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람도 ‘복근’ 운동했을까?

[‘나는 몸이로소이다’ 전시회] 고은숙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

한국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 전질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 19일 ‘나는 몸이로소이다’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7월 19일부터 10월 14일까지 약 3개월간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 기획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나는 몸이로소이다’ 전시는 개화기 한글 해부학 교과서를 통해 서양 의학과의 낯선 만남이 몸에 대한 우리말과 전통적 세계관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피고자 기획됐다. 개화기 시기 몸에 관한 언어 문화사적 변화를 담고자 한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를 묻고자 고은숙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를 만나봤다.

–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해부학 교과서를 전면으로 내세운 전시를 기획하다니 흥미롭다. 기존 기획 전시와 어떤 점이 다른가?

“국립한글박물관의 기존 기획 전시로는 박물관이 보유한 소장품으로 꾸린 전시, 특정 주제를 고전 문학 작품으로 풀어내는 전시, 한글의 조형적 특징을 살린 디자인 전시 등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이 소장한 김필순-올리버 R. 에비슨의 ‘해부학’ 교과서 전질로부터 출발했다. 박물관에서는 최근 우리말에 관한 전시 영역을 넓혀보려는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이번 기회로 개화기 시대 우리말의 변화와 당대 사람의 세계관 변화를 살펴보려 했다. 몸에 대한 이해가 나에 대한 이해로, 더 나아가 주변 세상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다는 발상에서 착안했다.”

– 전시가 ‘몸의 시대를 열다’, ‘몸을 정의하다’,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뉘어 구성돼 있다. 구성 면에서 어떤 점을 특히 신경 썼나?

“1부 ‘몸의 시대를 열다’에서는 전통 의학, 근대 서양 의학이라는 몸에 대한 상반된 두 관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몸과 마음을 서로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고 병이 난 부분에 직접 칼을 댄 서양과 달리 전통 의학에서는 몸과 마음,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했다.

이러한 차이는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방식에서도 포착된다. 조선에서는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억울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검시(檢屍)를 시행했는데, 독살 여부나 감춰진 상처가 드러나게 하려고 은비녀, 재, 소금, 매실, 감초 등의 도구나 약물을 사용했다. 외과 도구를 사용해 환부를 열어보는 서양 의학과 차이 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 설명을 들으니, 1부는 서양 의학 지식이 본격적으로 수입되던 개화기 시기 이전 동서양의 인식 차이를 보여준 구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그러한 취지를 살리기 위해 1부 구역의 입구를 일부러 열린 문 모양으로 꾸몄다. 전체적인 공간 디자인도 개화기 느낌이 물씬 풍기도록 했다. (웃음)

이어지는 2부 ‘몸을 정의하다’는 이번 전시의 핵심 구역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한글, 우리말이 중심인 박물관이다 보니 한글 창제 이후 개화기에 이르기까지 몸을 가리키는 우리말, 글의 변화와 그 문화적 영향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

– 근대 의학 지식이 들어오면서 나타난 대표적인 변화에는 어떤 것이 있나?

“전통 의학에서 쓰이지 않던 새로운 개념이 번역어 형태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17세기부터 서양 의학을 적극적으로 연구한 일본은 일찍부터 ‘신경’, ‘연골’, ‘동맥’ 등 번역어를 많이 만들어냈다. 개화기 조선에서는 기존에 쓰이던 단어가 새로운 한자어에 밀려 사라지거나 의미가 바뀌기도 했고, 새로운 용어보다 고유어가 더 활발하게 쓰이기도 했다.

가령, 마음 수양으로 몸 건강을 추구했던 전통 의학 체계에서는 근육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 근육 하나하나에 대한 이름이 없었다. ‘힘’이라는 단어가 물리적인 힘, 근육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복근’, ‘승모근’, ‘이두박근’ 등 다양한 근육 이름이 오늘날 일상어로 쓰이게 된 것도 개화기 시기 서양 의학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수입된 신조어는 사람들의 일상, 문학 작품의 사상 변화에도 영향을 줬다. 전통 의학 관점에서는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부학, 생리학 등 신식 의학 지식이 들어오면서 마음의 위치가 뇌로 바뀐다. 1908년에 나온 이해조의 소설 ‘빈상설’에서는 간교한 첩에게 홀린 주인공을 ‘신학문으로 말하면 뇌에 피가 말라 신경이 희미하다 할 만한’ 상태라 묘사하기도 했다.”

– 반대로 새로운 용어가 들어왔지만 고유의 표현이 여전히 더 많이 쓰인 사례는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흔히 앞뒤 안 가리고 무모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간이 부었다’, ‘간이 배 밖에 나왔다’라는 말을 쓴다. 반면 무서운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을 때 ‘간이 콩알만 해졌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간의 크기와 사람의 상태를 연결 짓는 말은 장기를 음양오행으로 설명했던 전통 의학의 영향을 받았다.

간은 음양오행 가운데 목기(木器)에 해당해 ‘용기, 결단력’이라는 속성과 관련이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대담한 자세가 과해진 것을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표현하고, 반대로 소심해진 것을 간이 콩알만 해졌다고 표현했다.

‘동의보감’에서는 간을 양기를 퍼지게 하고 혼을 간직한 기관으로 설명하는데, 토끼 간으로 용왕의 병을 낫게 하려 한 ‘별주부전’에 이러한 간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잘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 마지막 3부에서는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가 어떻게 두 번의 실패를 딛고 탄생했는지를 보여줬다. ‘해부학’은 국립한글박물관만 소장하고 있는 책인가?

“김필순-올리버 R. 에비슨이 작업한 ‘해부학’은 다른 박물관도 부분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자료이기는 하지만 전질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부학’ 외에 생리학, 외과학, 산과학, 간호학 등 다른 기관이 소장한 개화기 현대 의학 교과서를 이번 전시에서 함께 접할 수 있도록 했다.”

–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 번역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나?

“‘해부학’에는 우리말에 없던 서양의 개념을 번역하고 또 우리 지식으로 만들려고 한 김필순과 에비슨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중원(세브란스병원) 교수 에비슨은 한국 학생에게 해부학을 좀 더 쉽고 빨리 가르치고자 헨리 그레이의 ‘아나토미(Anatomy of the Human Body)’ 번역 작업에 착수했지만 첫 번째 원고 분실, 두 번째 원고 소실 등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두 번째 원고가 불에 타 없어진 후 에비슨은 김필순과 함께 이마다 쓰카누의 ‘실용해부학’을 새로 번역했다. 개화기 조선이 일본, 중국보다 서양 의학 수용이 늦었고, 교육을 위해 짧은 시일 내 번역을 완성해야 했던 탓에 번역자들이 우리말에 맞는 용어를 고심할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서양 의학 지식을 영어나 일본어 표현 그대로가 아닌 우리말의 맥락으로 받아들이려 한 노력을 높이 사야 한다고 본다.”

[사진=’나는 몸이로소이다’ 전시장 입구]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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