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중 알게 된 환자의 범죄 사실…신고해도 될까?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사는 직업의 특성상 환자의 매우 내밀한 사생활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가 환자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비밀보장의 의무’는 의료윤리의 신성한 의무이다. 하지만 진료과정에서 과거에 살인을 청부 받아 살인한 적이 있다거나 청소년을 성폭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 환자를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 이와 달리 진료과정에서 환자가 살인이나 성폭행을 할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 이런 상황은 비밀유지의무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밀유지의무는 형법 제317조에서 ‘의사가 직무를 처리하는데 얻은 타인의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의료법 제19조에서는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정보를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67조에서는 ‘이를 위반하는 경우 3년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의사의 비밀유지의무가 논란이 된 사건이 국내와 외국에서 있었는데 당시 법원판결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개그우먼 L씨는 방송에서 운동과 식이요법만으로 30kg이상의 체중을 감량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L씨는 다이어트 비결이라면서 비디오 등을 만들어 판매했다. 이에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인 K씨가 사실 L씨는 다이어트를 통한 것이 아니라 전신지방흡입 수술을 여러 번 받아 체중감량에 성공한 것이라고 언론에 폭로한 것. 개그우먼 L씨는 성형외과 의사 K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성형외과 의사 K는 개그우먼 L씨가 수술 사실을 숨기고 다이어트 비디오를 3만장이나 판 것은 소비자를 우롱한 일종의 사기행각이라 주장했다. 또 자신의 행위는 유명인사의 언동이 부도덕적인 행위임을 알려 시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사기를 당하지 않게 하는 공익적인 측면이 있다면서 이는 의사의 비밀유지위반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K가 주장한 공익은 의사가 관여할 바가 아니고, 개개의 구체적 환자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게 의사의 의무라는 취지에서,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할 수 없음에도 피고들은 이를 공개, 환자의 비밀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L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가수 S씨는 복강경으로 위장관 유착박리수술을 받은 후 복통을 심한 호소했다. 장기 복막 전체에 염증이 퍼진 범발성 복막염이었다. 그러나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이를 진단하지 못했다. 결국 S씨는 합병증인 심낭압전과 이에 따른 허혈성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집도의는 자신에 대한 책임론이 뒤따르자 국내 의사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한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의료계 해명자료’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과 관련된 수술과 과거수술이력, 관련사진과 같은 망인의 개인정보를 임의로 게시했다. 유족들은 이 의사를 법원에 고소하였고 법원은 당사자가 사망하였다고 하더라도 의료인은 망인의 의료정보와 같은 비밀스러운 생활영역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유죄를 인정했다.

1976년 미국의 ‘테라소프 판결’은 의료인의 비밀유지의무가 갖는 딜레마를 더욱 명백하게 보여준다. 캘리포니아 대학병원의 한 임상병리사는 병원에서 치료 중이던 한 남학생으로부터 “변심한 애인 테라소프를 죽이겠다.” 는 말을 듣고 이를 병원에 보고했다. 병원은 이 보고를 묵살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남학생을 퇴원시켰고 결국 테라소프는 이 남성에 의해 살해되었다. 가족들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어떤 사람에게 사망과 같은 중대한 신체적 손상을 가져올 수 있는 경우와 같이 중요한 공익상의 이유가 있다면 의사는 환자의 비밀을 공개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하며 병원에 배상을 명령했다. 이 판결은 ‘특정한 타인에게 위험이 발생할 합리적 예견 가능성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의료인의 환자에 대한 비밀유지의무의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환자의 동의없이 비밀을 공개할 수 있는 경우는 법원의 명령이나 에이즈와 같은 법정전염병 환자 그리고 최근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같은 전염병처럼 법률상 신고의무가 부가된 때에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당국에만 신고의무가 있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외에도 제3자의 건강과 안전에 직접적으로 피해가 갈 것이 명확한 경우와 같이 공익적 경우에 한하여만 비밀유지의무 위반의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 위의 사례는 의료인의 경우 진료 중 알게 된 과거의 사실에 대하여는 엄격한 비밀유지의무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요컨대 진료과정에서 환자가 살인이나 성폭행을 할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신고를 했다면 이는 3자의 건강과 안전에 직접적으로 피해가 갈 것이 명백한 공익상의 이유’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진료과정에서 과거에 살인을 청부받아 살인한 적이 있다거나 청소년을 성폭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는 과거의 사실로서 제3자의 건강과 안전에 직접적으로 피해가 갈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비밀유지의무를 지켜야 할 것이다. 의사는 노숙자든, 전직 대통령이든, 대기업오너 등 그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진료상 비밀인 환자의 개인의료정보를 지켜주어야 한다. 의료인은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는 의무가 우선이 아닌 개개인의 구체적 환자에 대한 비밀보호라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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