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이 사라졌다. 마을 전체가 움직인다

[사진=SpeedKingz/shutterstock]
30대 주부 A 씨는 오늘도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옆집 할머니 B 씨를 만났다. 5년 째 치매를 앓고 있는 B 할머니의 주 보호자는 아들 내외와 사회복지사지만, 지역 치매 연락망에 따라 A 씨 역시 B 할머니의 생활보호자 중 한 명으로 등록돼 있다.

하루는 늘 있어야 할 자리에 B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옆집 보호자의 언질도 없었다. A 씨는 프로세스에 따라 지역 복지관에 비상 연락을 넣었다. 복지관의 SOS에 경찰관, 소방관뿐 아니라 근처 초등학교 전교생이 합세해 할머니를 찾아 나선다. 도시 인구의 35%가 노인인 고령화 마을, 일본 후쿠오카현 오무타시의 모습이다.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돌봄을 제공하는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정책 추진에 문제 당사자, 지역 사회 주체의 목소리를 더욱 키워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기업연구단 연구위원은 최근 서울스퀘어에 마련된 커뮤니티케어-리빙랩 전문가 모임에서 ‘치매 환자가 되어도 안심할 수 있는 마을 만들기’를 추진 중인 일본 오무타시 사례를 소개했다.

한때 탄광마을로 번영했던 오무타시는 현재 10만 명가량의 인구 중 35%가 노인인 고령화 마을이다. 2004년부터 치매 환자 지원을 위한 지역 네트워크를 구성해왔던 오무타시는 지난 2월부터 시민-지자체-기업-지역 병원이 연계한 치매 안심 리빙랩을 꾸렸다.

전국 평균보다 고령화율이 10년 앞서 있는 오무타시는 일본의 10년 뒤 고령화 모습을 보여주는 축소판 마을이기도 하다. 일본 보건 당국 역시 오무타시의 이러한 특성에 주목, 치매 돌봄을 마을 전체 사업으로 추진하는 데 힘을 실었다.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인 NTT 도코모, 지역 스가하라 병원 등도 커뮤니티 케어를 위한 공동 실험에 합세했다.

이케다 오무타시 건강장수지원실 실장은 “오무타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사업의 목표”라며 “퍼슨 센터(person center) 기조를 중심으로 헬스 케어 등 산업 정책과 사회 정책의 연계망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살아 있는 실험실’, ‘사용자 주도형 혁신 공간’ 등으로 소개되는 ‘리빙랩(Living lab)’은 지역 주민-기업-지자체-연구 기관이 협업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 혁신 플랫폼이다.

리빙랩 개념이 소개된 최근 몇 년 사이 지역 문제 해결에 리빙랩 플랫폼을 실험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와 달리, 지역 사회 주체를 중심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익숙한 나라도 많다. 일본, 스웨덴 등이 그 대표적 국가다.

이들 국가는 고령화 사회 대비를 보건의료 분야의 주요 과제로 보고 ▲ 장수 사회에 맞는 지역 사회 디자인 ▲ 정보통신기술(IoT)을 활용한 시니어 참여 사업 개발 ▲ 시니어 중심의 돌봄 시설 구축 등을 위한 리빙랩을 운영하고 있다.

이건세 커뮤니티케어 전문위원회 위원장은 “일본 커뮤니티 케어 사례 다수는 보건의료 분야 외 지역 사회 전문가와 돌봄 문제를 고민하는 리빙랩 운영 체계를 포함하고 있다”며 “행정 차원의 커뮤니티 케어 센터뿐 아니라 지역 사회 차원에서 돌봄 문제를 고민하기 위한 동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지은 박사는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복지부, 과기부, 산자부 등 개별 부처가 제각기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만 답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 박사는 “정부 차원의 시도와 지역 수준에서 이뤄지는 돌봄 실험, 암 생존자 리빙랩 등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개혁의 목소리를 서로 연결하는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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