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4호 (2019-07-29일자)

고흐를 앗아간, ‘마음의 몸살’ 조울병

눈부신 햇살이 비치던, 프랑스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밀밭. ‘탕’ 총성이 울렸습니다. 37세의 화가가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쏘았지만 총알이 심장을 비껴나가 척추에 박혔습니다. 피투성이의 화가는 1.6㎞를 달려가서 한 여관에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세상을 떠납니다. 1890년 오늘(7월29일) 빈센트 반 고흐는 이렇게 ‘영원한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흐 출신의 빈센트’라는 뜻이지요. 고흐는 지금 독일 뒤셀도르프 지역에 속한다고 합니다. 고흐는 어렸을 때 정통 미술교육기관에서 그림을 배우지 못했고 미술품 거래상, 전도사 등의 경험을 거치며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고흐는 32세 때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미술학교에 입학했지만 석 달 만에 ‘면학 분위기 흐린다’는 이유로 퇴학당합니다. 고흐는 모국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그림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후기인상파의 여러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세계를 넓혔고요. 고흐는 일본 상품의 포장지로 들어온 판화 ‘우끼요에’의 표현기법도 자신의 화폭에 담습니다. 다른 후기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고흐의 사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것은 고흐가 양극성장애, 즉 조울병을 앓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갈등, 사랑의 실패, 유전적 영향, 영양실조, 과로, 스트레스 등이 조울병을 깊게 했다는 설입니다.

일부에선 고흐가 측두엽뇌전증(간질)을 앓았다고 주장합니다. 급성 간헐성 프로피리아(AIP)라는 유전병 때문에 신경발작을 일으켰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고흐는 매춘부와 함께 살기도 했고 매독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매독 균이 뇌를 침범했을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고흐가 자살하지 않고 벌판에서 놀던 청소년의 권총 오발에 희생됐다고도 합니다. 2018년 미국 배우 윌렘 데포가 반 고흐 역을 맡은 영화 ‘영원의 문'(At Eternity’s Gate)에서 다뤄진 주장입니다.

마지막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고, 마음의 병 탓에 극단의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양극성장애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습니다. 조울병은 의외로 많습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이 병을 앓다 극단적 선택을 했고,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 영화배우 짐 캐리, 멜 깁슨 등도 조울병을 고백했지요. 정치인 윈스틴 처칠, 시인 바이런도 이 병 환자였고 음악계에선 ‘음악의 어머니’ 헨델과 1856년 오늘 숨진 로베르트 슈만도 조울병 환자였습니다.

일군의 의학자들은 창의성이 조울병과 연관 있다는 가설의 중심에 고흐를 넣기도 합니다. 대규모 조사에서 머리가 좋은 사람이 조울증을 앓을 확률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뇌영상 분석에서도 창의력과 조울병이 깊게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요.

치열하지만 슬픈 삶을 살았던 화가, 그림을 그려 이웃에게 나눠졌지만, 마을에서 ‘미치광이’로 치부됐던 화가, 인류가 역사상 최고의 화가로 존경해도 스스로 행복하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고통은 영원히 지속된다(The Agony will last forever).”였습니다.

장마가 끝날 무렵, 우울병과 조울병 환자가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쉬울 때라고 합니다. 이들 장애는 의지박약의 문제가 아닌, 뇌의 병입니다. 우리 곁의 또 다른 인재가 이들 병에 희생되지 않도록, 관심 기울이고 함께 이겨냅시다. 고흐는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 숱한 명화를 남기고 떠났지만, 지금이었다면 병을 치유할 가능성이 더 컸을 텐데….


[오늘의 음악]

첫 곡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읊은 노래입니다. 돈 맥클린의 ‘Vincent’를 고흐의 명화들과 함께 감상해보시지요. 둘째 곡은 1856년 오늘 세상을 떠난 또 다른 조울병 환자 로베르트 슈만의 ‘어린이정경’ 7번 ‘Traumerei(꿈)’입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로 감상하겠습니다.

  • Vincent – 돈 맥클린 [듣기]
  • 트로이메라이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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