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내과 교수?” 유리천장 극복한 천식 세계적 대가

[대한민국 베닥] 알레르기질환 박해심 아주대의료원장

“제가 중책을 맡게 돼, 앞으로 다른 의사가 돌보실 겁니다.”
“선생님이 결정하신 것이라면 저를 위한 것으로 무조건 믿습니다.”

아주대병원 알레르기내과 박해심 교수(62)는 최근 의료원장 겸 의무부총장으로 취임해 1주일에 세 번 보던 진료를 두 번으로 줄여야했다. 가족처럼 동고동락하던 일부 환자를 후배, 제자에게 맡겨야 했지만 환자들은 그마저도 믿었다. 자신에게 최선의 진료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의사의 고심어린 선택이라고 여기고 오히려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왔다. 의료원장을 마치고 다시 봐줄 것을 기대한다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박 신임 원장은 ‘천식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다니는 의사다. 환자뿐 아니라 의사들로부터도 신뢰를 받고 있다. 세계 학회에서 중심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은 간담회에서 초청 강연할 때에도 전력을 다해서 준비하기 때문이다. 전국 병원에서 의사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오고 있고, 전문의를 마친 제자들이 전국 10여 개 병원에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박 원장은 어쩌면 의료원장은커녕 의대 교수가 되지도 못할 뻔 했다. 박 원장은 피아노를 잘 쳐서 한때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했다. 고교 1학년 때 출전한 콩쿠르에서 탈락하지 않았다면 음악가의 길로 갔을지 모른다. 첫 번째 자신의 한계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박 원장은 1970~80년대 지독한 ‘유리천장’을 견뎌내야만 했다.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전문가의 꿈’을 심어줬지만, 주위에선 “여자가 무슨…”하면서 지역의 대학 나와서 유복하게 살라며 서울 행을 말렸다. 박 원장은 연세대 의대에 입학, 본과를 수석졸업하고, 인턴과 전공의 때 가는 곳마다 쩍말없는 처리로 교수들과 선배들의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의료계의 유리천장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당시 주요 의대에서 여의사가 내과 교수가 된다는 건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박 원장은 그나마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미래형’으로 유망했던 알레르기내과를 세부전공으로 삼았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전임의가 되자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절감해야만 했다. 한 원로교수는 여자 제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우리 대학은 여자가 교수를 할 수 없는 ‘전통’이 있다”고 거리낌 없이 얘기했다. 전임의 3년차 때에는 월급을 받지 못하는 ‘무급 전임의’로 근무해야 했다.

개원의 길을 가라는 무언의 압력이 사방에서 전달됐지만, 박 원장은 불가능에 도전하며 버텼다. 5남매의 막내딸을 애지중지한 아버지로부터 ‘패밀리 장학금’을 받으며 밤늦게까지 실험실을 지켰다. 검증고시 공부하듯,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해서 큰다리먼지진드기의 측정법에 대한 연구결과를 국내 의사 최초로 국제학술지 《알레르기연보》에 발표한 것을 비롯, 한 해 무려 6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교수들의 ‘의지’는 바뀌지 않았다. 박 원장을 아끼는 교수들도 윗분의 의지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간호사와 연구원 등이 안쓰러워하는 눈길이 느껴질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다.

“아무리 애써도 세상에서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울면서 이를 악 물었죠. 그러나 그때 그 경험이 나중에 인생의 약이 됐습니다. 당장 실패로 보이던 것이 나중에 큰 자산이라는 것도,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연구뿐 아니라 환자진료에도 큰 가르침이 됐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왔다. 의사로서 첫 국립의료원 원장으로 취임했던 주양자 박사가 손길을 뻗쳐왔다. “일본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에서 영어로 자신감 있게 발표하던 모습을 보고 쭉 지켜봤는데, 우리 병원으로 오지 않겠어요?” ‘유리천장’을 하나씩 하나씩 부수고, 나중에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의원까지 맡은 입지전적 인물이 박 원장의 그릇을 알아본 것.

1990년 박 원장은 국립의료원으로 자리를 옮겨 진료와 연구를 병행했다. 대학이 아니어서 연구비 지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비를 털고 ‘패밀리 장학금’을 보태 연구원을 채용했고 1, 2개월마다 논문을 발표했다.

1992년 서울에서 열린 대한알레르기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또 한 번 전기가 마련됐다. 알레르기 분야의 세계 최고 대가였던, 영국 사우샘프턴 대의 스티븐 홀게이트 교수가 ‘똑 소리’ 나게 질문하는 젊은 의사를 눈여겨봤다가 자신의 제자로 부른 것. 박 교수는 이듬해 영국으로 가서 밤과 주말을 잊고 진료실과 실험실을 오가면서 진료·연구 시스템을 가슴에 담았다. 세계 각국에서 온 의사들과 교류하면서 식견을 넓히고 네트워크도 쌓았다.

