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베닥] ‘수술 없는 세상’ 꿈꾸는 어깨 수술 대가

⑫어깨질환 베스트닥터 분당서울대병원 오주한 교수

어깨가 무겁다 못해 짓눌리다시피 했다. 2003년 5월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있던 서울대 의대 정형외과 오주한 교수(54)는 새로 개원하는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기며 자신의 세부전공이었던 종양에다가 어깨질환까지 맡게 됐다. 무거워진 어깨에 설상가상이랄까, 다른 병원의 ‘어깨 고수들’에게 배우려고 했지만, 스승 정문상 교수는 “그러면 그 의사의 틀에 갇혀버리니 혼자 공부해서 환자를 보라”고 엄명을 내렸다. 전공의 때부터 어깨 환자를 보기는 했지만, 전담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데…, 천근만근 부담이 어깨를 짓눌렀다.

오 교수는 밤마다 교재와 CD를 보며 독학하면서 환자를 진료해야만 했다. 해외의 대학이나 의료기기 회사에서 해부용 시신(Cadaver) 대상의 워크숍이 열리면 부리나케 달려갔다. 군의관으로 어깨수술 경험을 많이 쌓은 후배 김진삼을 전임의로 ‘모셔와’ 어깨 환자들을 함께 수술하면서 최신기법을 익혔다. 그래도 환자들에게 최고의 최신 수술을 못해주는 것 아닌가, 가슴 졸이다 미국 연수 길에 올랐다.

오 교수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어바인 캠퍼스 생역학실험실에서 밤낮 살다시피 하면서 어깨 전용 카데바 300개와 토끼 200여 마리의 어깨를 파고 또 파고들었다. 그는 밤에는 논문작성에 매달려, 회전근개 파열 때 언제 수술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에 대한 연구결과를 비롯해서 10여 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하고 어깨를 펴고 귀국했다.

오 교수는 2010년 귀국 당일에 후배 김세훈 교수를 불러내서 회전근개 봉합술을 하면서 지방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투여하는 치료법에 대한 연구를 하기로 합의했다. 연구 결과는 2년 뒤 《골관절수술지(JBIS)》에 발표했고, 오 교수 팀은 미국정형외과학회와 미국견주관절학회가 공동 수여하는 ‘니어 어워드(Neer Award)’를 수상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였고 국내 의사로서는 최초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성과였다. 오 교수는 현재 이 치료법을 발전시켜, 지방 줄기세포를 찐득찐득한 젤처럼 만들어, 수술 때 뼈와 힘줄 사이 끼워 넣어 뼈와 힘줄이 잘 붙도록 만드는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그는 또 만성 회전근개 파열에서 고콜레스테롤혈증의 영향에 대한 연구로 2016년 미국정형외과연구학회에서 국내 의사 최초로 ‘젊은 의학자상’을 받기도 했다.

오 교수는 지난달 엄격한 심사기준을 거쳐 대한의학한림원 정회원으로 선출됐다. 한림원은 “지금까지 어깨관절 환자 5200여명에게 관절경 수술, 500여명에게 인공관절수술, 1000여명에게 골절수술을 하면서 어깨 치료 분야에서 탁월한 진료 및 연구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관절 내시경수술에서 관절 내 연골을 매듭짓지 않고 봉합하는 ‘무매듭 봉합법’을 개발했다. 이용걸, 박진영, 김양수, 신상진, 유재철 교수 등과 함께 국산 어깨인공관절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가급적 수술하지 않고 낫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신념에 따라 치료물질을 개발하고, 어깨 운동요법 및 스트레칭 동영상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오 교수는 새 치료법 개발을 위해서 토끼들과 함께 살다시피 하고 있다. 그는 미국 연수에서 복귀하자마자 병원에서 ‘토끼 만성 회전근개 파열 모델’을 만들어 토끼 500여 마리를 대상으로 수술과 자가혈소판풍부혈장(PRP), 줄기세포 치료 등의 효과를 연구해 왔다. 2017년 해외 논문에서 부갑상선호르몬이 골다공증 환자의 뼈를 강화하는 것을 입증한 토끼실험 결과를 발견, 이를 사람에게 적용하는 치료법을 개발해서 2019년 《관절경(Arthroscopy)》에 발표했다. 당시에는 배에다 주사를 놓았지만 3D 프린터로 만든 어깨 조직 모양의 종이에 호르몬이 스며들도록 치료법을 개선시켜 토끼실험을 하고 있다. 이 치료법이 완성되면 난치성 회전근개 파열 환자의 수술 뒤 뼈와 힘줄이 붙는 비율이 획기적으로 올라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오 교수는 또 바이오기업 테고사이언스와 공동으로 어깨 회전근개 수술 때 엉덩이 피부세포를 투여하는 치료법을 개발했고, 지난 2월 미국 피닉스에서 열린 정형외과연구학회(ORS)에서 이 치료제가 힘줄을 재생하는 효과가 있다는 토끼실험 결과를 발표, 호평을 받았다.

