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간 본 의사,’ “환자들이여, 미안합니다”

[한광협의 간보는 사람의 간편한 세상]

[사진= Natali_ Mis / shutterstock.com]

간 질환 정보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필자는 30여 년 동안 간환자를 진료한 ‘간(肝) 보는 사람’이다. 환자들의 간이 편안(便安)해져 건강을 되찾고 삶이 편안한 ‘간(肝) 편한 세상’을 꿈꿔왔다.

이제 어느덧 정든 병원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스스로 삶을 돌아보고 또다른 새로운 삶을 출발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누구나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떠날 때 설레면서 두렵기 마련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은 앞으로 갈 미래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 같다. 마치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지혜를 얻자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회한에 머물러 있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현재를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현재에 충실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그런 면에서 모멘트 모리(Memento Mori), 즉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뜻이다.

필자는 만성 간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과거에 간을 잘 관리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지만, 앞으로 간과 건강을 잘 관리하면 ‘간편하게’ 살 수 있으니 미래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현재 행복하고 충실하게 살라고 권유해 왔다. 근심보다 조심하면 된다고 했지만, 안타깝게 많은 환자들이 과거 간의 관리를 잘 못한 것을 후회하고, 간 때문에 오래 건강하게 살지 못할 것을 근심하면서 정작 현재 조심하지 않아서 간이 더 나빠지고 삶이 더욱 불편해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봐야만 했다.

오래 진료를 통해 만났던 환자 중 10년, 20년 심지어 30년 넘게 보아 온 환자들도 있다. 좋은 약이 나와서 간 건강이 회복되기도 하지만 그들 중에는 간질환이 진행되고 악화돼 간경변증이나 간암의 합병증으로 자주 입원하거나 아쉽게 생명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주치의로서 그들의 간과 건강을 지켜주지 못한 아쉬움도 많았고 새로운 신약이나 신의료기술 정보를 학회나 제약사를 통해서 얻게 돼 극적으로 간의 건강을 지킨 환자들도 있었다. 의료보험 등재 등의 제도적 보완을 통해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지만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간 불편한 세상’으로 떠나야만 했다.

이제 병원을 떠나 새 삶을 출발해야 하는 시점에서 필자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지금까지는 국내 환자의 간편한 세상을 돕는 데에서 다른 나라 환자의 간편한 세상을 돕는데 미력하나마 역할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꿈꿔 본다. 현 직장에서 은퇴를 해도 지금까지 간만 보던 내가 쓸모가 있는 곳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30년 넘는 세월에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고, 환자들의 간이 병들고 늙어 가듯이 필자 역시 고령화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면 젊어서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인다고 하는데, 젊어서 간 불편한 환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나 공감을 하기보다 비현실적 충고와 질책만 해 간편하게 하지 않고 마음도 불편하게 했던 일들이 후회가 된다. 이제 ‘간 보는 의사의 간이야기’를 통하여 속죄하면서 간편한 세상을 꿈꾸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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