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옹호 대법관이 아닌 낙태죄 위헌 판결 필요”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가 낙태죄 처벌이 존속돼야 한다고 밝힌 가운데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25일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는 국회 대법관 후보 인사 청문회에서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한 질문에 “존속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 후보자는 “태아에게도 사람으로 태어나 한평생 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여성의 자기 결정권도 중요하지만 모자보건법 등 특별히 법률에서 예외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중요한 법익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26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 측은 여성의 생명을 경시하는 대법관은 필요 없다며, 이 후보자는 대법관이 될 자격이 없다며 비판했다.

모낙폐는 성명서를 통해 “여성이 임신 중지를 결정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을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아이는 낳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키워야 하는데, 국가의 경제적 지원 부족, 불평등한 돌봄 책임, 경력 단절 등 여성의 출산 선택이 여의치 않은 현실을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모낙폐는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은 매우 취약하다”며 “여성이 출산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문제이지 낙태죄가 없어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지적은 꾸준히 있어 왔고, 실제로 청문회에서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또한 “인프라를 강화해서 여성의 출산, 육아, 경력 단절 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중요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한 바 있다. 이에 이 후보자는 “여성은 직장과 사회에서 남성과 대등하게 처우되지 않는 등 아직까지 사회적 약자”라며 “낙태죄를 여성의 문제로 놔두지 않도록 사회적 배려가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낙태죄는 존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지켰다.

이에 대해 모낙폐는 현실을 완전히 외면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형법은 임신 중지(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임신 중절 수술을 한 여성과 수술을 해준 의사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모낙폐는 “출산 및 육아의 문제를 전부 여성 개인의 문제로 규정하고 심지어 형법상 처벌까지 가하는 것이 바로 낙태죄”라며 “그 존재만으로도 낙태죄는 여성의 삶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여성에게 책임감과 죄책감이라는 짐을 부여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낙폐는 이 후보자가 낙태죄 존속 주장의 근거인 ‘생명 존중’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모낙폐는 “안전하지 못한 임신 중지로 많은 여성이 목숨을 잃어 왔다”며 “오히려 대표적인 생명 경시 법”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낙태죄가 있음에도 낙태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어떤 피임법도 성공률이 100%에 도달하지 못한 가운데, 원치 않는 임신과 이로 인한 임신 중지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행법은 이를 처벌하고 있어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수술이 여성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쳤다는 설명이다.

세계적으로 낙태죄는 점차 폐지되는 추세다. 최근 아일랜드에서 국민 투표로 낙태죄 폐지를 결정했고, 아르헨티나 또한 상원에서 14주 내 임신 중절 허용 법안이 통과됐다.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이 후보자의 발언이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모낙폐는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낙태죄를 옹호하는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죄의 위헌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일요신문TV]

    연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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