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고비 넘기고 대장암-크론병 최고 권위자로!

[대한민국 베닥] ⑯대장질환 수술 서울아산병원 유창식 교수

유창식 교수가 통합진료실에서 다른 의료진과 함께 환자에게 치료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의사 5, 6명과 전문 간호사가 기다리고 있다. 의료진은 벽의 대형 모니터와 자기 앞 컴퓨터에서 환자의 진단영상을 보면서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다. 환자는 의료진 한자리에 모여 자신과 대화하며 진지하게 의논하는 모습에서 ‘투병의 힘’을 얻는다.

서울아산병원 대장항문외과 유창식 교수(59)는 이처럼 매주 두 번 ‘통합진료실’에서 각각 대장암과 염증성장 질환 환자를 본다. 유 교수는 7년 동안 암병원장으로 재직하면서 2006년 도입된 다학제진료가 뿌리내리고 자리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처음에 일부 의사들은 ‘몰려오는 환자 보기에도 바쁜데…’하며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내 환자가 우리 병원 아니면 어디에서 이런 진료 받을 수 있겠느냐?’고 뿌듯해합니다. 대가들이 자신의 치료법을 고집하던 태도에서 벗어나면서 종종 치료법이 바뀌고, 심지어 진단명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학제진료는 환자와 함께 진료를 본다는 점에서 다른 병원에서 실시해왔던 협진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지 않고 복잡한 검토가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유 교수 환자도 10% 정도만 해당한다. 아산병원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시행하자 건강보험 급여항목에 포함되기도 했다.

유 교수는 환자 중심의 치료로 대장암과 염증성 장 질환 치료에서 세계적 경지에 오른 의사다. 그는 원래 40대까지 열심히 일하고, 이후에는 낭만적으로 여유 있게 사는 의사를 꿈꿨지만, 의대 본과 졸업반 때 교통사고로 생사를 넘나들면서 삶의 방향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운명의 순간은 번개처럼 왔다. 부산에 졸업여행을 갔다가 자갈치시장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던 길에 번개처럼 왔다. 번쩍하는 순간이었다. 택시기사가 졸음운전을 했는지, 차가 가로수를 들이박고 전복했다. 기사는 즉사했고 유 교수는 의식을 잃었다. 등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옆자리 친구가 엉금엉금 기어나가 119를 부르지 않았다면….

유 교수는 다음날 오전에 겨우 깨어났다. 얼굴뼈가 으스러져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딴 사람이었다. 숨을 제대로 못 쉬고, 물도 제대로 못 마시며 통증과 싸웠다. 한 달 만에 미음을 먹을 때 웬일인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는 외과 교수가 됐고. 등뼈가 부러졌던 ‘생명의 은인’ 방문석은 재활에 성공해서 서울대 의대 재활의학과 교수가 됐다.

유 교수는 “환자로 지내니 하루 종일 의사를 기다리는 심정도, 간호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알게 됐다”고 말한다. 달포 동안 병실에서 다른 환자와 함께 지내면서 환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유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 입학해서는 “40대까지 열심히 일하고 이후에는 낭만적으로 살겠다”고 마음먹고 의대 스키 반, 오케스트라 등에서 ‘낭만의 기초’를 닦았다. 스키 반에서는 노르딕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전국체전에 참여해서 메달을 딸 정도였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오보에를 불었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생사를 오가며 삶의 방향이 바뀌었던 것.

그는 서울대병원에서 외과 전공의를 마치고 스승인 오승근 교수의 권유에 따라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겼다. 당시 압도적으로 환자가 많았던 위암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선배 김진천 교수의 설득에 따라 대장 수술을 맡게 됐다.

유 교수는 매년 500명 안팎, 지금까지 1만2000명의 대장암 환자를 수술했다. 그는 애타는 암 환자의 심정을 잘 알기에 진료에서 수술까지 3주 이내에 끝낸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환자가 넘치면 다른 의사에게 수술토록 해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려고 한다. 그는 표준 치료에 충실히 따르면서도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길을 걸어왔다.

“지금 초기 대장암은 내시경 절제나 수술이 표준 치료법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수술은 개복 수술, 복강경이나 로봇수술 등을 시행하고 의사는 환자 상황에 따라 복강경 구멍을 몇 개 뚫느냐 고민하지요. 그러나 직장암은 아직 결론이 났다고 보기 힘듭니다. 무엇보다 수술 없이 방사선 치료만 해도 되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방사선 단독치료는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교의 세계적 여자 외과의사 안젤리타 하브르-감마 교수가 제안한 것. 그는 “방사선 치료의 예후가 좋은 환자는 굳이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파격적 주장으로 한때 학계로부터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수술 때 혹만 도려내거나 전체 수술을 안 해도 환자의 예후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 점점 사실로 판명되고 있다.