스승은 “왜 한국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느냐, 영국에 남든지, 미국에서 더 공부하라”고 말렸지만 국립의료원과의 약속에 따라 귀국하니, 또 다른 기회가 펼쳐졌다. 대우그룹이 설립한 아주대병원이 알레르기 내과 의사를 찾고 있었던 것. 독일 뮌헨대 의대 출신의 ‘열린 의사’ 이성낙 초대 원장(피부과)은 기꺼이 박 원장을 맞았다.

박 원장은 영국에서 배운 시스템을 바탕으로 알레르기내과와 연구실을 구축했다. 문제는 진료였다. 아주대병원은 당시로선 지방의 시험적 병원이었고, 자신은 무명 의사였다. 그는 아침마다 자신에게 되뇌었다. “환자를 가족, 친척처럼 대해야 한다!”

환자가 글자를 읽지 못해도, 아무리 가난해도, 가족처럼 다가섰다. 싹싹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는 아니지만, 환자는 의사의 본심을 알아보는 법. 시나브로 입소문이 나고, 알음알음으로 전국에서 중증 알레르기 환자들이 몰려왔다. 빅 데이터에 자신의 진료정보를 제공하기로 동의한 환자만 3000명이 넘었다.

박 원장은 아스피린, 항생제 등 약물 알레르기와 직업성 천식에 대한 굵직한 연구결과를 잇따라 내놓으며 세계적 대가로 입지를 구축했다. 환삼덩굴 꽃가루에 천식 및 알레르기 비염의 중요한 원인임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고 면역치료제를 개발했다. 알레르기의 유전적 원인을 밝히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다국적 임상연구도 숱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는 대한직업성천식학회,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회장, 세계알레르기학회 학술위원장, 《알레르기천식및면역학연구(AAIR)》 편집장 등을 역임했고 알레르기 분야 최고 권위 교과서 ‘미들턴 알레르기(Middleton’s Allergy)’의 주저자로 참여했다. 또, SCI급 국제학술지에 주저자로 3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대한의사협회 광혜학술상, 대한내과학회 최우수 논문상, 서울시의사회 유한학술상, 유일한상 등 숱한 상을 받았으며 2013년 세계알레르기학회로부터 ‘특별 공로상’을 수상했다.

박 원장은 좋은 천식 치료제가 계속 개발되고 있지만 고령화와 미세먼지 등 새 환경 때문에 환자가 계속 늘고, 치료율도 만족스럽게 올라가지 않는 현실에서 환자 맞춤형 면역치료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임상진료와 기초연구를 연결하는 ‘중개 연구’의 권위자로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아주대의료원 연구지원실장, 첨단의학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6년에는 보건복지부 연구중심병원 육성사업 면역질환연구단장을 맡아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연구진과 제약회사들과 함께 난치성 천식에 대한 면역치료제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진료-연구-행정-교육의 경륜이 그를 의료원장 겸 의무부총장까지 이끌었던 것.

박 원장은 이화여대의료원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맡은 첫 여의사로 기록되게 됐다. 같은 연세대 의대 출신인 이혜란 교수가 한림대의료원장(소아청소년과), 김봉옥 교수가 충남대병원장(재활의학과·현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장)을 맡은 적이 있지만 교육-연구와 진료를 총괄하는 것은 처음이다. 박 원장은 “병원이 지금껏 규모의 성장에 이어, 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각 분야 전문가와 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부부가 각각 의료원장을 맡은 국내 유일 기록도 세웠다. 동갑내기 남편은 한림대의료원장을 연임했던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의 권위자인 정기석 교수. 남편은 메르스 사태 이듬해에 질병관리본부장을 맡아 △심리적 방역 △신속한 정보 공개 △본부 내·외부 협력 체제 등을 구축, 이번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에 선전하게끔 토대를 닦은 의학자다. 부부는 틈틈이 알레르기 질환과 병원 행정 등에 대해서 가슴을 터놓고 의견을 나누는 동지이기도 하다.

박 원장은 아주대의료원의 업그레이드와 진료-연구의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지만 자신이 있다. 의사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진료-연구의 시스템을 구축한데다가, 가족의 응원에 동료 의사와 연구원들의 신뢰, 자신을 믿고 응원하는 수 만 명의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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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제자

    박해심 의료원장님 존경합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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