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갑상선암 환자 살리는 ‘낭만 닥터’

[대한민국 베닥] ⑲갑상선 수술 분야 강남세브란스병원 장항석 교수

갑상선암 덩어리가 목의 숨길까지 번져 있었고 심장에서 목과 팔로 향하는 동맥을 덮고 있었다. 다른 병원에서 “어쩔 수가 없다”고 포기했던 63세 환자. 살릴 수 있다고 믿었고, 신념을 현실로 바꾸고 싶었다. 목 아래 부위를 가로로, 가슴 한가운데를 세로로 절개했다. 수술 도중 뇌로 혈액이 가지 않는 사태를 막기 위해 인조혈관으로 우회로를 만들고, 7시간 동안 목과 가슴 곳곳에 번진 암을 잘라내고 떼어냈다.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서 13년을 더 살았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장항석 교수(57)는 2003년 6월25일 이처럼 우리나라 갑상선 암 치료의 이정표를 세우는 수술을 했다. 이전에는 갑상선암이 식도나 기도, 혈관 곳곳으로 번져있으면 수술하지 않는 것이 ‘정답’에 가까웠지만, 가슴을 절개해서 적극적으로 곳곳의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본격 시작한 것이다.

장 교수는 이날 이후 다른 의사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던 숱한 갑상선암 환자를 살려냈다. 온몸에 암이 번진 71세 환자를 17시간에 걸쳐 배꼽까지 절개하고 폐, 간과 혈관을 절제하는 수술 끝에 살려냈는가 하면, 목에서 시작한 암이 가슴 전체까지 번져 가슴이 불룩해진 모습으로 “가슴의 혹을 떼고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다”고 애원하던 83세 실향민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했다. 학회와 논문을 통해서 수술 성과들이 발표되자, 박수를 보내던 의사들이 환자를 보내왔다. 기적의 수술을 체험한 환자들을 중심으로 알음알음으로 소문이 나서 전국에서 난치성 갑상선암 환자들이 몰려왔다.

장 교수는 지금까지 1만 여명의 갑상선암 환자를 수술했으며, 이 가운데 260여명에게 가슴을 여는 고난도 수술을 시행했다. 개흉(開胸) 수술을 시행한 159명을 평균 40.6개월 추적 조사했더니 81.5%가 생존했고 60.5%가 완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난치성 갑상선 환자의 수술 건수도, 치료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장 교수는 어릴 적 직접 보았던 성산(聖山) 장기려 선생과 그의 일곱 번째 제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외과 의사가 되려고 마음먹었지만 뛰어난 실력에도 울퉁불퉁한 산길을 돌고 돌아야만 했다. 황무지에서 악전고투할 때 억울하다고 여겼던 순간들과 힘든 경험들이 나중에 돌이켜보니 난치성 암을 치료하는 바탕이 돼 있었다.

장 교수는 인턴을 마치고 당연히 붙을 줄 알았던 외과 전공의 선발에서 밀려나 공중보건의 복무부터 해야만 했다. 경기 여주 보건지소에 배치를 받았지만, 약혼자(김미라 현 성남 우리들이비후과의원 원장)가 고신대 이비인후과에서 전공으로 근무하고 있어 ‘그녀’ 가까운 곳에서 근무할 길을 찾다가, “아무도 안 가려는 병원에 갈래?”라는 제안을 받았다. 난치성 결핵을 전담하던 국립마산병원이었다. 전국에서 몰려오는 중증 결핵환자의 흉부외과 수술을 보조할 때만해도 그것이 나중의 ‘가슴 절개 암 수술’에 도움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장 교수는 박수를 받으며 전공의를 마쳤지만 세브란스병원에 남지 못하고, 주임교수의 하명에 따라 삼성서울병원에 가야만 했다. 그곳에서는 미국 조지타운의대, 워싱턴국립종합병원 등에서 이름을 떨치던 혈관외과 분야의 대가 이병붕 교수가 있었다. 이 교수는 카이스트와의 공동연구를 비롯해서 당시로선 생소하기만 했던 ‘연구의 신세계’를 보여줬다. 이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에 남을 것을 권했지만 장 교수는 스승 박정수 교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세브란스로 복귀했다. 혈관수술 경험이 자신감 있게 난치성 암을 수술할 무기가 될 줄도 그때는 몰랐다.

장 교수는 2년 동안 세브란스 전임의로 남들이 꺼리는 수술을 척척 해냈지만 교수 자리가 없었다. 구미차병원으로 갔다가 수술 실력이 알려지면서, 곧바로 분당차병원으로 차출됐다. 그곳에서 위암을 전담하던 교수가 미국 연수를 가는 바람에 2년 동안 위암 수술을 하던 중,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부터 SOS가 왔다. 유방암 분야의 명의 이희대 교수에게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오니, 이 교수의 ‘부전공’인 갑상선 수술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분당차병원 이경포 교수는 “병원을 위해선 너를 잡아야겠지만, 그곳으로 가야만 큰 의사가 된다”며 애제자를 놓아줬다.

그러나 2003년 강남세브란스로 옮길 무렵 이희대 교수가 갑자기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는 바람에, 장 교수는 유방암과 갑상선 수술을 함께 해야만 했다. 그는 이 무렵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가 절실히 필요했다. 신촌의 세브란스병원에서는 박정수 교수가 ‘최고의 갑상선암 명의’로 전국에서 몰려오는 환자를 돌보고 있었고, 정웅윤 교수는 갑상선암 로봇수술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기에 자칫 강남은 갑상선 분야의 변두리가 될 수 있었다. 장 교수는 가슴 곳곳의 수술경험과 혈관외과의 전문성을 살려서 다른 의사가 포기하는 수술을 하고, 이전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중시하는 치료와 연구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특히 난치성 갑상선암의 경우, 이론적으로 곳곳의 혈관을 잘라내고 떼어내면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 있었지만, 다른 의사들은 수술 위험 때문에 손대지 못했다. 장 교수는 혈관외과 수술을 비롯한 그 동안 쌓은 경험 때문에 자신이 있었고, 희박한 가능성을 현실로 구현했다. 난치성 갑상선암의 수술은 세계적으로도 ‘도전의 영역’이어서, 장 교수가 2007년 미국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캐터링 암병원의 ‘세계적 대가’ 자틴 P. 샤 교수에게 연수 갔을 때, 그 곳 의사들조차 장 교수의 수술 사례를 보고 감탄할 정도였다.

