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무죄추정의 원칙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17년 12월 16일, 서울에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던 인큐베이터 내의 미숙아 4명이 밤 9시부터 연이어 심정지가 발생했다. 응급처치를 시행했지만 결국 4명 모두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망원인이 시트로박터 푸룬디에 의한 패혈증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간호사가 주사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위생관리 지침을 위반해 균오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특히 미숙아들이 숨지기 전 이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주사제 1병을 나눠 쓴 뒤 1인당 1병을 투여한 것처럼 꾸며 건강보험 진료비를 허위청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병원 의료진들은 건강보험비를 거짓으로 청구한 파렴치범으로 몰리기까지 했다. 이 사건에 대해 환자단체연합회는 병원과 의료진을 일벌백계해 전국의 의료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재발방지에 더욱 힘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모의원은 병원이 이전에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표창을 받았다며 비난했고, 정의당 모의원은 병원의 초기대응이 부적절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해당 병원은 결국 이 사건 이후 상급종합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강등’되었다.

하지만 의료진이 모두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진 후인 2018년 보건복지부는 ‘주사제를 분할하여 투여하는 것은 의료진의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며 분할사용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며 뒤늦은 유권해석을 내놨다. 2019년 2월 서울남부지법도 기본적으로 의료진의 주의의무 과실은 인정되지만 검찰이 환아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했다며 위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의료진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검찰의 항고로 2심이 진행중이다)

여기서 우리가 볼 것은 형사사건에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헌법 제27조제4항에서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는 간단한 조항이다. 이에 따르면 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에 준하여 취급해야 함은 물론 유죄임을 전제로 하여 해당 피고인에게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위 사례에서 병원에서 신생아들이 사망하였을 때 정치권과 환자단체는 흥분했다. 무엇을 근거로 흥분했을까? 정치권과 환자단체를 비난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 쉽게 그럴 수 있다. 미디어에 날이면 날마다 보도되는 사건들은 더하다. 최근 크게 보도되는 사건들은 거의 모두 이제 막 수사가 시작된 사건들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어쩌면 우리들 마음속에 좋은 사람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줘야 하지만 나쁜 사람은 그 원칙을 굳이 지켜줄 필요가 없다는 편리한 생각이 잠재되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헌법 정신은 황당하고 억울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마음대로 예단해 판단하지 말고 오직 판결에 의해서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판단하라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환자단체와 정치인들은 왜 그렇게 가혹한 예단을 했을까? 아마 병원 의료진들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나쁜 의료인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이런 나쁜 의료진을 혼을 내줌으로써 자신들의 선명성을 과시하고 차제에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성급한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때쯤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는 것은 그들을 ‘구속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쁜 의료인’들이 구속되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또 구속이 되면 마치 유죄판결을 받은 것처럼 기뻐한다.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이 예외적으로 매우 잘 지켜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정의기억연대의 윤미향의원 사건의 경우 많은 의혹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지만 민주당에서는 사실관계를 우선 확인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수사기관이나 제3의 기관에서 사실 검증이 확인되어 내용이 낱낱이 밝혀지면 대응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형사사법 절차가 인권을 보호하기 바란다. 또 한편으로 마음속에서 예단한 좋은 약자를 위해 원칙이 지켜지길 바라면서도 나쁜 강자를 위해서는 그런 원칙이 무척 불편하게 생각되는 딜레마를 겪는다.

이런 이중기준이 지배한다면 우리는 결국 법치주의의 진화가 아닌 퇴행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 정부는 최근의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피의사실공표’라던지, ‘구속수사’를 최소한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위와 같은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조사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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