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외교노력 덕분, FDA 통과하고 진단키트 수출?

13일 언론들이 일제히 외교부 고위 공무원의 전언을 통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사전 승인’을 받아 수출계약이 끝난 3개사 중 2개사의 국산 진단키트를 마침내 수출한다고 보도했다.

외교부는 지난달 28일 우리 정부의 외교 노력에 따라 국내 진단 키트 업체들이 FDA의 사전 승인을 받았다는 성급한 발표로 ‘가짜뉴스’ 논란까지 일으켰다. 진단키트 회사들은 황당해 했지만, 외교부는 ‘사전 승인’이 아니라 ‘잠정 승인’이고 틀린 것 없다는 해괴한 해명자료를 냈다. 일부 언론은 틀린 뉴스를 가짜뉴스가 아니라는 코미디 같은 ‘팩트 체크’를 했다. 외교부는 그런 언론의 지원에 힘입었는지, ‘잠정 승인’에서 ‘사전 승인’으로 자랑스럽게 되돌아왔다.

FDA의 홈페이지와 관련 법령을 대략 훑어보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질 텐데…. 코로나 19 사태가 지속되면서 지친, 우리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서 오버한 것일까?

FDA는 보건안보의 위기상황에서 긴급사용승인(EUA)이란 제도를 통해 급히 필요한 진단기기, 치료기 등의 규제를 푼다. 이들 제품은 FDA의 지침에 따라서 신청하고, 특별한 흠이 없으면 FDA에 통지한 곳에 판매할 수가 있다. EUA 상품의 경우 FDA 승인 못지않게 세계 각국의 기업들과 눈에 안 보이는 영업 전쟁을 벌여야 한다. 외교부의 신중치 못한 홍보가 전쟁 중인 기업들을 맥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FDA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2019 진단 검사 정책 법령’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일으킨 보건 위기 상황에서 진단키트의 표본 검사가 개발돼 유통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표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는 다급한 상황에서 기존 절차대로 꼼꼼하게 진단키트에 대해 따지지 않고 사용케 하겠지만, ‘정식 상품’ 대신 ‘표본 검사’로 규정함으로써 나중에 따질 여지를 두겠다는 뜻이다.

세계 각국의 진단 키트 생산업체가 미국에서 자사 제품을 팔고 싶으면, FDA의 지침과 안내에 따라서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하면 된다. 생산업체는 FDA가 제안한 최소한의 기준에 따라 상품을 검증해야 한다. 물론, FDA는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밝혔지만, 생산업체로서는 녹록치 않을 수 있다.

회사는 기본적 검증이 끝나면 FDA에 회사에 대한 정보와 함께 검증 데이터를 대표 이름, 주소, 판매처 등 기본사항과 함께 ‘통지’한다. 외교부는 FDA ‘사전 승인’에 따라 수출계약이 가능했다고 하는데, 해외 공급처가 있어야 긴급사용승인이라도 난다. 회사는 이와 함께 자사 홈페이지에 검사 지침서를 제공하고 진단 키트의 성분 특성에 대한 데이터를 공개해서 이를 사용하려는 연구자나 의료진의 ‘투명성 검증’을 받는다.

현재 FDA는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한 회사 또는 연구소의 이름들을 소개하고 있다, 자기들은 이 제품을 검토(Review)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면서. FDA의 관련 페이지엔 유전자 증폭 검사형의 진단키트는 우리나라의 제노믹트릭, 오상 헬스케어를 비롯해서 8개 회사가 신청 리스트에 있으며, 항체 검사는 젠바디, 수젠텍 등 100여 개 회사가 등록돼 있다. 신청 준비절차에 있는 회사까지 합치면 300곳이 넘는다.

FDA는 키트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적용대상과 사용 범위 등을 명기한 ‘긴급사용승인서’를 최고 과학자(Chief Scientist) 명의로 발급한다. 물론, 실험 데이터나 라벨 등에 문제가 있으면 이를 수정케 하며,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면 상품 유통을 유예한다. 만약 판매하고 있다면 철수를 ‘권고’한다.

미국 FDA도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마찬가지로 법과 제도에 따라 움직인다. 외교부에서 정치적 노력을 했다고, 이런 법 절차가 바뀌지 않는다. 미국 고위층의 명령에 따라서가 아니라, 우리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제품을 개발해서 해외를 공략하는 절차로 FDA에 온 것이다.

외교부 고위 공무원이 어떤 의도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총선을 앞두고 과잉충성이 아니기를 빈다. 정부 여당에서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까지 생존의 벼랑길에서 악전고투하다가, 국내 방역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세계 거대 기업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대한민국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크나큰 결례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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