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기준 없어…” 의료 기기 업체, 규제 샌드박스 신청한 까닭은?

[사진=Dragon Images/shutterstock]
A사는 2016년 수동 휠체어를 전동 킥보드처럼 빠르게 움직이도록 돕는 보조 장치를 개발했다. 탈부착이 가능한 장치로, 일반 접이식 휠체어에 달면 사용자는 쉽고 빠르게 먼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전동 휠체어가 가기 어려운 곳에서는 장치를 제거하고 다시 수동 휠체어로 바꾸면 된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장애인들은 이 장치를 사용하지 못했다. 의료기기법에 수동 휠체어, 전동 휠체어 인증 기준은 있지만 ‘보조 장치를 부착한 수동휠체어’의 인증 기준이 없어서다.

의료기기 인증을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게 문의할 때마다 “식약처는 인증 기준을 만드는 주체가 아니다”라며 도리어 “A사가 적정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의료기기 품질 관리 기준(GMP)를 평가하는 인증 위탁 기관에도 문의를 넣어봤지만 “평가 기준이 없어 품질 시험을 받아도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만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산업통산자원부가 산업계의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기 위해 시행하는 ‘규제 샌드박스’에 속 타는 심정을 호소한 업체 가운데 시대에 떨어진 규제조항뿐 아니라 아예 법 규제조항이 없어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담당부처가 산업 발전이나 국민 건강을 위해서 법 조항을 만드는 데 소극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고, 심지어 업체에 규제 기준을 만들어오라고 떠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관리 감독을 주로 하는 기관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심했다.

B사는 2011년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들에게 산소를 계속 공급할 수 있는 ‘자동 공급장치’를 만들었다. 이전에는 환자들이 산소 공급 장치에 산소통을 갈아 끼우면서 곤란을 겪었다. B사는 이 장치를 보험에 적용시켜 수많은 환자들의 불편을 덜어주려는 꿈을 꿨지만 아직 꿈에 머물고 있다.

식약처는 “대한민국약전에 일반 액체 산소통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일반 기기에서 배출되는 산소에 대한 기준이 없어 산소 공급 장치에 대한 의료용 산소는 약제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반려했다.

국가가 제정한 의약품에 대한 법전인 대한민국약전은 5년마다 개정된다. 그럼에도 B사는 지난 8년 동안 일반 기기에서 만드는 산소를 의약품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정부의 한 고위공무원은 “특히 복지부와 식약처는 스스로 규제를 줄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기존 체계 안에서 줄이는 것만 생각하고 있어 문제”라면서 “새 영역에 대해서 국민과 업계에 도움이 되도록 꾸준히 요구하고 있지만 잘 실행이 안돼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편, 식약처 관계자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규제 샌드박스 허가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관계 부처와 협의 없이 자세한 답변을 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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