, 암 환자의 수술 후 부작용이 고민이었다. 암 수술 뒤 목소리를 잃고 술독에 빠져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판소리 소리꾼을 비롯해서 부작용을 호소한 수많은 환자들의 얼굴이 계속 눈에 밟혔다. 고민을 거듭할 때 논문 한 편이 눈에 띄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그레고리 와인스타인 교수가 로봇으로 두경부암을 수술한 사례를 학술지에 발표한 것. 로봇수술은 세브란스병원의 트레이드마크 아닌가?

김 교수는 이정권 이비인후과 과장에게 단기연수를 요청하고, 와인스타인 교수에게 수술 장면을 보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2주 동안 돼지동물실험을 하고 돌아왔고, 나중에 한 차례 더 방문해서 카데바(해부용 시신) 대상의 시험도 했다.

2008년 김 교수는 이전 수술로는 후두 전체를 잘라내서 목소리를 잃거나 인공후두를 달아야만 했던, 60대 중반의 하인두암 환자를 대상으로 입으로 카메라와 수술팔 2개를 넣어 암 부위만 절제하는 로봇수술에 성공했다.

“이전에는 혀뿌리나 목구멍 깊숙한 곳의 암을 제거하려면 턱뼈를 자르고 광범위한 조직을 제거하고 환자의 살을 떼어내 이식하는 수술도 곁들였습니다. 로봇수술은 ‘아이맥스영화’ 보는 것처럼 커다란 화면을 보면서 수술할 수 있어서 기능을 보존할 수가 있었고 회복이 빠릅니다. 신세계가 열린 것이지요.”

김 교수는 수술 기술을 발전시키고 영역을 넓혔다. 로봇수술을 처음 실시한 미국에서는 편도암과 혀뿌리암만 겨우 수술할 때, 후두암과 하인두암을 수술해서 국제학계에 선보였다.

‘평생의 스승’ 샤 교수는 미국 의사들의 수술 장면을 보고 “로봇수술은 종양수술이라고 할 수도 없다”면서 부정적이었지만, 한국 제자의 수술 장면을 보고 태도를 바꿨다.

김 교수에게 국제학계에서 수술시범 요청이 몰려왔지만, 환자들을 두고 매번 출장갈 수는 없는 노릇. 김 교수는 2011년 아시아 최초로 두경부종양 로봇수술 카데바(해부용 시신) 교육센터를 만들어서 아시아 각국 의사들이 서울에서 배우게끔 했다. 지금까지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100여명이 ‘수료장’을 받아갔다. 또 세계두경부학회 회장, 유럽두경부학회 회장, 쿄토대 이비인후과 주임교수 등 세계 각국 300여명이 김 교수의 수술시범을 참관했다.

김 교수는 또 2011년부터 매년 세브란스병원에서 국제 두경부 로봇수술 심포지엄(IRSS)을 열고 있다. 재작년 개최된 심포지엄에서는 세계 최초로 단일공 로봇 수술을 선보여서 또 한 번의 신세계를 제시했다. 이전의 수술로봇은 원래 몸통용으로 개발된 것을 두경부에 적용해서 목구멍 깊숙이 들어가면 카메라와 수술팔 2개가 엉기는 문제가 있었다. 카메라와 관절이 있는 3개의 미세한 수술팔로 구성된 새 로봇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 미국 메이요클리닉, MD앤더슨 암센터을 비롯해서 23개국 300여명의 의학자들은 김 교수와 고윤우 교수의 라이브 수술시범을 보고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김 교수가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의사들과 함께 암이 진행한 3, 4기 두경부 환자들을 치료하는 치료지침을 만든 것도 세계 학계의 기념비적 성과다. 암이 커져 이전에는 손쓰기 힘들었던 환자들에게 항암제로 크기를 줄인 뒤, 꼭 필요한 부위만 절제하고, 세포조직 검사 후에 방사선치료를 받게 해서 환자 부작용을 최소화한 것.

국내 일부 병원에서는 로봇 수술의 유용성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면서 로봇수술 도입에 부정적이지만, 환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난치성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특히 세계 학계는 김 교수의 수술 실적이 논문으로 발표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조기 발견된 구인두암의 5년 생존율은 100%에 육박하고 상대적으로 치료가 어려운 후두암이나 하인두암도 70%를 넘었다. 편도암, 혀뿌리암 3, 4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은 84%로 이전보다 20% 이상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이전까지 세계 최고로 평가받았던 메모리얼 슬론-케터링도 60%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아직 모든 환자를 부작용 없이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치료법을 개선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상태에서 최선의 치료를 해야 한다. 그는 환자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믿기에 말수가 적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그것에만 몰두한다.

“인생의 고비마다 도움을 주셨던 고 이원상 교수는 ‘이 환자에게 내가 최고의 선택인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환자에게 더 나은 선택이 되기 위해서 채찍질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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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또미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라니!! 자랑스럽습니다.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시는 이런 훌륭한 의사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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