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전공의 선발 막는 대학병원 ‘어레인지 관행’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sabthai / shutterstock]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교수가 자신의 딸을 전공의로 ‘무혈입성(無血入城)’시키려 한다는 대자보가 붙어 파문이 일고 있다. 대자보에 따르면 이 대학병원 교수의 딸이 자신의 과에 전공의로 지원할 때 다른 인턴들이 함께 지원하지 못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이렇게 전공의 선발의 절차적 공정성이 가장 위협받는 원인은 무엇일까? 대자보의 사실이 맞는다면, 교수의 윤리의식 부재가 큰 원인이겠지만, 의국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사전 어레인지(arrange) 관행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분명해 보인다.

전공의 선발은 1년에 한 번 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탈락하면 1년을 쉬어야 한다. 또 인기과들은 많은 지원자가 있는 반면, 비인기과는 전공의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어레인지 관행이 태어났다.

공식적인 공개모집 이전에 해당과 교수들이 전공의 지원자를 면접하거나 평판, 학교성적을 점검해 합격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와 그렇지 않은 이로 나누어 불합격 가능성이 큰 지원자들에게 미리 알려줘 다른 과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른바 인기과에서 시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경쟁을 없애는 요소로 작용해 공식 선발 때 지원자가 대체로 1:1로 맞춰진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대학병원 내부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레인지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해당 과 교수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이 과정에서 학교성적, 인턴성적이나 지필시험 등의 객관적인 자료들이 평가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의국에서 실질적인 힘을 가진 교수의 입김이나 편견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지원자의 이른바 ‘빽’이 작용하거나 여성 배제 등 차별적 요소들이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지원자가 이를 무릅쓰고 지원하더라도 면접에서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며 만약 선발이 되더라도 전공의 과정이라는 도제과정의 특성상 교수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사전 어레인지 관행에서 배제당한 지원자가 그 과의 공개모집에 지원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이런 관행은 선발과정에서 필수적인 경쟁을 없앤다. 실력과 상관없이 교수자녀, 재단과 관련된 사람이나 고위 공무원이나 대기업 오너 자녀들이 남들이 원하는 과에 들어 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실제적으로 봐왔다. 이런 어레인지 관행이 점차 사실상의 관습법으로 굳어져 교수의 자녀가 지원하는 과는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이런 악습을 바꿔야 할 때이다. 최근 국회도 이런 채용상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법령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용정책기본법에서는 근로자를 모집이나 채용할 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학력, 출신학교, 혼인이나 임신,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균등한 취업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사업주의 의무로 부과하고 있다.

2014년에는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소위 채용절차법)’이 제정돼 기업의 채용 때 일정한 절차적 규제를 하기 시작했다. 2018년 전후부터 채용의 실제적·절차적 공정성을 위해 불공정채용이 일어나면 즉각 취소하거나, 채용심사 점수와 순위를 공개하게 강제하는 등 여러 개정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정부도 강한 단속의지를 갖고 기업의 채용과 관련된 비리를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수련병원의 어레인지 관행은 공식적 채용절차 전에 이루어지는 비공식절차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해당과는 단지 의견을 이야기했을 뿐이라면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현재의 전공의 선발에서 사용되는 학교성적, 인턴성적, 면접성적, 그리고 지필시험이 정말로 지원자의 능력을 정확히 반영하는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인턴성적의 경우, 지원자와 친한 선배가 채점을 하면 대충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주고, 타 학교 출신이면 아무리 노력해도 최저점을 주는 어이없는 경우도 적지 않게 봐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레인지 관행이 공정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병원도 현재의 어레인지 관행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하여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런 어레인지 관행을 금지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레인지가 암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볼 때 쉽지 않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레인지를 공식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식화과정을 통해 지원자의 합격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공식적 기록으로 남겨두면 차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근거로 해당 의국이나 교수를 문책하거나 징계할 수 있다. 이런 징계가능성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없애거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현 시대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절차적 공정성이다. 특히 사립대학병원은 비영리기관이지만 민간기업의 속성도 갖고 있기에 채용의 자유를 보장받는다고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전공의를 선발할 때 절차적 공정성에 더욱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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