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간암 환자 살리는 세계적 부부 명의

[대한민국 베스트닥터] 세브란스병원 한광협-성진실 교수

“간암 환자는 얼굴이 노랗게 변한다는데, 하늘이 노랬습니다. 길어도 6개월밖에 살지 못하고 처녀 귀신이 돼야 한다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세브란스병원을 찾았지요. 4년 만에 건강을 되찾고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2015년 직장인 신 모 씨(당시 36세)는 일에 치여 살았다. 올빼미처럼 밤을 새며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몸무게는 70㎏을 넘겼고 쉬 피로해져 병원을 찾았다가 ‘사망 선고’를 받았다. 간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인 ‘간문맥’이 막혔고 간암 지표인 알파태아단백(AFP) 지수는 기준치 10의 9000배가 넘는 9만2233, 비타민K결핍유도단백(PIVKA-Ⅱ) 수치는 기준치 40의 2500배가 넘는 1만1260이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항암제 방사선 복합치료(CCRT)’를 받았더니 기적처럼 수치가 뚝뚝 떨어졌다. 암 크기가 줄어들자 수술을 받고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AFP는 1.15, PIVKA-Ⅱ는 15로 떨어졌다. 주치의의 안내에 따라 한식 위주로 식단을 바꿔 몸매도 건강하게 바뀌었다.

신 씨가 받은 CCRT는 이 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성진실 교수(60)와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64)가 함께 개발해 일본과 동남아 각국으로 전파하고 있는 치료법이다.

두 교수는 36년 동고동락한 부부로서, 각각 올해 간암 분야 양대 국제학회의 수장(首長)에 오른다. 한 교수는 7월 국제간학회(IASL), 성 교수는 8월 아시아태평양간암학회(APPLE)의 회장에 취임하는 것. IASL은 간 분야에서 역사가 가장 긴 세계학회이고, APPLE은 간암진료에 참여하는 여러 분야의 임상의사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 학회다. 특히 APPLE은 한 교수가 설립을 주도했고, 성 교수는 4년 동안 총무를 맡아서 조직을 체계화하는 핵심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의대 미술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한 교수는 5년 뒤 전공의 3년차 때 본과 4년생으로 실습 온 후배를 마음에 담았다. 한 교수는 “의대 강의 노트를 빌려 달라”고 수작을 걸었지만, 눈치 없는 후배는 “글씨를 못 써서…”하며 사양했다. 한 교수는 직설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해야만 했다.

두 사람은 각자 시험 기간에 짬을 내서 결혼식을 올렸다. 한 교수는 전문의 1·2차 시험 사이, 성 교수는 국가의사고시를 합격하고 미국의사고시를 치르기 전이었다. 공교롭게도 서울 동대문교회에서 결혼예약을 잘못 접수해 같은 시간 두 쌍의 결혼식이 잡혔다. 시간을 쪼개서 다른 쌍이 끝나자마자 후다닥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여행은 2박3일 부산과 부곡온천으로 후다다닥 다녀왔다. 그리고 한 교수는 군의관의 길로, 성 교수는 인턴 고생길로 접어들었다.

성 교수는 이때 전공을 선택했다. 당시엔 여의사는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내, 외과 교수가 되기 어려웠다. 성 교수는 차선으로 새로 개설된 방사선종양학과를 택했고, 당시의 선택이 하늘의 은총이라고 믿는다. 그해부터 전공이 세분화돼서 성 교수는 방사선종양학과의 2기 전문의가 됐다.

성 교수는 전공의를 마치고 남편이 미국 텍사스 주 베이어의대로 연수갈 때 동행, MD엔더슨 암병원에서 공부했다. 남편과 함께 귀국하니 스승인 김귀언 교수가 “직장암과 간담췌장암 등 소화기암을 맡는 것이 어떨까”하고 권했다. 소화기암 중 간암의 방사선 치료는 국내 최초였고, 세계적으로도 손가락으로 꼽을 때였다. 쉽게 말해서 소화기암 환자에겐 방사선치료를 한다고 하면 “헉!” 하던 시절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기에 황무지를 개척하는 심정이었죠. 세브란스병원에서는 내과, 외과, 진단방사선과, 병리학과 등 다양한 분야의 의사가 모여 의견을 공유하는 다학제 시스템이 있었기에 도움이 됐습니다. 간암 분야는 남편이 주도했지요.”

