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20분 진료… ‘소통하는’ 내시경 수술 명의

[대한민국 베스트 닥터]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정훈용 교수

[사진=서울아산병원]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정훈용(55) 교수는 조기 위암과 암 직전 단계 환자 4500여 명을 내시경으로 치료했다. 세계 최다 수준이고, 내시경 시술이 필요한 경우를 제대로 판단해서 정확하고 빨리 시술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환자들 사이에선 시원시원 ‘설명 잘 하는 의사’로 유명하다. 하루 50명씩 보는 외래 진료 때 대기 시간이 길어지기 일쑤이지만, 환자들은 이해한다. 자기 차례가 돼도 더 묻고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까. 올해 봄부터는 월요일 오전에 새 환자 8명에게 15~20분씩 진료한다. 보건복지부 심층 진료 시범 사업에 선정돼 원 없이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의사는 환자를 시술 또는 수술하고 끝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첨단장비가 능사가 아니며 환자와의 소통이 치유 성적을 높이지요.”

그는 배앓이를 하다가 세상을 떠난 할머니 때문에 중 3 때 복통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고2 때 ‘유쾌한 응접실,’ ‘재치문답’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애청자들을 매료시킨 한국남 박사가 의료보험 환자 진료 거부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어떤 이유로도 환자를 지키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지금까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정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서 예과 때부터 방학에 농촌 진료봉사를 했다. 본과 1학년 말에 ‘송정의료봉사회’에 가입, 한 주도 빠짐없이 토요일 오후 2~6시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인턴 때에는 토요일 봉사를 계속 하기 위해서 일요일 당직을 서는 바람에 365일 중 하루만 집에 갈 수 있었다. 시험을 치른 날 오후5시 무료진료소에 도착하니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도, 전공의도 아니라 말 잘 통하는 ‘정훈용 선생님’에게 진료 받고 싶다는 환자들이었다.

정 교수는 남들은 전공의가 시키는 일만 해도 벅찬 인턴 때 어떻게 하면 환자와 더 잘 소통할까 고민하다가 ‘혈관 회진’을 고안했다. 아침, 저녁에 환자 25명에게 따로 가서 주사를 어디에 맞을지 계획을 짜고 알려줬다. 환자의 팔뚝을 어루만지면 안도감과 신뢰감을 낳아 치료가 잘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공의 때에는 혼자서 병실을 5, 6차례 돌아다니며 환자의 상태를 둘러봤다. 1, 2명은 5~6분 식사하는 것을 지켜봤다. 환자가 ‘맛없는 환자식’을 잘 먹지 못하면 가운에서 숟가락을 꺼내들고 “제게도 식사 좀 나눠주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주치의와 함께 식사한 대부분의 환자는 다음부터 더 잘 먹게 되며 치유성과도 좋아졌다. 정 교수는 환자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상담해서 해결책을 찾아냈고, 조두영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현 진보병원 원장)에게 간청해서 내과 병동에 와서 환자의 상담을 듣게 했다.

정 교수는 군의관 2년 때 지인의 소개로 만난 소아심장 전문의와 결혼했다. 장인은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에서 명의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민영일 교수(현 나무병원 원장)였다. 1995년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전문의를 모집하자 고민을 거듭하다가 지원했다. 장인을 도우면서 전국에서 밀려드는 환자를 진료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쉼 없이 내시경검사를 시행하며 조기 위암, 식도암 환자를 내시경점막절제술(EMR)로 치료했고 토요일에는 외래환자를 봤다. 정 교수는 ‘나비넥타이’로 알려진 보우타이를 매고 환자를 본다. 원래 장인의 트레이드마크였는데, 환자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따라 매기로 한 것.

정 교수는 2002~2004년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라빈더 미탈 교수 문하로 식도의 운동기능에 대해서 연수했다. 귀국하자 국내에선 EMR에서 내시경점막절제술(ESD)로 시술 경향이 바뀌고 있었다. 그는 ESD 위주로 시술하면서 이 시술을 받아야 할 환자를 선별하는 기준을 세웠다.

“2000년대 초 정부에서 국가암검진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조기위암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급증했습니다. 매년 3만 명이 위암 진단을 받았는데 그중 1만 명이 내시경 시술 환자였습니다. 우리 병원에는 외과의 김병식 교수가 수술을 맡고 제가 시술을 주로 했지요.”

정 교수와 김 교수는 내·외과 협동수술로 위를 조금이라도 더 남아있게 하는 치료에서도 세계 최선두에 서 있다. 정 교수는 요즘 고도 비만 환자를 수술이 아니라 내시경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와 위암 환우회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정 교수를 칭찬하고 감사를 표하는 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른 병원에서 실패했지만 수술실에서 웃으면서 안심시켰고 치료가 잘 됐다, 주말에도 웃으면서 회진을 돌며 격려해서 고마웠다 등등….

“어제도 외래 환자 2명이 역류성 식도염을 호소하며 찾아왔어요. 두 분 모두에게 혹시 머리가 아프지 않느냐고 물었지요. 편두통이 원인이었지요. 소화기 문제의 상당수는 원인이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얼핏 돌아가는 것 같지만 훨씬 빠른 길이기도 합니다.”

정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서 환자와 대화를 나누며, 2008년부터 매년 두 차례 역류성식도염 공개강좌를 열고 있다. 후배들과 소통에도 열심이어서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잘 뭉치는 상부위장관팀’을 만들었다. 후배 의사들에게 “환자와 진료를 마칠 때에는 먼저 눈을 떼지 말고 2초를 더 할애하라”고 강조한다. 짧은 2초의 노력이 환자에게 큰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것.

그는 환자의 편의를 위해서 당일내시경클리닉을 만들어 진료, 검사, 결과확인을 하루에 마치도록 했다.

정 교수는 지난해 8월부터 의대와 인턴 때에 이어 제2의 봉사활동을 캄보디아에서 펼치고 있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서울아산병원으로 공부하러 온 의사들을 통해 ‘위드 헤브론 재단’을 알게 됐고, 서울의 편한 의사생활을 접고 의료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우정 설립자의 뜻에 공감했다. 정 교수는 2, 3개월마다 프놈펜 헤브론병원에 가서 20여 명의 의사에게 내시경 시술의 이론을 가르치고 3D 프린터 인체 모델을 가져가 실습교육을 한다. 동남아에서도 ‘소통의 의료’를 퍼뜨리고 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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