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베닥] 밤새 100번 발작한 아이, 수술로 ‘도담도담’

⑨소아신경외과질환 김동석 교수

 

수민이(가명) 엄마는 수술실 앞에서 기도했다. 지난 6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예쁘기만 한 갓난 딸이 움찔움찔 이상하다며 병원에 가보라던 친정아버지의 첫 마디, 한쪽 뇌가 너무 크게 나온 뇌 영상사진, 인터넷에서 ‘이 경우 한쪽 뇌를 다 잘라내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발작은 멈추지만 한쪽 몸이 마비된다’는 정보를 찾아보면서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 병원을 옮기고 아기에게 약을 먹이는 싸움을 벌이던 때, 몇 년 동안 불안감과 안도감이 섞인 삶을 살다가 약이 듣지 않아 발작이 되풀이될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

수민이는 주로 밤에 발작을 해서 하룻밤에 100번 이상 발작하고 까무러치기도 했다. 숨을 안 쉬기도 해서 가슴이 철렁거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수술대에 올랐다. 수민이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외과 김동석 교수(58)로부터 ‘기능적대뇌반구분리술’을 받았다. 뇌에서 발작을 일으키는 전기 에너지가 지나가는 통로를 일부 절제하는 수술이다.

수민이 엄마는 딸의 수술 뒤, 지난 6개월을 생각하면 매사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자신도 믿기 힘들게도 수민의 발작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이전에는 밤에 사투를 벌인 탓에 눈이 늘 풀려있었지만, 지금은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난다. 또 단잠을 자게 되면서 100㎝가 겨우 넘고 20㎏이 안됐지만, 키는 10㎝ 이상 크고, 몸무게도 10㎏ 이상 늘었다.

수민이의 주치의 김동석 교수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뿐 아니라 모야모야병, 뇌종양, 수두증, 이분척추증 등 한 해 500여 명의 어린이를 수술해서 부모의 아픔을 달래주는 의사다. 소아 뇌신경외과는 범위도 넓은데다가 100% 완치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기에, 내색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아이 부모와 기쁨과 아픔을 같이 하면서 세계적 성과를 거둬왔다.

특히 뇌전증 어린이는 세계 최다인, 900명 이상을 수술했다. 수민이 가족에게 새 삶을 선물한 기능적대뇌반구분리술은 프랑스 의사의 가설을 바탕으로 자신이 개발한 수술법으로 100여명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그는 또 세계 최초로 난치성 뇌전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규명하고, 치료법의 동물실험에 성공하기도 했다. 소아신경외과, 비뇨기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재활의학과, 소아외과 의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분척추증클리닉의 치료성과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김 교수는 고교 때 교회의 봉사활동을 하면서 ‘의료선교’를 꿈꿨다. 주말마다 대구 수성보육원에서 네 살배기 고아의 ‘일일아빠’가 돼 봉사의 보람을 온몸으로 느꼈지만, 당시에는 아기 수 천 명의 ‘새 아빠’ 노릇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연세대 의대에 입학해서 원하던 대로 의료봉사활동을 했다. 대학생 연합 봉사동아리 생명경외클럽(VVC·Veneratio Vitae Club)에 가입해 주말마다 서울 중구와 노원구 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의료 봉사활동을 했고, 연세대 의대·치대·간호대 학생의 봉사동아리 회원으로 강원 평창의 맹추위, 경북 봉화의 혹서 속에서 주민들의 건강을 챙겼다.

김 교수는 문학 동아리에서도 활동하며 사람의 마음을 보살피는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졸업반 실습에서 드라마틱하게 환자를 회복시키는 신경외과에 마음을 빼앗겼다. 세브란스 신경외과에는 이규창, 정상섭, 김영수, 최중언 등 당대의 거장들이 있다는 것도 매력이었다.

지금도 인턴·전공의 생활은 힘들지만 1980년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김 교수는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고달픈 시간을 보냈다. 몸은 힘들었지만, 보람으로 이겨냈다.

그는 인턴 말기부터 신경외과에 배치됐지만 전공의 3명 중 1명이 중간에 그만 두고, 1명은 개원한지 얼마 안 된 영동세브란스병원(현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가는 바람에 이전에 3명이 하던 일을 혼자 도맡아 해야만 했다.

세브란스병원은 1961년 국내 처음으로 신경외과가 출범했고, 스타 의사들이 포진해서 전국에서 환자가 물밀 듯 몰려왔다. 교수들의 수술을 준비하고 보조하며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밤에도 응급환자가 끊이지 않았다. 김 교수는 6개월 동안 한 번도 집에 가지 못했고, 여동생의 결혼식에도 못 갔다. 날밤을 새는 것은 비일비재했다. 덕분에 잠시라도 짬이 나면 어떤 공간에서도 잘 수 있었고, 걸어가면서 자는 ‘신공(神功)’을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훌륭한 스승들 덕분에 청소년 때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뇌졸중학회 교과서에 ‘뇌동맥류 수술에서 세계 최고 대가’로 소개된 이규창 교수로부터 환자를 철저하게 진료하는 자세를, 컴퓨터 좌표를 계산해서 정밀하게 뇌를 수술하는 ‘뇌정위기능수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정상섭 교수에게서 온 마음을 다해서 환자를 대하는 법을 배웠다.