유 교수는 “항문암의 90%는 방사선 치료만 받아도 되는데…”하며 논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고전적 교과서’보다는 ‘환자를 위한 진보’의 편에 섰다. 그는 방사선 치료에 듣는 유전자 7개를 규명하고, 수술 전 방사선요법의 치료반응을 예측하는 바이오마커의 국제공동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유 교수가 암병원장으로서 구축한 정밀의료플랫폼과 데이터 센터는 직장암의 방사선치료뿐 아니라 대장암 전체의 맞춤형 치료를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는 “개인의 유전자 특징에 따라 암을 치료하는 날이 성큼성큼 가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유 교수는 ‘대장암 명의’로 이름나기 전, 염증성 장질환의 국내 독보적 의사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1994년 대장질환을 맡고 대장암 수술을 하면서 가끔씩 찾아오는 염증성 장질환 환자를 수술했지만 한 환자의 치료법에 답이 나오지 않아서 1년 내내 고심했다. 우연히 미국 미네소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했다가 염증성 장질환 세션에 참석한 의대 교수에게 환자 치료법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그 의사는 한 치 망설임 없이 ‘정답’을 얘기했다. 귀국 후 그대로 따라했더니 환자의 상태는 극적으로 호전됐다. 유 교수는 스승과 선배에게 졸라 이 분야 세계 최고였던 미국 메이요클리닉으로 연수를 갔다.

염증성 장질환은 국내에서는 당시만 해도 희귀병이지만 미국에서는 환자가 넘쳤다. 세계 최고의 병원이니 만큼 미국 곳곳과 해외에서 의사들이 손을 든 난치성 환자가 몰려왔다. 유 교수는 환자 치료현장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밤잠을 자지 않고 케이스를 정리하면서 파고들었다.

다시 아산병원 진료실에 왔을 때 국내에서도 환자가 늘어나고 있었지만, 대부분 미국에서 본 유형의 환자였다. 그래도 초심자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 진료했더니 전국에서 소문이 났다. 한 해 크론병 130여명, 궤양성 대장염 20여명을 수술하며 지금까지 1700여명을 수술했다. 전국 염증성 장질환 수술 환자의 40% 정도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절반은 복강경으로 수술해서 후유증을 줄였으며, 전국 평균에 비해 40% 낮췄다. 그는 염증성장질환연구회를 만들어 매년 2, 3번 워크숍을 열어 다른 병원 교수들에게도 치료법을 가르쳐왔다.

유 교수는 2013년 크론병의 가장 흔한 합병증인 크론성 치루를 환자의 배나 허벅지에서 추출한 지방세포를 이용한 줄기세포치료제의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줄기세포 분야 최고의 국제권위지 《줄기세포》에 발표했다. 크론성 치루는 직장에 염증이 생겨 고름이 항문 주위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것. 유 교수가 33명에게 이 치료제를 주입했더니 8주 후 27명(82%)에게서 누공이 완벽히 막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지방의 20대 여성은 삶을 극적으로 바꿨다. 항문에 6~7개의 관을 꽂아서 직장의 고름을 빼내야 했던 환자는 “결혼을 하려는데 제발 관을 빼게 해달라”면서 “줄기세포치료를 해줄 수 없겠느냐?”고 애원했다. 줄기세포치료가 없었다면 수술을 받았어야 하는데 변실금이 생길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고 놔두면 고름이 회음부와 질까지 오염시켜 결혼생활은 아예 엄두를 못 낼 상황. 유 교수는 두 차례 최선을 다해 치료를 했고, 환자는 ‘깨끗한 상태’에서 결혼해서 지금까지 탈 없이 지내고 있다. 환자의 삶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옛날 환자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외과의사 하기 잘 했다!

유 교수는 환자를 위해서 자신을 철저히 관리해왔다. 자기 전에 다음날 스케줄을 짜고, 아무리 많이 자도 5~6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주말에 낮에 시간이 남아도 아직 낮잠을 잔 적이 없다. 의대 때 꿈꿨던 ‘낭만적 의사’와는 먼 길을 걸었지만, 환자가 건강을 찾는 모습에서 기쁨을 느낀다. 그는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환자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했는가? 학자로서의 명예가 아니라 환자에게 이익이 가는 연구를 하고 있는가?”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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