성 교수는 수많은 간암 환자를 살렸지만, 간문맥이 막힌 환자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어서 고민이었다. 1995년 남편이 일본 구루메 대학병원에 갔다가 중심정맥관(케모포트)을 통해 24시간 항암제를 투여하는 방법을 보고 “당신의 치료법과 병행하는 것은 어떨까?” 제안했다.

부부는 논의와 실험을 거듭해서 CCRT를 개발했다. 중심정맥관을 통해 간동맥으로 항암제를 계속 투여하면서 특정 부위에 고선량의 방사선을 집중하는 치료법이었다. 이 치료는 ▲적합한 환자를 잘 선별할 수 있는 소화기내과 의사 ▲뛰어난 방사선종양학과 의사 ▲케모포트를 잘 넣을 수 있는 중재방사선과 전문의가 모두 있어야 가능한데, 마침 세브란스병원에는 3박자가 갖춰져 있었다.

결과는 의사로서도 놀랄 정도였다. 2, 3개월 더 살기 힘들었던 환자가 1년을 거뜬히 넘겼다. 일부 환자는 암이 줄어들어서 수술이 가능해졌고 절반 이상 죽음의 그림자를 떨칠 수 있었다. 2008년 《캔서》지에 그때까지 치유결과를 발표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앗다.

부부는 암 부위를 공략하는 방사선의 세기를 높이는 것을 비롯해서 치료법의 개선을 거듭했다. 2018년 《미국 외과종양학회》지에 환자의 25.6%가 완치됐다는 임상결과를 발표했다. 올 2월에는 유럽방사선종양학회 학술지에 CCRT를 받은 환자는 평균 21개월을 살며, 17%가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암이 줄어들고 절반가량이 완치된다는 임상결과를 발표한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CCRT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한 교수는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등 최신 치료법을 병행해서 간암을 치유하고 있고 성 교수는 방사선·색전술 병행요법, 정위적체부방사선요업(SSRT) 등 다양한 무기로 간암과 싸운다. 두 의사는 “불가능과 어려움을 구별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환자를 대한다. 수많은 간암 환자가 다른 의사들로부터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포기선언을 듣고 오면 희망의 메시지부터 준다.

한 교수는 지금까지 467편의 국제과학색인(SCI) 논문을 발표했고, 상대적으로 논문을 발표하기 쉽지 않은 분야의 성 교수는 181편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46편이 부부 공동 연구의 산물이다.

두 대가는 한때 함께 출근하면서 승용차에서 ‘간 미니 세미나’를 열곤 했다. 요즘에는 각자가 바빠서 이메일이나 메시지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각각 한 달 한 번꼴로 초청강연, 국제학회 참석 등을 위해 해외로 나가고 국내 있을 때에도 서로 편히 얼굴 보기가 힘들다. 특히 성 교수는 대한간암학회 회장으로서 ‘매년 2번 2가지 검사를 받자’는 뜻으로 2월2일을 ‘간암의 날’로 정하고 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부부는 일요일 밤에 다음 주 스케줄을 확인하고 매주 1, 2번은 함께 식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은 CCRT가 표준치료법으로 등록되기를 꿈꾸며 최근 선보인 표적항암제와의 비교 임상시험을 통해서 CCRT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입증하는 연구를 펼칠 계획이다. 또 CCRT와 표적항암제, 면역치료제 등을 병행해서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연구도 준비하고 있다.

성 교수가 전공의 때 낳은 장녀도 이들의 꿈에 동참했다. 딸은 캐나다 캘거리대학병원에서 간경변증 분야의 대가 샘 리 교수 문하에서 간질환의 세계를 파고들고 있다.

    이성주 기자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
    댓글 쓰기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