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1조4000억 기술 수출 성공 비결은?

[바이오워치]

“레이저티닙에 대한 글로벌 오피니언 리더의 의견 중엔 너무 늦어서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개발 포인트를 집중적으로 파악한 결과 기술 수출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레이저티닙 기술 수출에 대한 최순규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장의 말이다. 최 소장은 4일 한국임상시험본부(KoNECT)가 주최한 글로벌 포럼에서 유한 오픈 이노베이션 성공 전략을 ‘지기지피(知己知彼, 나를 알고 남을 안다)’라 표현했다.

유한양행은 지난달 5일 EGFR 표적 항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에 대해 얀센과 1조4000억 원 초대형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해 큰 주목을 받았다. 국내 제약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기술 수출을 이뤄내면서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결실을 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유한양행은 2014년부터 초기 바이오 벤처로부터 과제를 도입해 초기 임상을 진행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로의 기술 수출을 이끌어내는 ‘링커(Linker)’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4년 엔솔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도입한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YH14618을 지난 7월 미국 스파인바이오파마에 2억1800만 달러(약 2400억 원) 규모로 기술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레이저티닙 역시 2015년 오스코텍 자회사 제노스코로부터 도입한 물질이다.

연이은 오픈 이노베이션 성공에는 후보 물질의 경쟁력과 가능성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후보 물질을 신약으로 성공시킬 의지와 가능성이 큰 글로벌 제약사를 찾아 상대방이 원하는 포인트에 맞춰 설득시킨 유한양행의 지기지피 전략이 한몫했다.

우선 레이저티닙 기술 수출을 위해서 유한양행은 ‘베스트-인-클래스(Best-in-class)’에 집중했다. 레이저티닙은 이미 시중에 나온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와 동일한 타깃을 지닌 EGFR TKI 억제제다.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가 아닌 상황에서 레이저티닙을 개발해야 할 이유를 찾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미국암학회(AACR) 등 국제 학회에서 임상의 등 글로벌 오피니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모았다. 최순규 소장은 “어떤 임상의는 이미 진입이 늦은 상황에서 (레이저티닙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도 개발할 수 있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며 “타그리소 임상에서 무진행 생존 기간(PFS)이 18.9월이 나왔는데, 그보다 3개월만 더 늘릴 수 있다면 그 약을 처방할 의사가 있다는 의견들이 나와 그 부분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존슨앤드존슨(J&J) 자회사 얀센에 주목한 것도 레이저티닙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한 결과다. J&J 항암제 파이프라인 가운데 JNJ-372는 EGFR과 c-Met 이중 항체로, 2016년과 2017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JNJ-372 단독 요법보다 타그리소와의 병용 요법에서 훨씬 우수한 효과를 보였다.

최순규 소장은 “얀센은 비소세포 폐암에 충분한 관심이 있고, 여러 자료를 통해 타그리소와 동급인 약물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즉, 레이저티닙의 단독 요법뿐 아니라 병용 요법의 가능성까지 보았을 때 얀센이 부족한 부분을 레이저티닙이 채워주면서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고 설명했다.

얀센이 파트너로 적합하다는 판단이 서고 나서도 비용 등 사업적 논의보다 연구자, CMC 관계자끼리 공동 연구 방향을 논의해 신뢰를 쌓는 데에 집중했다. 7개월 넘게 이어진 연구자 간 논의로 레이저티닙의 성공적인 개발 및 임상 계획이 도출되자 기술 수출 계약은 3개월 만에 손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최순규 소장은 “우리가 가진 모든 자료를 경쟁력 있는 데이터로 만들어 설득력을 높였고,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 상대 회사가 고민하는 부분을 파악해 포인트를 잡아 설득한 것이 기술 수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레이저티닙은 향후 단독 요법과 병용 요법 투 트랙으로 임상이 진행된다. 단독 요법은 타그리소보다 적은 부작용을 무기로 베스트-인-클래스 전략을 펼칠 예정이며, 병용 요법으로는 JNJ-372와의 병용으로 c-Met 보상 경로와 EGFR 돌연변이를 동시에 억제해 차세대 내성 극복 치료를 기대하고 있다.

초기 오픈 이노베이션을 맺은 두 곳이 연이어 성과를 내면서 향후 또 다른 기술 수출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최순규 소장은 “2014년에 시작된 오픈 이노베이션이 올해 하나씩 성과가 나오고 있다”며 “2015년에 오픈 이노베이션을 맺은 다른 두 곳(바이오니어, 제넥신)에 대해서도 내년에 좋은 소식이 나오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한양행은 세포 투과성 물질, 면역사이토카인 등 신규 신약 후보 물질의 영역을 넓혀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최순규 소장은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해 미국 샌디에이고에 현지 법인을 세웠고, 보스턴 지사도 연내 준비가 끝날 것”이라며 “R&D 역량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R&D 베이스 제약사 넘버원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새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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