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윤리적 연구 데이터, 사람 살리는 데 도움 된다면 사용해도 될까?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사람을 얼려 죽이거나, 산채로 해부하는 등 유대인과 포로를 대상으로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실험을 진행하고 이 실험결과를 기록했다. 이런 비윤리적인 실험은 나치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초기 해부학자들은 연구에 사용할 시체들이 부족하자 무덤에서 훔친 시체나 살해당한 시체들을 가지고 인체를 학습하기도 했다. 백신접종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제너는 우두백신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정원사의 아들에게 우두를 접종한 후 날 것의 수두를 주입했다. 이 때 제너는 사전에 아이나 아이의 부모에게 이 연구의 위험성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는 데도 이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만약 이런 임상시험이 지금 시행된다면 제너는 훈장대신 감옥에 가야 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윤리적인 연구나 실험으로 생산된 데이터, 결과를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이것을 사용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 현재까지도 많은 의사들이 수술할 때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해부학 서적 속 삽화가 나치의 한 의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져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이 나치에서의 경험과 결과를 바탕으로 저술되었다는 이유로 책의 판매를 금해야 하는가? 1988년 미국의 한 저체온증 전문가는 나치의사들이 강제수용소에서 행한 끔찍한 실험내용을 참고해 내원한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이 전문가가 참고한 나치의 데이터는 병동에서 환자들 또는 자원봉사자들로부터는 얻을 수 없는 종류의 데이터였다. 이 전문가는 나치의 결과물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비난 받아야 할까?

1989년 이라크의 사담후세인이 전쟁에서 포스진가스를 사용할 계획이 알려지자 미국은 포스진가스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긴급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나치의 문헌을 제외하고는 이 가스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룬 연구는 거의 없었고 결국 미국은 나치의 연구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러한 행동은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2017년 전세계 말라리아 사망자는 435,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모스퀴릭스(Mosquirix)라는 말라리아 백신에 대한 대규모 임상연구가 말라위, 가나, 케냐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조사에 의하면 연구자들이 참여자들에게 신약의 위험성을 알리지도 않고 연구에 대한 동의도 받지 않고 진행했다고 해 논란이 됐다. 만약 이렇게 비윤리적인 연구를 통해 이 말라리아 백신의 효과가 입증된다면 이 백신의 판매를 허용할 것인가?

형사소송법에서는 독수독과이론이 있다. 독수독과이론이란 위법한 수사에 의해서 획득한 1차 증거를 근거로 파생된 다른 증거들까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독수독과 이론은 수사기관의 위법수사를 억제하여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05년 7월 당시 안기부(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테이프를 통해 삼성그룹과 정치권·검찰의 관계가 폭로된 소위 ‘삼성X파일’을 보자. 이 사건에서 도청녹취록을 공개한 기자와 도청녹취록에 있는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국회의원은 실형을 받았지만 위와 관련된 삼성그룹과 정치권·검찰은 처벌받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을 강제로 고문하거나 끔찍한 고통을 주는 혹은 의학연구윤리를 위반한 연구들에 대하여 거부감과 분노를 느낀다. 형사소송법에서의 독수독과이론과 같이 의과학자들도 이런 비윤리적인 연구들의 결과물을 임상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비윤리적인 연구로 나온 결과물들이나 약품을 임상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죽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만약 비윤리적인 연구라도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는데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임상에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앞으로 이러한 비윤리적인 연구들이 결과를 근거로 정당화되거나 나중에는 이러한 비윤리적인 연구들을 장려할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을 수단화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임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을 심각히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방식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환자를 살리고 동시에 사회정의와 윤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댓글을 달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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