장 교수는 훌륭한 스승들 덕분에 지금의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첫 스승은 아버지 장임수 박사(85). 장기려 박사의 뜻을 이어서 늘 “의사는 돈을 좇아서 안 된다”고 가르쳤다. 아버지는 부산의 이름난 외과 명의로 위암을 주로 수술했지만 아들과 갑상선암에 대해서 토론하다가 나중에는 갑상선암이 주전공이 돼 파티마외과를 퇴임할 때까지 무려 5,000명을 수술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고비마다 삶의 방향과 인내를 가르쳤으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장 교수의 동생 호진 씨도 외과 의사의 길에 들어서 현재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로 갑상선암을 수술하고 있다. ‘갑상선암 명의 3부자’는 틈만 나면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 함께 의료봉사를 하며 인술을 베풀고 있다.

장 교수의 두 번째 스승은 박정수 교수(77·현 일산차병원). 초등학교 때부터 입주과외를 시작해서 연세대 의대에 들어왔고, 외국 의사들을 찾아가 배우면서 국내 갑상선암 수술 영역을 개척한 입지전적 의사다. 장 교수에게 박 교수는 ‘갑상선암의 넓은 영토’였고 언젠가 넘어야할 ‘높은 산’이었다. 박 교수가 신촌에서 퇴임 후 강남으로 왔을 때, 장 교수는 기꺼이 모시고 ‘최강 갑상선암 수술팀’을 꾸려나갔다. 미국 의사 출신의 삼성서울병원 이병붕 교수와 분당차병원 이경포 교수는 합리적인 의사세계를 열어줬고, 고(故) 이희대 교수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철두철미한 태도를 솔선수범하며 보여줬다.

생사를 오가는 난치성 암 환자와 희비를 나누는 외과의사이기에 연상하기 어렵지만, 장 교수는 화가이면서 문학가이기도 하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참가한 미술대회에서 전국 최우수상을 받았고, 초중고 때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받아서 부산의 미술계에서는 당연히 ‘유망한 화가’로 여겨졌다. 의대 입학 뒤에는 의대 미술동아리 ‘세란미술반’에 들어가서 캔버스에 자신의 구상을 담았으며 본과 2학년 때 연세문화상 미술상을 받기도 했다. 본과 4학년 때에는 외과 이경식 교수로부터 방송 출연용 그림 자료를 부탁받기도 했다. 장 교수는 2018년 전임 한광협 내과 교수(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의 뒤를 이어서 미술반의 지도교수를 맡았고, 전시회 때마다 작품을 내고 있다.

장 교수는 2007년 미국 연수 때 의사가 되겠다는 동생에게 의사의 세계에 대해 알려주고 당부하는 편지들을 썼고, 귀국 후 이 글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할 수 있는지 출판사에게 문의했다. “이런 글들은 안 팔리니까 환자 대상의 책을 펴내자”는 출판사의 제안에 따라 발간한 《진료실 밖으로 나온 의사의 잔소리》는 3쇄까지 찍는 ‘준수한 흥행’을 기록했다. 출판사에서는 장 교수의 음식에 대한 박학한 지식을 알고 또 다시 ‘유혹’해서 2탄으로 《냉장고도 모르는 식품의 진실》을 펴냈다.

장 교수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전염병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인천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강의했다. 그곳 교수들은 “우리가 하면 한 학기 분량인데 3시간에 이렇게 설명하다니…”하며 감탄하며 출간을 권유했다. 《판데믹 히스토리》는 꾸준히 팔리다가, 최근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판매량이 치솟고 있다. 재작년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서 원래 펴내기로 했던 《외과의사 비긴즈》를 출간했다. 뒤의 두 책은 출판문화진흥원의 우수 콘텐츠에 선정됐다. 장 교수는 같은 해에 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문예월간지 ‘시사문단’의 단편소설 부문 신인상에 당선됐다. 엄연한 등단 소설가인 셈이다.

장 교수는 토요일 오후 아침 회진을 마치고 음악을 들으면서 원고를 쓴다. 그렇다고 논문에 게으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200여 편의 논문을 써왔고, 절반 이상을 SCI급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연구보다 치료가 중심인 외과 의사로서는 어마어마한 성과다.

장 교수는 문학과 미술 등을 아우르는 ‘낭만닥터’이지만, 진료는 철저하고 냉정하다. 장 교수는 환자를 위로하며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스타일도, 사근사근한 스타일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평한다. 대신, 의사는 정확성을 바탕으로 철저히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진료 보기 전에 환자의 기록을 철저하게 검토해서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환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에 막힘이 없다.

더러 진료실에서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도 한다. 환자가 친구에게 들었다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보호자에게 “그 친구 사귀지 말게 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처럼 싫은 소리를 듣거나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일부 환자가 “까칠하다”고 평가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의사로서 환자를 살리는 것에서 얻는 기쁨이 이런 오해를 덮고도 남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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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행복둥

    자기주관이 뚜렷하신 의사선생님. 존경합니다.
    아무조록 그마음 변치않고 오래동안 휼륭한 의사선생님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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