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에 죽는다” 괴담은 어디서 시작했을까?

[토론회] 음이온, 원적외선...가짜 과학 판치는 이유

[사진=totojang1977/shutterstock]
“선풍기를 쐬면 죽는다는 소문은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사망한 남성 옆에 선풍기가 틀어져 있던 사건이 있었어요. 이를 언론에서 선풍기 때문에 ‘산소 결핍’과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도했어요. 그런데 이처럼 데이터 없는 추측은 과학이 아닙니다. 소설이죠.”

체계적인 산술적 증명 과정도 거치지 않고 마치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처럼 포장한 ‘유사 과학(사이비 과학)’이 판을 치고 있다. 이한보람 인천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이처럼 데이터 없이 주장만 펼치는 과학은 과학이 아니라 소설이라고 지적했다.

잘 알려진 유사 과학의 사례로는 ‘육각수가 몸에 좋다’거나 ‘게르마늄 팔찌를 차면 혈액 순환이 잘 된다’거나 ‘음이온이 피로 회복을 돕는다’는 등의 주장이 있다. ‘백신 예방접종은 위험하다’는 음모론이나 유언비어 역시 유사 과학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인체에 안전하다고 광고한 가습기 살균제는 많은 피해자들을 발생시킨 참혹한 대형 사고로 이어진 유사 과학의 사례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에도 원적외선, 수소수, 천일염, 죽염, 식초 등의 효과가 과장된 채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에게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라돈 침대 사태’도 유사과학과 맥락을 같이 한다. 광물질의 하나인 모나자이트를 가루 형태로 만들어 ‘음이온 기능’이 있다고 광고했지만 사실상 ‘라돈’이라는 발암 물질을 발생시켜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던 것.

모나자이트는 ‘음이온 파우더’ ‘칠보석’ ‘희토류’ ‘게르마늄’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영세한 제조 업체들을 중심으로 수입돼 건강 증진 효과가 있는 것처럼 광고돼왔다. 침대뿐 아니라 베개, 속옷, 화장품, 생리대 등 66개사 100여 종의 제품에 이 방사선 광물질이 사용돼왔다.

29일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2018 과학기자대회’에서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소비자를 위협하는 음이온은 아직도 자동차 공기청정기 등에 쓰이고 있지만 그 위험성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다”며 “라돈 사태로 방사선 광물의 위험성은 어느 정도 인지하기 시작했지만, 전기 방전 시스템에서 생성되는 음이온을 빙자한 오존 물질은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사 과학은 이온, 알칼리, 원적외선, 피톤치드, 살균, 항산화, 수소 등의 과학 용어를 앞세워 소비자들을 현혹시킨다”며 “전문성이 부족한 영세 사업자는 물론 비윤리적인 대기업, 심지어 ‘진짜’ 과학자 혹은 연구자마저도 이를 적극 홍보하거나 침묵할 때가 있다. 소비자들에게 이를 알리는 통로 역할을 하는 언론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를 소비하는 대중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누가 사용해 봤는데 좋다더라”는 식의 친구나 직장 동료의 이야기만 믿고 물건을 산다거나 각종 커뮤니티에 유통되는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들을 신뢰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문제다.

그렇다면, 의과학적인 근거가 불분명하고, 이를 광고에 활용할 경우 실정법상 위반까지 되는 이런 상품들이 여전히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몸이 아플 때 기적이나 신비를 바라는 대중의 마음, 무능하고 무책임한 관료와 법·제도, 과학 상식과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육, 전문성이 부족한 전문가, 비윤리적인 언론 등의 결합으로 나타난 결과라는 게 이덕환 교수의 지적이다.

과학의 가치와 신뢰를 훼손하고, 나아가 공중보건을 위협할 수 있는 유사 과학은 반드시 근절돼야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사 과학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의 막중한 책임과 언론의 수준 높은 책무성 등이 필요하다. 더불어 용기를 내어 진실을 이야기하는 과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도 필요하다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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