김 교수는 전공의를 마치고, 스태프가 없던 최중언 교수의 문하로 들어갔다. 국제소아신경외과학회 회장을 지낸 세계적 의학자였던 스승은 제자를 하나부터 열까지 챙겼다. 아버지, 큰형과도 같은 스승이었다. 국제학회 발표 때 영어발음에서부터, 발표 자료의 글자 색깔까지 상의해줬고, 제자의 손을 이끌고 각국의 거장들을 일일이 소개해줬다.

스승은 국제학회에서 수두증 환자에 대한 뇌 내시경 수술을 보고 와서 국내 도입했다. 최 교수는 국내에 수술 장비가 없을 때 모양은 다르지만 기능은 얼추 비슷한 방광경으로 첫 뇌수술에 성공했다. 1년 뒤 수술 장비가 들어오자 제자는 부지런히 환자들을 살려냈다. 두 의사는 영문판 《뇌 내시경 교과서》를 펴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1997년 전임강사를 건너뛰어 조교수가 됐다. 초기에는 뇌종양 환자를 비롯한 성인 환자도 수술했지만 뇌전증, 모야모야병 등 소아 질환으로 축을 옮겨갔다. 그는 뇌성마비 환자에게 ‘선택적 후근 절제술’을 도입해서 아기들이 좀 더 자연스럽게 걷도록 도왔다. 좀 더 효과적이고 부작용이 적은 보톡스 요법이 도입되기 전까지 202명의 아기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김 교수는 2001년 뇌종양 가운데 가장 악독한 뇌간교종 어린이 2명에게 유전자 치료를 시도해서 ‘반짝 효과’를 보자, 이 분야 대가 제임스 루트카 교수가 있는 캐나다 토론토대학교로 연수를 갔다. 암세포의 분열과 관련 있는 셉틴 단백질에 대한 연구로 《신경교세포(Glia)》에 제1저자로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2년 동안 치열한 연구를 마치고 국내 귀국했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 과제에서 유전자 분야는 찾기 힘들었다. ‘황우석 광풍’이 불 때, 모든 연구비는 줄기세포에만 몰려있었다.

그는 대신 뇌전증 수술에 집중하다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 신경과학과 이정호 박사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대뇌반구거대증이라는 희귀병이 유전자 1개의 돌연변이로 생긴다는 것을 밝혀내 《네이처》에 발표했고 카이스트 교수로 올 예정인데 후속 연구를 함께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좀 더 환자가 많지만 영상으로는 찾기 힘든 병에 대해서 공동연구하자고 역제안했고, 둘은 의기투합했다. 두 교수는 세포의 성장, 이동, 증식에 관여하는 mTOR 유전자가 소아 뇌전증의 1/3을 차지하는 대뇌피질이형성증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둘은 mTOR억제제가 뛰어난 치료효과를 거둔다는 사실을 동물실험을 통해 입증해서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했다. 두 교수 팀은 난치성 뇌전증을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더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서 뇌병리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악타 뉴로패쏠로지카'(Acta Neuropathologica)’에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프랑스 로스차일드재단병원 대뇌반구거대증 환자의 한쪽 뇌를 다 잘라내는 대신 발작이 일어나는 신호 통로를 막으면 된다는 이론을 발표하자, 이 수술을 현실로 만들었다. 전공의 때부터 온갖 종류의 수술을 시행하며 고민한 결과, 넓고 깊은 뇌 해부학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존 수술법은 의사가 하루 종일 잠을 자지 않고 수술해도 한쪽 팔다리가 마비되지만, 새 수술법은 2~3시간 걸려 수술하면 환자는 발작은 거의 사라지고 다리의 90%, 팔의 60~70%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새 차원의 수술법이 탄생한 것이다.

김 교수는 심각한 난치성 뇌전증은 수술을 잘 해도 100% 정상적이 되기 힘든데다가, 후유증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매사가 조심스럽다. 아기의 부모에게 내색을 않고 기뻐할 때도, 아파할 때가 많다.

최근 뇌에서 발작을 일으키는 신경과 운동신경이 붙어있는 세 살배기 아기의 엄마에게 “발작을 없애려면 한쪽 팔을 못쓴다”고 말해야만 했다. 엄마는 발작과 마비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아기의 발작이 너무 심해서 수술을 원했다. 1, 2차에 나눠 수술한 결과 발작은 완전히 사라졌고, 손이 조금 불편한 외에 팔은 제대로 움직였다. 한 동안, 아기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의사가 되길 잘했다고 느꼈다.

김 교수는 진료실 바깥에서 기다리는 환자들 때문에 때때로 보호자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오래 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최선의 수술과 연구로 최고의 치료성과를 내는 것이 결국은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올 초 안식년 6개월 휴가를 받아 연구에만 몰두하려고 했지만, 전국에서 수술날짜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는 부모들을 생각하며 두 달 만에 병원에 와야만 했다. 그는 아기들에게 새 삶을 선물하는 기회를 선물 받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수술실로 들어선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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