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수술 왜 못했나..”현장의 소리 들어주세요”

[사진=MDGRPHCS/shutterstock]

“식약처가 고어 사 철수 이후에 무려 2년 동안 허송세월했던 것 아니냐”   “그나마 대학병원의 흉부외과는 철수 전에 미리 준비해서 2년을 버텼다”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보고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질타가 더 매서웠다.

윤일규 의원(충남 천안시병)은 “2009년 노바티스 글리벡, 2011년 올림푸스 내시경, 작년 리피오돌 사태까지,  공급 중단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비해달라고 당부했다”며 “그런데 6개월 만에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식약처는 뭐하는 곳이냐”고 따져 물었다.

김상희 의원(경기 부천시소사구)은 “식약처가 고어 사 철수 이후 2년 동안이나 허송세월했던 것 아니냐”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실무자 선에서 해결해야 할 인공혈관 문제가 보건복지부장관, 식약처장까지 나서고 국회의 주요 이슈로까지 부상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 보건의료 행정의 경직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소읽고 외양간은 고친다’는 식으로 뒤늦게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의경 식약처장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인공혈관 공급중단 사태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희귀-난치병 환자 치료에 긴급히 필요하지만, 국내 허가 또는 유통되지 않는 의료기기를 별도 심사없이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제도 시행 전이라도 긴급 도입이 필요한 의료기기를 선제적으로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번 사태는 인공혈관을 국내에 독점 공급하던 미국의 고어(Gore) 사가 지난 2017년 10월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발생했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이 소아용 인공혈관이 없어 우수한 의사를 옆에 두고서도 수술을 받지 못하는 참담한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고어 사의 철수 이유도 드러나고 있다.  13일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고어사가 인공혈관 재공급 조건으로 한국 판매가 46만원의 약 2배인 미국 정가 수준(판매가 82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심사 및 규제 서류 면제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무 선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업무가 사회적인 이슈로 확대되고, 복지부장관까지 부랴부랴 나서는 상황까지 된 것이다. 최근 고어 사로부터 인공혈관 20개를 보내주겠다는 약속까지는 받아냈으나 향후 안정적인 공급 물량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을 못 받고 있다.

정부가 고어 사의 철수 이후라도 위기상황임을 직감해 철저히 대비했더라면 이번 사태와 같은 황당한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수술 재료가 없으면 아무리 우수한 의사라도 수술할 수 없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잘 알 것이다.

심장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들이 학회인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흉부외과학회)는 인공혈관 재고가 곧 바닥날 것이라는 위기감에 2017년부터 최근까지 정부의 실무자에게 몇 차례 공문을 보내고 간절한 ‘부탁’도 했다고 한다.

행정 절차로 인해 수술을 못해 우리 아이가 힘들어한다면 국가적인 이슈로 떠오를 것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원칙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정부의 실무자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경직된 업무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미국 회사의 무리한 요구와 일방적인 철수, 공급 중단이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린 환자들이 있지 않은가.

정부의 과장급 실무 책임자라도 ‘종합적인 판단’을 해 꼼꼼하게 사후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막다른 길에 몰린 지금에서야 고어 사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또 무엇인가.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들었더라면 이번 사태는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수술 재료 재고의 바닥을 보면서 속이 타들어가던 의료진의 탄식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환자와 가족들의 눈물어린 호소가 청와대까지 들리자 뒤늦게 “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의 선제적 조사” 등의 부산을 떨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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