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의사가 되려는 것일까? 땜장이 의사의 국경 없는 도전

드라마 ‘SKY캐슬’은 의과대학 입학을 위해 줄달음치는 자녀와 부모의 얘기를 그렸다. 의대생이 되더라도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린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공 관문을 뚫어야 한다. 매년 대학병원의 전공의 모집 때가 되면 이른바 ‘피성안'(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정재영'(정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은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의사를 지망하는 것일까?  단순히 다른 직종보다 안정적이고 보수도 높기 때문일까?

서울대 의대 졸업, 정형외과 전문의, 정년(만 65세)이 보장된 국립대 교수, 65세 이후에도 고액 연봉 의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 그럼에도 이 의사는 정년이 6년이나 남은 의대 교수직을 스스로 내려 놓았다. 퇴직 후 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아프리카 오지를 누비고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가인 김용민(60세) 교수의 얘기다.

사진=국경없는의사회 홈페이지

그는 늘 ‘의사의 존재 이유’, 그리고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그는 소록도에서 공중보건의 근무를 계기로 이타적인 삶을 지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공도 한센병 환우에게 도움이 되고자 정형외과를 선택했다. 아이티 지진 구호단으로 활동한 이후 ‘자신을 더 필요로 하는 곳’에 가겠다고 결심, 6년 일찍 조기 퇴직을 결심했다.

“우리는 어떤 도전을 앞두었을 때, 가진 것을 잃을까 봐 선뜻 뛰어들지 못합니다. 굳이 귀찮은 수고를 하지 않을 이유를 찾느라 급급하지요.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더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김용민 교수는 “많은 이들이 나의 조기 퇴직 소식을 듣고는 ‘돈 많이 받는 새 직장을 얻으려는 거냐?’부터 ‘빌딩이라도 있나 보군’에 이르기까지, 경제 문제와 결부시켰다”고 했다. 그들은 ‘아이티 다녀온 이후 꼭 하고 싶었던 활동을 위해서’라는, 비경제적 이유로 퇴직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 보였다.

우리 사회에서 의사는 선망하는 직업인 동시에 환자보다 수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직업군으로 비치기도 한다. 수술을 종용하는 병원, 이른바 ‘갑질’을 하는 교수 등도 엄연히 존재한다. 의대 과정의 강의 대부분은 의사가 되기 위한 각 분야의 지식과 술기를 배우는 것이다. 어찌 보면 먹고 살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셈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의사란 어떤 존재인지, 왜 나는 의사가 되려 하고,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반드시 깊이 있는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권위나 명성이 아니라, 환자에게 지금 필요한 도움을 즉시 줄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환자가 의사를 찾아오는 이유, 의사가 환자 앞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했다.

‘의사가 하는 일도 구멍 난 냄비를 잘 때워주는 땜장이 역할과 닮았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의사를 찾아올 일이 없지요. 어딘가 탈이 나야 의사를 찾습니다. 인간인 의사가 다른 인간을 완벽하게 새로 만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치유 능력이나 결과 자체도 만들어낼 수 없지요. 치유 능력은 하늘이, 자연이 준 선물입니다”

그는 의사를 땜장이와 비유했다. 환자의 치유를 돕거나 누군가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는 땜장이 역할을 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아울러 의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봉사 정신’임을 강조한다.

[땜장이 의사의 국경 없는 도전]
김용민 교수는 최근 이 같은 여정을 담은 책을 펴냈다.  의대 교수에서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가로 변신한 과정을 다룬  ‘땜장이 의사의 국경 없는 도전’이다. 국립대(충북대) 의대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위와 명예를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봉사’의 의미, 다양한 구호활동 및 국경없는의사회 소개를 포함하여 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내용이 들어 있다(260쪽, 1만5000원, 오르골).

김 교수는 “26년 반의 의대교수 생활을 정리하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변신하기 까지의 오랜 과정과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 주위 분들에게 많은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책을 펴냈다”고 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아프리카 오지 감벨라에서 외상, 감염 환자를 돌보았다. 앞으로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의 이런 여정은 가족의 이해와 도움없이는 어렵다. 김용민 교수는 “32년을 함께하며 응원해 준 아내가 곁에 있어서, 착하고 든든한 1남 3녀가 열심히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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