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로봇 수술 길잡이…3000명 수술, 국산 장비 개발

[대한민국 베스트 닥터]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나군호 교수

[사진=연세의료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은 로봇 수술 분야에서 시쳇말로 ‘성지(聖地)’로 불린다. 지난 7월 세계 처음으로 수술 2만 건을 돌파했다. 로봇 수술 트레이닝 센터에는 미국, 영국, 일본 등 40개국 의사 2000여 명이 가르침을 받고 갔다. 수술 로봇을 개발한 미국 회사가 망하기 직전에 이 병원 덕분에 60조 원 가치의 회사로 성장했다는 말까지 있다.

이 병원 비뇨기과 나군호 교수(51)는 ‘세브란스병원 로봇 수술 신화’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온 의사다. 그는 2002년 4월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에 연수 갔다가 수술용 로봇을 처음 봤다. 연구실 구석에 덩그러니 똬리 틀고 있던 수술 로봇은 장식품과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말이 있었다면, 존스홉킨스병원에선 “수술 로봇은 (과학이 아니라) 가구”라는 우스개가 있었다.

원래 수술 로봇은 심장 동맥 수술용으로 개발됐지만 내과적 심장 시술이 확대되면서 갈 길을 잃었다. 암 수술에 시험적으로 시도됐지만 2002년 1월 디트로이트의 헨리포드 병원에서 열린 학회에서 발표된 임상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의사들이 “사기”라며 웅성거릴 정도였다.

그래도 세계 최고의 병원에선 ‘미래의 가능성’을 방치하지 않았다. 나 교수는 전립선암 치료와 복강경 비뇨기 수술을 배우러 갔지만, 밤마다 현지 전임의 5명과 로봇 수술 기법을 파고들었다. 사람에게 로봇 수술을 할 날이 올까 반신반의하면서도 돼지 100여 마리를 희생 삼아 연구를 거듭했다.

나 교수는 이듬해 귀국해서 로봇 수술의 회복이 빠르다는 소식에 이어서, 적어도 전립선암은 시도할 가치가 있다는 정보를 귓바퀴에 담았다. 그는 지훈상 연세의료원장에게 로봇 도입을 건의하고, 미국 현장으로 모시고 갔다. ‘세브란스 로봇 사절단’은 미국에서 복강경 수술의 선구자로서 세계적 의료 기기 회사 존슨앤존슨 엔티콘의 자문을 맡고 있던 윤인배 박사에게 의견을 물었다. 답은 “도입해서 시도할 가치가 있다!”

지 원장에 이어 박창일 의료원장이 부임하자 로봇을 도입해서 전문 수술실을 만들고 비뇨기과,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의료진이 수술하도록 세팅했다. 그러나 환자가 오지 않았다. 1년에 6억 원의 비용이 나갔지만 6개월 동안 환자는 23명. “젊은 의사에게 비싼 장난감을 맡겼다,” “저 돈이면 직원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는데…” 등 온갖 비난이 나 교수의 귓전에서 울렸다.

“가시방석, 바늘방석이었습니다. 아마 다른 병원처럼 과별 인센티브가 있었다면 그만 뒀을지도….”

다행히 로봇 수술의 장점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환자들이 늘기 시작했고 고려대 안암병원,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등에서 로봇을 도입하면서 비난의 화살이 비껴갔다.

나 교수는 2005년 7월15일 60대 전립선암 환자에게 첫 로봇 수술을 성공했고 지금까지 전립선암 2500명, 신장암 500여 명 등 3000여 명을 로봇 수술로 치료했다. 전립선암 환자에게 방광과 직장 사이로 수술 장비를 넣는 ‘후방 접근법,’ 신장암 환자에게 일부분만 절제하는 ‘부분 신장 절제술’을 고안해서 전파했다.

국내외에서 700여 회의 강연을 했고 90여 회 수술 시연을 했다. 2014년부터 매년 미국비뇨기과학회가 열릴 때 별도의 방에서 의사 300여 명에게 로봇 수술을 가르친다. 지난해 5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미국비뇨기과학회에 초청돼 세계 각국 의사 1만여 명을 대상으로 로봇 수술 기조 강의를 했다. 국내 의사 중에 이 학회 기조 강의는 처음이었다.

“미국의 수술 로봇 다빈치는 비용이 비싸 환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국산 로봇이 개발되면….”

2012년 나 교수는 미래컴퍼니 김종인 회장(작고)에게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을 테니 국산 장비를 함께 개발하자”고 제안했고, 흔쾌히 승낙 받았다. 그렇게 개발한 레보아이는 2016년 임상 시험에 성공했고 실전에 배치돼 개선을 거듭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다빈치를 따라잡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빈치가 벤츠라면 레보아이는 현대자동차 수준입니다. 운전자에 해당하는 의사의 역량에 따라 레보아이로 다빈치 이상의 성적을 낼 수는 있지만….”

나 교수는 “구글의 무인 승용차처럼 무인 수술이 가능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예측했다. 로봇 수술은 녹화와 함께 진행돼 데이터들이 저장되는데, 빅 데이터를 잘 이용하면 의사의 손길 없이 수술이 가능해진다는 것. 나 교수는 이를 위한 국내외 연구에도 고갱이 역할을 하고 있다.

나 교수는 병원에서 ‘천재’로 불린다. 중학교 1학년 때 한일은행 미주본부장을 지낸 선친을 따라 미국에 가서 이듬해 주(州)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귀국해선 해외 거주자 특례 입학으로 진학할 수 있었지만, 정시로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의예과를 수석 졸업했다.

본과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회복해 연세대 대학원에 수석 입학했다. 전공의 때 세브란스병원 올해의 전공의 상. 최우수 전공의 상, 미국비뇨기과학회 최우수논문상 등을 휩쓸었다. 고된 전공의 생활을 할 땐 최형기 교수가 “좋은 논문을 쓴 포상”이라며 미국 메이요클리닉에 보내줘 당시 우리나라에선 흔하지 않은 암이었던 전립선암의 수술 시스템을 배우고 왔다. 전임의 때에는 대한남성과학회 최우수논문상과 세계내비뇨기과학회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심지어 2007년엔 현대자동차 베라크루주의 CF ‘성공한 남자’ 시리즈에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이 성공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스승인 양승철 교수가 말한 “의사는 오늘의 수술이 어제보다 더 좋지 않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늘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교수는 환자를 성심껏 보는 의사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치료는 의사, 환자, 보호자가 한 팀으로 움직여야 성과를 낼 수 있고 하늘도 돕는다”고 믿는다.

“로봇 수술을 접하게 된 것도 군의관 시절 카투사 병사를 성심껏 치료하다 온 행운입니다. 병사를 좀 더 잘 치료하기 위해 미군 병원의 캔디스 카스트로 박사에게 연락했다가 교류하게 됐고, 나중에 카스트로 박사가 존스홉킨스병원에 추천사를 써 준 덕분이지요.”

나 교수는 환자의 초진 때 20~30분 진료를 보면서 환자와 보호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치료법을 결정한다. 로봇 수술을 고집하지 않으며 더러 다른 병원을 추천할 때도 있다. 수술이 끝나면 반드시 보호자를 불러 5분 이상 수술 결과와 예후를 알려준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아도, 솔직히 얘기한다.

“눈을 감으면 결과가 좋지 않았던 환자들이 눈에 밟힙니다. 수술이 잘 됐다고 관리에 방심하지 않았는지 곱씹습니다. ‘그때 이렇게 했다면…’ 하는 생각도 떠오르고요. 그 분들을 비롯한 환자들이 제겐 가장 큰 스승입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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