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가족의 눈물 “말기라는 얘기를 어떻게 해요?”

[사진=Photographee.eu/shutterstock]
“의사도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에게 ‘거짓 정보’를 전달하라는 부탁은 너무 곤혹스럽습니다. 어떤 분은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곧 회복한다. 용기를 내라’고 말해달라더군요. 환자에게 정확한 진료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삶의 의지를 불어놓는 것은 엄연히 다르거든요.”

주로 말기 환자를 돌보는 의사 박문일(가명) 씨의 독백은 의료 현장의 고민을 잘 말해준다. 서울대병원이 암환자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환자의 78.6%가 자신의 병기가 말기라도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어 했다. 이는 가족 등 보호자들(69.6%)보다 높은 수치다.

– 가족의 후회 “삶을 정리할 시간을 드려야 했는데…”

환자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어 하지만, 정작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들은 주저한다. 환자가 회생 가능성이 없어도 가족들은 의사가 환자에게 죽음이나 연명의료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반대한다. 환자가 의식을 잃어야 비로소 임종 얘기를 꺼낸다. 그러다보면 환자는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도 갖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환자의 아들은 “아픈 아버지에게 암 말기라는 얘기를 어떻게 하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환자가 유언 한 마디 없이 떠나면 그때야 후회한다. “아버지가 의식이 있을 때 더 많은 얘기를 할 걸…”. 많은 말기 환자들이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보내지 못하고, 급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에게 정확한 진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가 되고 있다. 암 2기나 4기 등 정확한 병기를 알리는 것은 의사의 역할이라 하더라도, 암 진단 후 엄청난 충격을 받은 환자를 위로하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잘 마무리하도록 돕는 것은 가족들의 몫이다.

최악의 암으로 꼽히는 췌장암의 4기는 5년 생존율이 2%이다. 1%의 회생 가능성이 있더라도 삶의 의지를 북돋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들은 주치의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환자의 병세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한다. 가족은 환자에겐 마지막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 울분과 원망, 희망이 뒤섞인 암환자의 심리

환자 입장에서는 암 진단도 청천벽력인데, 더욱이 3기 이상일 경우 그 충격의 강도가 엄청날 것이다. “왜 하필 내가…”라는 울분과 원망이 넘쳐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암은 신체기능의 변화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암 환자의 대부분은 불안, 두려움, 우울, 심리적 충격, 절망감과 같은 다양한 정서적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환자들은 암 진단 직후에는 “그럴 리가 없는데” “믿을 수 없어….”라는 첫 반응을 보인다. 불신감으로 최초의 충격을 표현하는 것이다. 강한 부정을 통해 불안감을 없애려는 심리적 방어막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어 불면증, 식욕상실, 의욕감퇴 등이 나타나며 일상생활의 패턴이 무너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라는 질문을 되뇌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환자의 상당수는 ‘향후 치료결과가 좋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서 비관적 태도가 낙관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면 병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또 하늘과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태도를 보이며 종교가 없던 환자는 종교에 귀의하기도 한다.

–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어떻게 전할까?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할 때에는 위에서 언급한 심리적 변화 과정을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말기 환자에게 병세를 말하기 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갑작스런 감정적 반응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환자 개인의 상태에 따라 대처방안도 마련해 두는 것도 좋다. 대화 내용도 미리 생각해 둬야 한다.

대화 전 적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자의 사생활이 보호되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환자에게 시간에 쫓기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가능한 한 가까이 앉고 눈을 마주치거나 환자의 손을 잡는 등 친밀감을 주는 행동도 도움이 된다.

– 환자는 얼마나 알고 싶어 할까?

환자가 자신의 병세나 심각성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미리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환자가 병에 대해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치료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암의 치료 및 예후에 관해 상세한 정보를 원하는 환자가 있는 반면,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 환자도 있다. 따라서 환자가 얼마나 알고 싶어 하는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병세가 악화될수록 알려고 하는 마음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알권리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환자가 알고 싶어 하지 않으려는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

– 의사도 어려운 말기 환자와의 대화, 어떻게 풀까?

단국대 의과대학 박일환 교수(전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는 “말기 질환 환자는 삶의 마지막에 대한 불안, 분노,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의사 역시 삶의 마지막을 언급해야 한다는 부담감, 환자의 감정을 수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면담 전에 환자나 가족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가 머릿속에서 연습한 후 편안한 환경에서 시간을 충분히 갖고 면담을 하는 게 좋다”고 했다.

미리 나쁜 소식을 예고하는 것은 환자의 충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화할 때는 환자의 병에 대한 이해도나 어휘수준에 맞춰 이야기해야 한다. 나쁜 소식을 접하는 환자가 침묵, 슬픔, 오열, 분노 등 다양한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당연하다. 환자가 겪는 감정에 동감하고 탐색하며 인정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환자의 질환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다. 넘치는 의료정보 속에서 정확한 지식을 잘 가려내 배워야 한다. 어느 정도 병에 대해 알고 나면 의사와 함께 치료 계획을 상의하는 것이 수월할 수 있다.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과 기대되는 결과를 설명하는 것은 환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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