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주 태아 낙태 중 살해…살인죄 처벌 받을까?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Lightspring /shutterstock]
최근 60대 산부인과 의사가 만삭인 임신부의 태아를 낙태했고, 이 과정에서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는 데도 숨지게 했다는 언론 보도가 누리꾼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의사는 “고의로 숨지게 할 의도가 없었다”면서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는 사실에 대해서 부인하고 있지만,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낙태에 대한 논란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선 유명한 ‘로 대 웨이드’라는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낙태가 허용됐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임신중절 클리닉에 지원하는 예산을 삭감하고 보수적인 대법관을 임명하는 등 낙태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공화당 우세지역에서는 임신중절 클리닉 숫자가 두드러지게 감소하고 있다.

가톨릭교 국가인 아일랜드는 낙태를 불허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2년 한 30대 여성이 태아가 생존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고 낙태수술을 받으려 하다가 병원에서 거부당하고 결국 수술을 늦게 받아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 이후 국민투표를 통해 임신 12주 이내 낙태죄를 폐지했다. 아르헨티나도 최근 11세 소녀가 할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 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소녀는 낙태를 원했지만 당국은 낙태허가를 미뤘고 의사들은 낙태를 거부했다. 결국 소녀는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해 낙태한 경우 처벌하는 ‘자기 낙태죄’와 함께 임신한 여성의 부탁을 받아 낙태를 시행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 낙태죄’ 조항에 대하여 헌법 불합치 결정과 함께 국회에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법을 개정하도록 주문했다(헌법재판소 2019.4.11. 2017헌바127 결정).

이 판결에서 헌재는 모든 낙태를 문제 삼은 것은 아니고,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을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임신 22주 내외로 보고, 이런 임신초기 낙태까지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 것이다.

낙태죄는 결국 임신부의 임신유지와 출산여부를 결정할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보호라는 공익이 충돌하는 대표적 영역이다. 헌재의 결정은 일부 낙태를 허용하는 것 외에 많은 논쟁거리를 남겨두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금지되고 있지만 외국에서 허용되고 있는, 알약으로 임신초기에 유산을 유도하는 유산유도제를 허용해야 하는가부터 유산을 임신 시작부터 언제까지, 어떤 조건으로 허용해야 하는가 등은 여전한 논란이다. 이때 의사의 양심에 따른 진료거부권을 인정해야 할지도 깊이 검토해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사건에서 낙태 당시 임신부는 임신 34주로서 제왕절개로 낙태한 것이 일반적이지 않고, 낙태 당시 태아가 살아있는지, 살아있었다면 이 태아에 대하여 어떤 조치를 취하였는지 여부가 법적 판단에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의사는 검찰에서 기소한 대로 살인죄로 처벌을 받을 것인가? 유사사건이 있어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05년 산부인과 의사 A는 28주된 태아를 낙태시켜 달라는 임신부의 요구를 받고, 유도분만 방식의 낙태시술을 시행했다. 문제는 낙태한 아이가 산 채로 나오자 이 산부인과 의사 A는 미리 준비한 염화칼륨을 신생아의 가슴에 주입해 숨지게 해 문제가 됐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낙태죄는 태아를 인위적으로 임신부에게서 꺼내거나 임부의 몸에 있을 때 살해함으로써 성립하기 때문에 태어난 신생아에게 염화칼륨을 주입한 것은 단순 낙태행위로 볼 수 없고, 신생아가 정상적으로 생존할 확률이 적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의료행위 없이 염화칼륨을 주입해 사망에 이르게 행위는 신생아를 살해하려는 범행의도가 있다고 판단하여 산부인과 의사 A에게 유죄를 선고하였고,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2005.4.15. 선고 2003도2780 판결)

이유가 어쨌던 간에 임신 34주정도의 태아라면 태아의 몸무게가 2.5kg정도이고 감각체계가 완성된 상태로 독자적으로 생존이 가능할 수 있는 시점이므로 낙태를 시행한 산부인과 의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임부가 미혼모이고 강간으로 아기를 임신했고,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안 임신중기부터 낙태할 병원을 찾아 다녔지만 모두 거부당해 결국 34주가 될 때까지 찾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선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허락을 받아 낙태를 했다면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성폭행 당한 10대 여성이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여건도 안되는데…

또 낙태 당시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일반적인 방식으로 낙태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했다면, 그래도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로 인한 처벌을 받아야 할까?

그리고 이런 낙태를 요구한 여성이나 가족도 비난이나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이렇게 태어난 아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심각한 장애로 단기간 생존도 어렵다면 의사는 어떡해야 하는가?

낙태는 법률과 의료윤리, 그리고 생명윤리가 교묘히 겹치는 매우 어려운 영역이다. 앞으로 법이 빨리, 그리고 바르게 개정돼 이러한 모순적이거나 논란의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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