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넴이 ‘힙합 황제’ 가능했던 까닭

[이성주의 건강편지]

입력 2019.10.17 07:30 입력 2019.10.17 07:30수정 2019.10.17 15:06 조회수 1,836

제 1357호 (2019-10-17일자)

에미넴이 힙합의 황제 될 수 있었던 까닭

생후 6개월 때 부모는 이별했고, 어머니는 마약과 망상에 취해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고 ‘덩치’에게 맞아서 9일간 사경을 헤맸습니다. 래퍼의 꿈을 품은 채 고교를 중퇴하고 자동차 정비, 배관 등의 일을 하면서 밤에는 클럽에서 랩을 불렀지만, 걸핏하면 야유를 받았습니다. 첫 앨범을 냈지만 1,000장 남짓 팔렸습니다. 자신이 일하던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서 우연히 라디오 방송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자신의 음악을 듣고 가슴이 뛰었지만, 진행자는 “이 노래는 쓰레기”라며 낄낄댔습니다.

1972년 오늘(10월 7일) 태어난 ‘힙합의 황제’ 에미넴은 20대 초까지 이처럼 악전고투의 삶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보통사람은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은 천재를 즉시 알아본다”고, 《설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얘기했지요?

에미넴은 25세 때 LA의 라디오방송이 주최한 랩 경연대회에서 2등을 했는데, 귀 밝은 레코드사 직원이 회사에 테이프를 전합니다. 천재 프로듀서 지미 아이오빈이 우연히 듣고, 래퍼 닥터 드레에게 “이거 어때?”하며 들려줍니다. 닥터 드레는 흥분합니다. “빨리 얘 찾아와, 당장!”

흑인의 영역이었던 랩의 세계에서 백인 슈퍼스타는 이렇게 다시 태어납니다. 에미넴은 2000년대 세계에서 음반을 가장 많이 판 가수입니다. 빌보드 앨범 200 차트에 자신의 본격 데뷔 이후 앨범 8장 모두를 동시에 올리는 기록을 세웠고, 비틀스 이후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20위 안에 자신의 노래 4곡을 함께 랭크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래미상을 무려 15차례 받았습니다.

에미넴은 줄거리가 뚜렷한 가사를 만드는 것과 각운(Rhyme)이 어려운 단어들을 발음을 굽혀서 되게 만드는 데 환상적 능력을 펼칩니다. 어릴 적 외롭게 지내며 혼자 노래 가사를 중얼거렸고, 만화를 좋아한 것이 바탕이 됐다고 합니다. 에미넴은 학창 시절 다른 과목은 젬병이었지만, 언어는 잘 했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평소 단어가 떠오르면 메모해서 외우는 습관을 지키고 있지요. 노래를 녹음하는 기간에는 매일 종일 녹음실에 틀어박혀 있을 정도의 노력파이기도 합니다.

에미넴이 본격적으로 래퍼를 꿈꾼 것은 두 살 위 삼촌의 영향을 받아서입니다. 정작 삼촌은 “백인이 래퍼로 성공하는 것은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이라고 말렸습니다. 또 에미넴이 20살 때 자살해버려서 에미넴을 절망에 빠뜨립니다. 에미넴은 당시 며칠 동안 말을 안 하고 한동안 랩의 세계를 떠났지만, 딸이 태어나자 이를 악물고 랩을 불렀습니다. 에미넴과 함께 ‘Love the Way You Lie’를 불렀던 리아나는 말합니다.

“에미넴이 랩을 하게 된 것에 하늘에 감사드립니다. 그가 랩을 하지 않았다면 연쇄살인범이 됐을지도 몰라요. 에미넴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세상의 모든 부조리 그 자체입니다. 랩에 분노를 쏟아붓는 것이요.”

에미넴 같은 천재가 범죄의 나락에 빠지지 않고, 스타로 비상(飛翔)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천재성과 뼈를 깎는 노력이 가장 중요했겠지만, 계기와 기회를 줄 수 있는 환경, 진흙 속의 보물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주위에서 꽃 피지 못한 보물을 알아보고 지원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일까요? 혹시 그런 혜안을 가진 사람을 종지그릇 같은 잣대로 비난하는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누군가의 재능을 알아보고 돕는 사람들이 좀 더 박수를 받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음악]

첫 곡은 에미넴의 ‘Lose Yourself’입니다. 자전적 영화 ‘8 Mile’의 OST로 아카데미상 최우수 오리지널 노래상을 안겨준 노래이지요. 엘튼 존과 함께 부르는 ‘Stan’ 이어집니다. 광팬에 대한 끔찍한 스토리가 절묘하게 녹아난 노래로 에미넴의 스토리텔링 솜씨가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