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첩] 졸지에 가짜 뉴스 ‘기레기’가 돼보니

[사진=CI Photos/shutterstock]
지난 8월 29일 소비자 의뢰 유전자 검사(Direct-To-Consumer, DTC) 제도 개선 민관 협의체가 제안한 검사 항목 확대안이 폐기됐다. 지난 2018년 6월 출범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5기 위원회 제1차 본회의에서 일어난 일이다.

위원회는 생명공학분야에서 생명윤리와 안전에 관한 안건을 다루는 대통령 소속 자문 기구다. 생명공학 정책 결정을 위해서는 위원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위원회는 사실상 생명윤리 정책의 최상위 결정 기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DTC 항목 확대를 요구하는 산업계는 위원회의 결정에 크게 반발했다. DTC 항목 확대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월 12일 제2차 본회의에 ‘DTC 유전자 검사 서비스 관리 강화 방안’을 상정했다. 위원회는 시민 공청회와 시범 사업을 거친 후 DTC 검사 항목 확대를 재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이 위원회의 민간위원인 A 교수가 정부 공무원과 위원회 위원들 앞으로 “DTC 항목 확대와 관련한 가짜 뉴스가 퍼지고 있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이메일에서 “DTC 항목 확대는 위원회가 우선 심의할 사항이며, 시범사업 시행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음에도 “시범사업이 먼저 이루어진 뒤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게 되리라는 ‘가짜 뉴스’가 나오고 있다”고 썼다. 이 위원은 ‘기자들의 희망 사항’에 따라 이 같은 내용이 쓰이지 않도록 위원회 내부 단속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쓴 기사를 발췌하고 링크로 덧붙이는 친절함까지 더했다.

기자는 졸지에 ‘가짜 뉴스를 쓰는 기레기’가 돼 버렸다.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정정해야 할까, 고민 끝에 A 교수에게 연락했다가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을 들었다. 교수는 “기사가 가짜가 아니라 기사에서 인용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보도 자료가 가짜라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공정위는 A 교수가 이메일을 보내기 일주일 전인 12월 20일 “2019년 하반기 검사 서비스 인증제 도입과 함께 일정 기간의 시범 사업 실시 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의 심의를 거쳐 검사 항목을 확대할 예정”이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DTC 검사 항목 확대 여부를 두고 공방이 일었던 생명윤리심의위 제2차 본회의 이후 배포된 자료였다.

A 교수의 말은 이 보도 자료가 ‘가짜’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소속 행정기관으로 ‘공정한 대한민국’을 위한 핵심 정부기관인 공정위가 언론사에 가짜 뉴스를 제공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공정위 담당 서기관은 “DTC 규제 완화에 관한 내용을 공정위 단독으로 발표할 수 없다”며 “복지부 사무관이 설명한 생명윤리심의위 본회의 결정사항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생명윤리심의위 본회의 직후 배포된 복지부 보도 자료를 다시 확인해 보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복지부는 “DTC 검사 서비스 질 관리를 위해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겠다”고 했다.

정부가 발표한 보도 자료는 그 자체로 뉴스거리다. 특히 공정위가 이런 사안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자료를 낸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 그 보도 자료가 ‘가짜’라면, 어떻게 정부를 믿을 수가 있을까? 물론 치열한 논점의 특정사안에 대해서 보도 자료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 A 교수의 주장대로 회의 세부 내용이 보도 자료와 다를 수 있지만, 언론 비공개로 진행된 본회의 사실 확인을 위한 소스는 공식 회의록과 전언(傳言)뿐이다. 복지부 사무관은 “지난 1, 2차 본회의 회의록은 제3차 본회의 이후 공개될 예정”이라고 못을 박았다.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범죄다. 정부 위원회 위원이 정부가 발표한 보도 자료를 소개한 기사를 ‘가짜 뉴스’로 폄훼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A교수가 유전자와 관련된 산업을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는 일방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가짜 뉴스’ 패러다임을 꺼낸 것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만약 A교수가 옳다면, 복지부와 공정위는 ‘가짜 보도 자료’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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