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전기도 없던 거제에 의사들이 모인 까닭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⑩ 지역사회보건서비스의 출범

1971년 의료진이 지역사회 보건 실습을 하기 위해 나룻배를 타고 거제도로 향하고 있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정기 여객선 영진호를 타고 2시간 반을 가면 칠천도에 있는 항구에 입항한다. 여기에서 나룻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거제 본섬 하청면 실전리 포구에서 내려 첫 번째 마을 입구에 ‘지역사회 의료서비스의 산실’ 실전병원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6년 61개국 대표들이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에 서명했고 회원국의 비준을 거쳐 2년 후 정식 발족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최상의 건강 수준을 향유하는 것은 인류의 기본권”임을 천명했다. 건강을 회복, 유지, 증진시키려는 의료가 자유시장의 개념으로부터 사회정의의 개념으로 변천됐음을 뜻한다.

의료서비스와 보건서비스는 따로따로 발전했으며 1960년대에 들어서 지역사회의학, 지역사회보건 개념이 대두되었다. 의료가 특권이 아니라 인류의 기본적인 권리이므로, 개인의 책임 뿐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책임이어야 함이 강조된 것이다.

1960년대 초부터 연세대 의대는 경기도 고양군보건소에서 본과 4학년 예방의학 실습을 했고, 이화여대 의대는 경기도 양주군 수동면에서 실습을 했다. 대구의 계명대 동산병원, 전주 예수병원 등 여러 병원에서는 주변 무의(無醫)지역에서 순회 진료를 했으며, 병원 가까운 농어촌에서 보건사업을 실시했다.

이렇듯 혁신적 보건의료계 지도자들에 의하여 지역사회의학이 정착하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에 제네바에 본부가 있는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의 기독교의료위원단(CMC, Christian Medical Commission)에서 재원을 확보해서 지역사회보건사업을 지원할 계획을 마련했다.

1970년에 들어서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강원 춘성군에서 보건사업을 전개하면서 대학원생 실습도 했다. 1971년에는 대한예방의학회에서 지역사회의학교육 세미나를 개최했다.

보건사회부는 세계보건기구와 공동사업으로 1960년대 중반에 충청남도를 모범 보건도로 지정해서 보건프로젝트(K-25)를 실시했으며, 1971년에는 경기도 용인군에서 종합보건개발프로젝트(K-4001)를 실시했다.

1975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우리나라에서 철수하면서 총괄적인 보건사업 발전을 위한 재정 지원을 해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을 설립했고, 강원 홍천군, 전북 옥구군, 경북 군위군에서 시범 보건사업을 하였다. 1975년 연세대 의대에서 경기 강화군에 지역사회보건사업을 시작했고, 25년간 의과대학생과 간호대학생 실습을 시행하였다.

6.25전쟁 중과 휴전 이후 종교계 선교단체에서 여러 의료지원을 하였다. 병원을 건립해서 환자를 진료했고 무의지역 순회 진료, 한센병 환자 치료 등 각종 의료서비스를 펼쳤다.

‘거제도의 슈바이처’ 존 시블리 박사가 세운 실전병원에서 킷 존슨 의료선교사가 아이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출처=거붕 백병원 홈페이지]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10년을 일하던 의료선교사 존 시블리(Dr. John R. Sibley, 한국명 손요한)는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에 지역사회보건사업 계획서를 제출해서 승인을 받았다.

시블리는 1970년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거제도에서 지역사회개발보건원을 개원했다. 경남 거제군 하청면 실전리에 있으므로 주민들은 ‘실전병원’이라고 하였다. 지역사회보건사업과 아울러 지역사회개발사업도 기획했는데, 그 중 하나로 염소도 키웠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140개 군이 있었는데, 인구 12만 명의 거제군에는 장승포읍에 의사 1명, 그리고 4명의 한지의사(의사는 아니지만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일정 지역에서 의료행위가 허가된 사람)가 있었다. 전기도 없는 거제도 북쪽 3개면(장목, 하청, 연초)을 대상지역으로 하고, 흙벽돌로 외래 진료실과 남녀 각각 25명이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을 건립했다.

전기가 없으므로 자가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해 흉부X선과 뼈를 촬영할 수 있는 수준의 촬영기를 설치했다. 야전군에서 사용하던 진단검사기를 구입했는데, 손으로 돌려서 원심분리를 하는 수준이었다. 의약품을 보관할 수 있는 프로판가스 냉장고를 배치하였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보건학 석사를 마친 소아과의사 킷 존슨(Kit G. Johnson)선교사가 보건 사업을 전개하려고 3년 예정으로 한국에 와서 거제도에 합류했다. 존슨은 예방의학 수련 중인 필자에게 1년만 보건사업을 담당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예방의학 주임교수는 현지에 가서 보건사업을 할 능력은 인정하지만, 전기도 없는 지방에 가서 고생할 것을 염려하였기에 필자더러 꼭 원하면 현지 근무를 하라고 승낙했다. 결혼식을 한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아내와 함께 거제로 가서 현지 근무를 했다.

어느 날 세계기독교협의회 책임자 2명이 방문해서 사업 설명을 듣고, 현지를 둘러보았다. 혹시 더 필요한 사업이 있느냐고 필자에게 묻기에 의대와 간호대 학생들에게 지역사회보건사업 실습 기회를 주면 젊은이들이 지역사회보건 개념을 충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교육에 도움이 되리라고 답했다.

2~3주 뒤에 제네바에서 학생교육 제안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이 도착하였다. 이 제안이 수용돼서 연세대 의대 4학년생들이 2주 실습, 복음병원간호학교(현 고신대 간호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6주 실습을 하게 됐다. 교통비, 숙식비 등도 사업비에서 부담했다. 여름방학 때에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학생들도 현지실습을 했다.

필자는 지역사회보건서비스를 기획했다. 보건사업팀은 의사, 보건간호사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생인 보건요원 4명 등 총 6명으로 구성했고, 마을마다 건강요원을 지정해서 교육했다. 초등, 중학교를 방문하여 건강교육을 실시했다. 마을 주민의 가족건강기록부를 만들어서 가정방문을 할 때마다 건강 상태와 의료이용 등을 묻고, 필요한 내용을 알려줬다,

1971년 거제교육청과 실전병원이 공동주최한 학교보건강습회에서 필자가 교사들에게 보건 교육을 시키고 있다. 미국에서 온 평화봉사단원도 함께 참가했다.

환자가 계속 늘어서 내과 의사를 충원했다. 외과 의사인 부산 복음병원장 장기려 박사가 격주로 주말에 환자를 봤다. 가족계획시술 자격증을 갖춘 필자가 실전병원에서 자궁내장치(IUD)를 시술했는데, 시술을 받은 주민들이 매우 흡족해 하였다.

이렇듯 충실한 지역사회보건사업을 바탕으로 1971년 말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거제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결성했는데, 농어촌지역에서는 최초였다. 다만 정부는 1974년 전북 옥구군에서 의료보험조합을 만든 것을 먼저 승인했는데, 당시 정희섭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 옥구에 있는 개정병원의 이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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