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두 소아마비 박멸 일등공신 한국인 ‘명예 추장들’

[유승흠의 한국의료실록] ⑤세계 험지에서 전염병과 싸운 의사들

필리핀 마닐라의 WHO WPRO (서태평양지역 사무소)

1960년대 대한민국 의사들은 병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일군의 의사들은 보건사회부와 지역 사회에서 의료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전력했으며, 일부는 세계보건기구(WHO) 의무관으로 진출해서 세계의 험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전염병 퇴치의 성과를 올렸다. 한국 의사들은 지구촌 천연두, 소아마비 등의 박멸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일부는 명예 추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세계로 진출한 의사들은 보사부에서 국장으로 근무한 뒤 편안한 삶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송형래, 윤석우, 주인호), 서태평양(한상태, 한응수) 등으로 진출해 전염병과 싸웠다.

주인호 박사는 1919년에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나서 1942년에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였다. 광복이 되자 록펠러재단에서 후원하는 10명의 공중보건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시건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를 취득하고 귀국해 군정청 보건후생부 국장으로 일했다.

그는 서울여자의대(현 고려대 의대)에서 예방의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69년부터 아프리카지역 WHO 의무관으로 15년을 활동하면서 천연두 박멸을 비롯한 전염병 방역사업에 혼신을 다했다. 부인과 아들 둘, 딸 셋이 의사로서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일하고 있다. 차녀 주혜란은 1975년 우석대 의대(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보건소장을 거쳐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응수 박사는 1923년에 서울에서 태어나서 1945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미생물학에 관심이 많아서 졸업 후 발진티푸스 백신 개발에 참여하고, 결핵균 관련 논문도 썼다. WHO 장학금으로 도미하여 미생물학을 공무하고 귀국해 보사부 과장과 보건국장, 그리고 국립중앙방역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WHO 의무관으로 서사모아에서 결핵퇴치 사업을 펼쳤는데, ‘명예추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미얀마에서 수석의무관으로 근무했고 스리랑카에서도 일했다. 49세에 도미하여 버클리대에서 보건학 석사를 받은 뒤, WHO 방글라데시에 부임했는데, 국제적으로 최후의 천연두 환자를 본 의무관으로 기록됐다. 퇴임 후 198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교포들의 건강을 위한 한인건강정보센터(KHEIR)를 설립해 초대이사장이 됐으며, 양로보건센터를 설립하는 등 지역 한인사회를 위하여 보건의료서비스를 열정적으로 펼쳤다.

윤석우 박사는 1926년에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1948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농촌보건의 선구자 이영춘 박사의 권유로 전북 개정에 있는 농촌위생연구소에서 일했다. 1953년부터는 보사부에서 전국적인 결핵관리 사업의 기획과 요원 훈련을 담당했다. 1956년에 미시건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를 받고 귀국해 만성병과 과장으로 결핵, 나병, 성병 등 만성병관리를 담당하였다. 의정국장, 보건국장, 소록도병원장을 역임 후 1965년에 WHO 의무관으로 아프리카로 진출했고 19년 동안 개발도상국가 보건사업 향상을 위하여 크게 기여했다. 귀국 후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으로 일하면서 아시아태평양의사협회(CMAAO), 세계의사협회(WMA) 등에서 우리나라의 의학의 위상을 높이는 국제협력에 기여하였다.

한상태 박사는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WHO 장학생으로 미국 미네소타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아버지가 영어 교수여서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잘 했으며 서울대 의대 재학 중이었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UN사령부 의무관들의 통역을 맡으며 발군의 영어실력을 발휘했다. 함경 함흥의 보건사업부에서 통역을 맡다가 ‘흥남 철수’때 내려와 거제 피난수용소에서 예방주사 접종, DDT 살포 등을 맡았다. 1960년부터 당시 보사부 차관이었던 고모부 정진욱의 권유로 보사부에 들어가 보건국장, 의정국장을 역임했다. 국립병원, 시도립병원, 보건소를 연결하는 의료망의 체계화에 기여했으며 현재의 1, 2, 3 의료체계를 제시했다. 한센병(나병) 음성 환자의 복지 및 재활에 대한 기안을 했으며 이는 세계적 인권존중사업으로 평가받는다.

한 박사는 1967년에 WHO 서태평양지역으로 진출하여 서사모아 의무관을 맡았는데, 그곳의 풍토병 상피병 퇴치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쳐‘명예추장’으로 추대된다. 1970년 한국인 최초로 WHO 정식 직원이 됐고, 뛰어난 업무성과를 보여 1989년부터 임기 5년의 WPRO 사무처장을 연임했다. 사무처장은 회원국의 선거에 의해 선임되며 조국이 UN에 가입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선거에서 압도적지지 속에서 당선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서태평양 지역에서 소아마비를 박멸하는 세계 보건사에 기록될,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 한 박사는 고(故) 이종욱 WHO 사무총장, 신영수 전 WPRO 사무처장 등 수많은 보건 전문가들에게 방향을 제시한 등불과도 같은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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