오 교수는 초등학교 때 사슬알균 감염 뒤 면역계가 피부, 관절, 심장 등을 공격하는 ‘류머티스열’에 걸렸을 때 아버지처럼 포근하게 자신을 돌봐준 의사에 감동받아 이후 ‘장래 희망직업’에 의사를 써왔다. 초등학교 때 붕어 해부도 겁냈기 때문에 의대에 들어와선 정신건강의학과나 내과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인턴 때 비뇨기과에서 피를 보고도 ‘울렁증’이 생기지 않자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겨우 병원에 온 환자들이 수술을 받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에 매료돼 정형외과에 지원했다.

오 교수는 성상철 전 서울대병원장에게서 무릎 수술을 배우고 관절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군의관 근무 뒤 전임의로 복귀할 무렵 고(故) 이상훈 교수로부터 “종양질환을 맡아보지 않겠나?”라는 제안을 받았다.

“뼈와 연부조직의 종양 치료는 정형외과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직을 절제하고 재건하기위해 해부·병리학에 대해 넓고 깊은 공부를 한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됐지요. 이 길을 이끌어주신 스승 이상훈 교수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종양을 계속 담당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깨 질환의 치료와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김진삼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의술을 펼치다 지병으로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초중고에 대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나온 후배이지만 제가 처음 어깨 환자를 볼 때 스승과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두 고인을 생각하면 게을러질 수가 없습니다.”

오 교수의 노력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서 2017년 어깨 관절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 JSES(Journal of Shoulder and Elbow Surgery)의 기초과학 편집장으로 위촉됐다. 그는 또 스포츠의학에서도 권위를 인정받아 2019년 세계 최고 권위의 스포츠의학 학술지인 미국스포츠의학회지(American Journal of Sports Medicine) 편집이사를 맡았다.

대학교 때 테니스, 농구 동아리 회원으로 ‘운동권’이었던 오 교수는 2012년 LG트윈스의 팀 닥터가 됐다. 자신이 응원한 두산 베어스에 먼저 제안했지만, 두산이 차일피일할 때, LG 김용일 코치와 궁합이 맞아 ‘서울 라이벌 팀’의 주치의가 된 것. 그는 후배, 제자 의사 10여명과 ‘의료진’을 구성, 순번을 정해 한 달에 한 번 야구장에서 선수와 관중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구내식당 저녁 식권과 주차권만 받고.

오 교수는 박진영 네오정형외과 원장, 주의탁 주정형외과 원장 등과 함께 팀닥터 협의회를 출범시켰으며 한국프로야구협회(KBO)에서 의무위원회 창립을 주도해서 초대 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위원회에서는 선수들의 영양, 도핑, 시차 등에 대한 교육과 무더위, 미세먼지, 전염병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 코로나19 위기에 경기를 어떻게 열어야 할지에 대한 자문도 위원회의 몫이다.

오 교수는 “야구를 좋아해서 좋은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선수 생활을 오래 하는데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대한스키협회 의무위원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때 3주 동안 크로스컨트리 팀의 경기력을 챙겼고, 대한수영연맹 의무과학훈련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아직도 많은 스포츠인들이 의료에 대해 부상 치료만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방과 경기력 향상 등 종합적으로 선수를 관리해야 하지요. 이를 위해 관련 데이터를 구축하고 선수와 지도자들을 교육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의료가 뒷받침된 스포츠가 국민의 사기를 올리는 것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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